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별곡
석야 신웅순
정년 퇴임한지 7년이나 된다. 세월이 이렇게 빠를 수가 없다. 그래도 이 때 공부를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습관이 되어선지 지금도 컴퓨터에서 물러날 줄 모른다.
“여보, 좀 쉬엄쉬엄 하세요.”
아내가 늘 성화댄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그림 공부이다. 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그림 그리면서 밖에서 사람들과 놀다 오라 한다.
그림「청산별곡」이다. 두 번째이다. 지금의 나를 담고 싶었다. 솔바람이 불어오고 저 멀리 호수에서 노옹이 한가로이 고기를 잡고 있다. 오후 5시경이다. 어찌 보면 구태의연한 사은유 같은 그림이다.
어떤 철학을 갖고 한 것도 아니요, 실험 정신을 갖고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의 나를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려보고 싶었지만 사는 일이 바빠 이제야 그림에 손을 댔으니 지금인들 무슨 대가이기를 바라랴. 웃을지도 모를 그림이나 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어쩐다 해도 괜찮다.
대낮 물 속인데도 웬 별자리들이 새카맣게도 많은가. 그 중에서 오늘은 사자 별자리를 건져나 볼까.
오늘은 사자 별자리
삿대로 건져올린
사랑과 미움은
몇 그램 줄었을까
한 소절 가슴에 품은
초겨울 정선 아리랑
-신웅순의 「청산별곡」
누군들 나 같지 않으랴. 내게는 유난히 파도가 많고 바람이 많았다. 사랑이 많았고 미움이 많았다. 사랑과 미움은 오늘은 얼마나 줄었을까. 용서를 받아야 하고 용서를 해주어야할 사람. 살면서 그 많은 중 하나라도 건져올려야할 게 아니냐. 살면서 가슴에 품은, 이제와 초겨울의 월인천강지곡 한 소절, 내 정선 아리랑을 불러본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할 것 같은 이 짠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군가의 가슴에 내가 남을 수만 있다면. 그 옛날 누군가가 내게 남겨 주었듯 나도 누군가에게 남겨놓아야한다. 빚을 갚아야 할 게 아니냐. 세상에 나와 바람처럼 스쳐갔으니 그 상처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있지 않느냐? 눈물은 눈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호숫가 멀리 산 너머에 살고 있는 보고 싶은 사람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후이다. 오늘은 거기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어머니였으면 참 좋겠다. 짝사랑한 사람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첫사랑한 사람이었으면 더더욱 좋겠다.
- 2024.4.15.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
첫댓글 혼자만의 파도, 바람,사랑,미움, 용서라면 참 삭이기도 쉬운데
그것들이 상대가 있을 경우에는 참 복잡해지고 아픔도 커지더이다.
누군가 올 것 같아 삽짝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을 그 기다림이 어머니였음 더 좋을 작가님의 바램이 이루어지시길...
그렇습니다.상대가 있어 파도, 바람이 많고 사랑 미움이 많지 않습니까.
참 힘들지요.
산 너머 날 기다리고 있는 이는 누굴까.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그게 무엇이라도 이루어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