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지혜3,1-9 로마5,17-21 마태11,25-30
아름답고 행복한 삶
- 신뢰, 순종, 감사, 환대 -
어제는 모든 성인들(All saints) 대축일 이었고, 오늘은 죽은 모든 이들(All souls)을 기억하는, 특히 그들 가운데 연옥 영혼들이 하늘 나라에 속히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고운 단풍 아름다운 늦가을 만추晩秋에
맞이하는 위령의 날,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위로가 참 한없이 따뜻하고 푸근하게 느껴집니다.
교회의 전례를 통한 주님의 배려가 참 고맙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살아있습니다. 하여 우리는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끊임없이 산자들을 위한 생미사를, 죽은 이들을 위한 연미사를 봉헌합니다.
위령의 날은 우리가 자주 까맣게 잊고 지내는 언젠가 있을 우리의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정말 마지막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시험 날짜와도 같은 죽음의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여 분도 성인은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말씀하셨습니다.
천주교 대구교구청의 묘지 양쪽 입구에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가 죽는 다는 뜻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비슷한 말입니다. 얼마전 선종하신 바오로 수사님을 연상하면 그대로 마음에 와닿는 말입니다. 흡사 형제들이 죽음을 향해
나란히 줄서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아무도 죽음의 날짜를 모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 순서가 환히 보일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환상이나 헛된 욕심은 말끔히 걷히고 깨어 겸손히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서 많이 사랑하고 섬기며 본질적 삶을 살게 합니다.
죽음이후의 삶은 아무도 모릅니다. 죽었다 살아 온 이들의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없기에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의존해 희망과 위로를 받습니다.
제 좋아하는 미사경문에 나오는 한 대목과 위령감사송 내용도 참 깊고 아름다워 참 큰 희망과 기쁨을 줍니다.
“아버지,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감사기도 제2양식)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감사송1).
그러니 죽음이후에는 아무것도 걱정안해도 됩니다. 자비하신 주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될 것이요 언젠가의 복된 선종의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깨어 잘 사는 것이 최고의 죽음 준비입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오늘 위령의 날 물음은 저절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물음으로 직결됩니다.
죽음이 있어 삶은 귀한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일일일생, 일년사계로 우리 인생 여정을 압축하면 날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인 죽음도 가까워짐을 느끼게 되고 남은 인생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죽은 형제자매들은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다음 고백대로 살면
됩니다. 어느 교구 사제의 제안대로 ‘주님’대신 ‘아빠’로 넣으니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아빠!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의 선물이옵니다.”
어떻게 이 고백대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소개해 드립니다.
첫째, 신뢰의 삶입니다.
주님을 참으로 깊이 신뢰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신뢰의 관계가 최고의 자산입니다.
우리의 정주서원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입니다.
이런 이들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의인들입니다.
오늘 지혜서 말씀처럼 이들은 내적으로 평화를 누리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삶의 갖가지 시련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과 신뢰를 깊이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오늘 지혜서 마지막 말씀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을 신뢰하는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신다.’
(지혜3,9).
둘째, 순종의 삶입니다.
순종의 모범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순종의 여정입니다.
산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순종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순종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마지막 순종인 죽음도 잘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선종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이 아름답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고 고맙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야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순종의 여정에 항구할 때 우리 또한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의로움으로 지배되는 은총의 세계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셋째, 감사의 삶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갖 감사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감사할 때 샘솟는 기쁨에 저절로 하느님 찬미입니다.
성인들은 물론 믿는 이들의 결정적 특징이 감사와 기쁨입니다.
오늘 복음중 예수님의 감사기도가 참 아름답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감사하는 순수한 자들에게 계시되는 하늘 나라의 신비임을 깨닫습니다.
기쁨과 기도, 감사의 모범인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제가 고백성사시 처방전 말씀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삶이 우리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합니다.
넷째, 환대의 삶입니다.
환대의 모범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정주 영성과 직결되는 환대의 영성입니다.
우리의 선교 역시 환대를 통한 선교입니다. 환대의 집 주님의 집 수도원에서 환대의 수도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 후반부에서 주님의 환대의 진면목이 환히 드러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신뢰와 순종, 감사와 환대의 아름답고 행복한 안식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런 삶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