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 들녘으로 나가
삼월 하순 일요일이다. 작은 녀석을 만나러 서울을 다녀온 이튿날 새벽 전날 여정을 글로 남기면서 시조도 한 수 곁들였다. “살붙이 만나려고 서울에 올랐다가 / 녀석이 사는 모습 멀찍이 지켜보고 / 지하철 중곡역에서 돌려세워 보냈다 // 하행선 출발 일러 공예전 둘러보고 / 지정된 객차 올라 용산을 빠져나와 / 철교를 건너는 창밖 노을빛이 비쳤다” ‘한강 노을빛’ 전문이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교는 느긋하게 길을 나섰다. 이웃 동 뜰로 나가 꽃대감 친구와 안씨 할머니가 가꾸는 꽃밭을 둘러보니 초봄에 싹이 터 꽃을 피우는 초본이 더러 보였다. 내가 작년에 미산령에서 업어다 둔 복수초는 거기보다 뒤늦게 꽃을 피웠고 할머니가 꽃집에서 사다 심은 튤립은 꽃봉오리를 펼쳤다. 초봄에 수선화와 크로커스 샛노란 꽃잎은 따스하고 화사하게 느껴졌다.
창이대로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까 지나온 꽃밭의 꽃을 담아둔 사진을 지기들에 보내면서 아침 안부로 전했다. 소답동으로 나가 평소 자주 이용한 마을버스가 아닌 김해 내외동으로 가는 140번 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덕산과 자여를 지나자 김해 시계로 들어 진영 좌곤리였다. 진영읍에 이르러 시외주차장에서 내려 한림면 모정으로 가는 57번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정한 시각 출발한 버스는 본산 공단 입구에서 노 대통령 생가 봉하를 둘러 대현을 넘어 장방과 진말을 거쳤다. 가끔 한림면을 버스로 지날 때 그곳 경로가 궁금했는데 창밖의 지형지물을 잘 익혀 두었다. 한림면 소재지에서 오서를 거쳐 쇠실과 정촌을 지난 종점 모정에 내렸다. 노 대통령과 본관이 같은 광주여도 집안이 다른 노씨들이 입향조가 되어 집성촌을 이룬 금곡리 일대다.
조선 중기 열녀를 기린 정촌과 이웃해서, 정절을 기려 추모한다는 모정마을도 쇠실에서 분파한 노씨들이 살았다. 화포 천변에는 병자호란 삼전도 굴욕이 치욕스러워 그곳에 낙향한 ‘해은공’을 기린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모정 비각을 들러보는 사이에 하늘에는 여러 대 소방 헬기가 강가로 나가 물을 퍼담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산불이 나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모정교를 건너 한림배수장으로 가니 볕이 바른 자리에는 쑥을 캐느라 옹기종기 아낙들이 보였다. 화포천은 샛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합류한 지점의 정자에는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여럿이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강둑에서 바라보인 둔치는 색이 바랜 물억새가 평원처럼 펼쳐졌고 갯버들은 수액이 올라 연녹색을 띠기 시작했다. 헬기는 여전히 물을 퍼 나른다고 바삐 움직였다.
강둑을 따라 술뫼 가는 둑길에서 신촌으로 내려섰다. 들판은 비닐하우스로 부지런히 일한 만큼 농가 소득이 높은 곳이었다. 딸기와 토마토를 한창 따는 철이었는데 주인장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농장을 찾았다. 점심 식후 베트남 일꾼이 쉬는 사이 주인 아낙은 토마토를 선별 포장하느라 수고했다. 지난번 샀던 토마토를 맛있게 먹었다면서 두 상자를 사니 하품은 덤으로 챙겨주었다.
토마토를 손에 들고 들길을 걷자 딸기 농장에서 동남아 청년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처녀들은 화사한 옷차림에 화장도 예쁘게 해 있었다. 베트남 아내를 맞은 농장주가 휴일을 맞은 외국 노동자들에게 딸기 체험을 겸한 축제를 여는 날이었다. 전통 의상을 입고 흥겨운 노랫가락이 들려왔는데 다문화 가정을 이룬 농촌에서 관의 지원을 받지 않은 자발적 소규모 축제가 대견스러웠다.
딸기 체험 농장에서 북면에서 생림으로 뚫은 60번 국도 굴다리를 지난 볕이 바른 곳에 쑥이 보였다. 쑥 캐기는 두 가지 전제가 따르는데 오염원 없는 청정지역이어야 하고 무리를 지어 수북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쑥을 한 봉지 캐서 신봉마을로 가서 늦은 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고 한림정역으로 갔다. 부전에서 순천으로 가는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렸다. 25.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