서울 다녀온 걸음
삼월 하순 넷째 토요일은 자연학교 등교는 잠시 유보하고 다른 일정이 기다렸다. 이른 시각 예매 열차표로 아내와 서울을 다녀오는 걸음이다. 10여 년 전 아내 지병으로 수술과 후속 치료를 위해 다녔던 걸음은 그간 흐른 세월에 주치의 진료는 마쳐도 마음은 놓을 수 없다. 이번은 아내와 동행해도 진료가 아닌 그곳 사는 아들 녀석 얼굴을 한번 보려는 걸음으로 나서는 길이다.
밑으로 둔 두 아들 녀석이 부모 품을 일찍 벗어나 저들끼리 자립해 살고 있다. 일면 대견스럽게 여겨지면서도 부모가 거름이 되어주는 자양분을 더 채워주지 못하는 안쓰러움은 면할 수 없는 채무 의식이다. 지난 설날 제 갈 길 가는 큰 녀석은 처자식을 데리고 창원을 다녀갔다. 녀석 처가가 목포여서 명절에 길을 나서면 국토 남단의 동과 서를 오가느라 꽤 먼 동선을 움직인다.
아직 미혼인 둘째는 명절을 넘겨도 얼굴을 보지 못함이 오래인데 제 발로 찾아올 녀석이 아니었다. 어미와는 수시로 문자와 전화가 오가지만 아비와는 목소리조차 들어본 지 오래여서 어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녀석이 일을 쉬는 주말을 택해 지난달 서울로 올라가 보려니 이런저런 사정이 여의하지 않았다. 마냥 뒤로 미룰 수가 없어 삼월이 가기 전 다녀오는 일정을 잡았다.
보름 전 열차표를 구하면서 주말에 서울로 오르내리는 이동량이 많음을 실감했다. 주말 열차는 한 달 전 예매가 동이 나기에 보름 전에 구하려니 수서행은 어렵고 겨우 서울역 표를 마련했다. 근래 불안한 시국 상황으로 주말이면 특정 지역에 끊이지 않은 시위 인파들이다. 그로 인해 토요일 서울을 다녀오는 일정에 돌발 변수가 생길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혼잡은 피하게 되었다.
새벽에 일찍 잠을 깨기 어려운 아내는 전날 몇 가지 찬을 마련해 두고 이튿날 일찍 서둘렀다. 배낭에는 작은 녀석에 보내는 반찬 몇 가지를 챙겨 담으니 제법 묵직했다. 그 가운데는 아비가 캔 봄기운 받고 자란 쑥으로 끓인 국도 포함되었다. 창원중앙역에서 진주 기점 정한 시각 다가온 KTX로 출발했다. 비음산 터널을 통과한 차창 밖으로 화포천 습지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삼랑진 철교를 건너 밀양을 거치면서 지나온 젊은 날이 아스라했다. 내 교직 출발이 그곳이고 뒤이어 신혼기를 보내 큰 녀석은 삼랑진에서, 작은 녀석은 수산에서 태어났다. 두 곳 다 단칸방으로 삼랑진에서는 연탄불 보일러였고 수산에서는 기름으로 가동된 난방이던 시절이었다. 청도에서 경산을 지날 때는 초등교사 재직 중 다시 야간강좌 대학을 다녔던 풍광이라 낯설지 않았다.
서울에 닿은 한나절 일정으로 강남에 사는 큰 녀석은 지난 설에 내려왔고 선약된 일정으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둘째 녀석을 만나려고 2호선 강변역 1번 출구로 나가 2년 만에 해후했다. 지난번은 큰 녀석이 아비 어미에게 정밀 건강 검진을 의뢰해 서울에서 하룻밤을 묶을 때였다. 둘째는 저번에 강남 일터로 나가다 지금은 같은 분야 일로 판교로 내려가 밥벌이하고 산단다.
작은 녀석이 정해둔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로 옮겨 커피를 들면서 부자 모자 상봉 시간을 가졌다. 이후 택시로 광진구와 성북구 경계를 이루는 용마산 아차산 기슭으로 형성된 녀석이 사는 빌라촌으로 갔다. 처음 가본 강북 동쪽이라 주변 풍광들은 모두 낯선 곳이었다. 고양이와 같이 사는 녀석의 공간은 책을 포함해 여러 짐들이 그런대로 정리되고 깔끔해 마음이 놓였다.
어미는 거실에서 작은 녀석과 얘기를 나눈 시간 녀석 서재 의자에 기대어 잠시 풋잠을 잤다. 이후 아비 어미는 지하철 중곡역까지 배웅나온 작은 녀석과 작별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열차가 출발할 시각이 일러 내외는 각자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아울렛 코너를 둘러보고 나는 구서울역 역사 문화관에서 열리는 공예전을 관람했다. 하행 열차에서 창밖으로 한강의 노을빛이 비쳤다. 25.03.22
첫댓글 자제분상봉 훈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