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 부른 미모의 헬레네… 중국 한나라에도 국가를 흔든 미인 있었대요
경국지색
기울 경(傾) 나라 국(國) 어조사 지(之) 빛 색(色)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가 큰 인기를 끌며, 영화의 원작인 ‘오디세이아’에 대한 사람들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후 섬나라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며 겪은 일들을 담고 있어요. 그리스와 트로이가 대결한 트로이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 이어졌는데요. 전쟁의 발단은 미모의 여인 헬레네였습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미모에 매혹돼 그녀를 트로이로 데려가며 전쟁이 시작됐어요. 여인의 미모가 나라의 운명을 뒤흔든 겁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경국지색’입니다.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빼어난 미모’라는 뜻이지요.
일러스트=이철원
이 표현은 중국 한나라의 7대 황제 무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 때의 노래 가사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악관(궁중 음악 담당자) 이연년은 음악과 춤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연년은 무제 앞에서 춤을 추며 신곡 ‘가인곡’을 선보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세상에 견줄 사람 없이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우네. 성과 나라가 기우는 것을 어찌 모르랴만, 이런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
당시 중국에선 미인을 표현할 때 눈과 눈동자, 눈썹의 모양, 입술의 색깔 등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곤 했는데, 이연년은 외모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도 미인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돌아보는 눈길 한두 번에 나라가 무너질 정도라니, 무제의 궁금증이 커졌죠.
그는 “세상에 정말 그런 미인이 있는가”라며 호기심을 드러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무제의 누이 평양공주가 귓속말을 해줬습니다. “이연년의 여동생이 바로 그런 미인입니다.” 무제는 그 여인을 궁으로 불러들였고, 보자마자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 여인이 무제가 총애한 이부인(李夫人)입니다. 이부인은 노래 가사처럼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이씨 형제들이 황제의 측근으로 자리 잡으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가인곡’은 동생을 황제의 눈에 들게 하려는 이연년의 치밀한 계획이었어요.
훗날 이부인이 병에 걸려 쇠약해졌어요. 무제는 아픈 모습일지라도 이부인을 보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황제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해야 자신과 가문의 영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인의 아름다움이 국가의 흥망과 연결된다는 서사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등장합니다.
채미현 박사·‘상식 밖의 고사성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