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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61회
진혜공(晉惠公)은 영대산에 감금되어 있으면서, 목희(穆姬)가 상복을 입고 진목공(秦穆公)을 맞이한 일은 알지 못하고 목희가 자신을 원망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한간(韓簡)에게 말했다.
“예전에 선군께서 秦나라와의 혼인을 의논할 때, 태사(太史) 소(蘇)가 ‘서쪽 이웃이 꾸짖으니, 혼인은 이롭지 않다.’는 점괘를 얻었었소. 만약 그 말에 따랐더라면, 필시 오늘 같은 일이 없었을 것이오.”
[제50회에, 진목공이 진헌공(晉獻公)의 딸 백희(목희)에게 청혼했을 때, 태사 소가 점을 쳐서 ‘장사가 양을 찔렀으나 피가 나지 않고, 여인이 광주리를 이었으나 담긴 것이 없네. 서쪽 이웃이 꾸짖는 말에 대꾸할 말이 없네.’라는 점괘를 얻었다. 태사 소는 이웃과 화목하지 못하고 불길한 징조라 하여 혼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보면 태사 소의 해석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괘는 혜공이 秦나라를 배신하기 때문에 전쟁에서도 이기지 못하고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秦나라의 질책에 대꾸할 말도 없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한간이 대답했다.
“선군께서 덕이 없었기 때문이지, 어찌 秦과 혼인했기 때문이겠습니까? 秦이 우리와 혼인한 것을 생각지 않았다면, 주군께서 어떻게 입국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秦이 주군을 입국시켜 주고서도 우리를 공격한 것은, 주군께서 호의를 원수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秦은 원래 우리를 공격할 마음이 없었으니, 주군께서는 잘 생각하십시오.”
혜공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얼마 후, 목공은 공손 지(枝)를 영대산으로 보내, 혜공에게 안부를 묻고 귀국시키라고 하였다. 영대산으로 간 공손 지가 혜공에게 말했다.
“폐읍의 신하들은 군후에 대해 호의를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군부인께서 숭대에 올라가 군후를 석방하지 않으면 죽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과군께서는 晉과 맺은 혼인의 우호를 상하게 할 수 없어, 전에 약속한 하서(河西)의 다섯 성을 빨리 할양하고 세자 어(圉)를 인질로 보내면 군후를 귀국시켜 드리기로 했습니다.”
혜공은 비로소 목희가 자신을 위해 애썼음을 알고,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혜공은 즉시 대부 극걸(郤乞)을 晉나라로 보내, 여이생(呂飴甥)에게 성을 할양하고 세자를 인질로 보내라고 분부하였다.
여이생은 왕성(王城)으로 가서 진목공을 알현하고, 다섯 성의 지도와 그곳의 재물과 식량, 그리고 호구의 수를 기록한 문서를 바쳤다. 목공이 물었다.
“세자는 왜 오지 않았는가?”
여이생이 대답했다.
“나라 안이 불화하여 세자가 잠시 국정을 맡고 있으니, 과군이 귀국하는 날 세자가 올 것입니다.”
“晉나라는 어째서 그리 불화한가?”
“군자들은 저희의 죄를 알기에 秦의 은덕에 감사하고 있으나, 소인들은 그 죄를 모르고 秦에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 바람에, 화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晉나라는 아직도 주군이 귀국하기를 바라고 있소?”
“군자들은 과군이 반드시 귀국하리라고 믿고 세자를 보내 秦과 화친하려 합니다. 그러나 소인들은 과군이 필시 귀국하지 못하리라 믿고 세자를 군위에 세워 秦에 항거하고자 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군후께서는 이미 과군을 사로잡아 위엄을 세우셨으니, 이제 과군을 석방해 주시면 또 덕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덕과 위엄으로 다스리신다면, 곧 패자로서 제후들을 거느리게 될 것입니다. 군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소인들의 분노를 격동시킨다면, 秦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쌓은 공덕을 버린다면 패업도 무너지게 될 것이니, 군후께서는 필시 그렇게 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목공이 웃으며 말했다.
“과인의 뜻이 그대의 뜻과 같소.”
목공은 맹명(孟明)을 보내 하서의 다섯 성의 경계를 확정하고 관청을 설치해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양공을 교외의 공관으로 옮기게 하고, 손님에 대한 예로써 대하게 하였다. 7뢰(七牢)를 대접하고, 공손 지로 하여금 병력을 거느리고 여이생과 함께 혜공을 호송하여 귀국시키게 하였다. 소·양·돼지 각 한 마리씩을 1뢰라고 하는데, 7뢰를 대접한 것은 예가 두터운 것이니, 이는 목공이 晉과 우호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혜공은 9월에 패전하여 秦에 감금당했다가, 11월에 비로소 석방되었다. 혜공과 함께 감금되었던 신하들도 모두 귀국했는데, 괵사(虢射)는 秦에서 병사했기 때문에 돌아가지 못했다.
한편, 晉나라의 아석(蛾晰)은 혜공이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정(慶鄭)에게 말했다.
“그대가 한간에게 주군을 구원하라고 하는 바람에 주군이 사로잡혔소. 이제 주군이 돌아오면 그대는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타국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소.”
경정이 말했다.
“군법에 의하면, 병사는 패전하면 죽고 장수는 포로가 되면 죽어야 하는 법이오. 하물며 내가 잘못하여 주군이 큰 욕을 당하였으니, 그 죄가 막심하오. 만약 주군께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나는 가족을 거느리고 秦나라에 가서 죽을 생각이었소.
그런데 이제 주군께서 돌아오게 되었으니, 내가 어찌 벌을 피할 수 있겠소? 나는 이곳에 남아 장차 주군이 나에게 법을 시행함으로써 주군의 마음을 만족케 할 것이오. 그리하여 죄를 지은 자는 도망갈 곳이 없음을 신하된 자들에게 알릴까 하오. 그러니 내가 어찌 피하겠소?”
아석은 탄식하며 돌아갔다.
진혜공이 강성(絳城)에 당도하자, 세자 어는 호돌(狐突)·극예(郤芮)·경정·아석 및 사마(司馬) 열(說)과 내시 발제(勃鞮) 등을 거느리고 교외로 나가 영접하였다. 혜공은 수레 위에서 경정을 발견하자, 노기가 치밀어 가복도(家僕徒)를 시켜 경정을 앞으로 불러오게 하여 말했다.
“경정은 어찌 감히 과인을 보러 왔는가?”
경정이 대답했다.
“주군께서 처음에 신의 말대로 秦의 은덕에 보답했더라면, 필시 秦은 쳐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신의 말대로 秦에 화평을 청하였더라면 필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신의 말대로 소사(小駟)를 타지 않았더라면 필시 싸움에 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은 그처럼 주군께 충성하였으니, 어찌하여 주군을 뵙지 못하겠습니까?”
“너는 그래도 할 말이 있단 말이냐!”
“신은 죽을죄를 세 가지 지었습니다. 충언을 하고서도, 주군으로 하여금 듣도록 하지 못한 죄가 첫째입니다. 신이 차우(車右)가 되면 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는데도, 주군으로 하여금 신을 기용하도록 하지 못한 죄가 둘째입니다. 주군을 구하러 장수들을 보내고서도, 주군이 사로잡히게 한 죄가 셋째입니다. 신은 형벌을 받음으로써 스스로의 죄를 밝히고자 합니다.”
혜공은 경정의 말에 답변을 할 수가 없어, 양요미(梁繇靡)로 하여금 대신 그의 죄를 밝히도록 하였다. 이에 양요미가 경정에게 말했다.
“그대가 말한 것은 실은 모두 죽을죄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대에게는 다른 죽을죄 세 가지가 있는데, 그대는 모른단 말인가? 주군께서 진흙 속에 빠져 그대를 급히 불렀을 때 그대는 돌아보지 않았으니, 그것이 마땅히 죽어야 할 첫 번째 죄다. 내가 秦侯를 막 사로잡으려 했을 때 그대가 주군을 구하라고 잘못 일러주는 바람에 秦侯를 놓쳤으니, 그것이 두 번째 죽을죄다. 다른 장수들은 모두 주군과 함께 포박을 받았는데 그대는 힘껏 싸우지도 않고 상처도 입지 않은 채 온전하게 도망쳐 돌아왔으니, 그것이 세 번째 죽을죄다.”
경정이 말했다.
“삼군의 장수가 모두 여기에 있으니, 나의 말을 들어 보시오! 나는 벌을 받기 위하여 여기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나를 보고 힘껏 싸우지도 않고 상처도 입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있겠소?”
아석이 간했다.
“경정은 비록 죽을지언정 형벌을 피하지 않았으니, 그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주군께서는 그를 용서하시어 한원 싸움의 원한을 갚도록 하십시오.”
양요미가 말했다.
“전쟁은 이미 패했는데, 이제 다시 죄인을 기용하여 원한을 갚고자 한다면, 晉나라에는 사람이 없다고 천하가 비웃을 것이오.”
가복도 역시 간했다.
“경정은 세 가지 충언을 드린 것만으로도 속죄할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그를 죽여 법을 시행하기보다는, 그를 용서하여 주군의 어짊을 보이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양요미가 또 말했다.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을 엄격히 시행해야 합니다. 만약 형벌을 잃고 법이 문란해지면, 누가 두려워하겠습니까? 만약 지금 경정을 죽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시는 용병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혜공은 사마 열을 돌아보며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명하였다. 경정은 목을 내밀고 형을 받았다.
염선(髯仙)은 시를 지어, 혜공이 도량이 좁아 경정을 용서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였다.
閉糴誰教負泛舟 누가 곳간을 닫고 범주지역을 배신하라 했던가?
反容奸佞殺忠謀 도리어 간신의 아첨을 받아들여 충신을 죽였도다.
惠公褊急無君德 혜공은 도량이 좁고 성급하여 군주의 덕이 없으니
只合靈臺永作囚 영대산에 영원히 가두어 두는 것이 합당했으리라!
[제59회에, 晉나라에 흉년이 들었을 때 진목공이 배에 곡식을 실어 晉나라를 구제해 준 일을 ‘범주지역(泛舟之役)’이라 하였다.]
양요미는 진목공을 포위했을 당시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경정이 ‘빨리 주군을 구하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목공을 버리고 달려갔었다. 그 때문에 경정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반드시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경정이 죽는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울었으며 태양도 빛을 잃었다. 여러 대부들은 눈물을 흘렸다. 아석은 경정의 시신을 장례 지내고 말했다.
“나를 병거에 싣고 돌아와 준 그대의 은혜를, 나는 이렇게 갚았구려!”
혜공은 귀국한 후, 세자 어를 인질로 공손 지와 함께 秦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도안이(屠岸夷)의 시신을 청하여 대부의 예로써 장례 지내고, 그 아들이 도격(屠擊)이 중대부의 지위를 이어받게 하였다.
어느 날, 진혜공이 극예에게 말했다.
“과인이 秦나라에 있는 3개월 동안, 근심했던 것은 오직 중이(重耳)뿐이었소. 그가 변란을 틈타 입국할까 봐 두려웠는데, 이제야 비로소 마음을 놓겠소.”
극예가 말했다.
“중이가 외국에 있는 한, 끝내 그는 심복지질(心腹之疾)입니다. 반드시 그를 제거해야만 비로소 후환을 끊을 수 있습니다.”
[‘심복지질’은 뱃속에 든 병이라는 뜻으로, 없애기 어려운 우환을 말한다.]
혜공이 물었다.
“누가 과인을 위해 중이를 죽일 수 있겠소? 과인은 무거운 상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극예가 말했다.
“내시 발제가 예전에 포성(蒲城)을 토벌하러 갔을 때, 중이의 소매를 잘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중이가 귀국하여 자신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중이를 죽이고자 하신다면, 그가 아니면 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제54회에, 발제가 진헌공(晉獻公)의 명을 받고 포성에 있는 중이를 잡으러 갔다가, 담을 넘어 도망치는 중이의 소매만 자르고 중이를 놓쳤다.]
혜공은 발제를 불러 중이를 죽이려고 하는 일을 은밀히 고하였다. 발제가 대답했다.
“중이가 적(翟)나라로 망명한 지 12년이 되었습니다. 적나라는 구여(咎如)를 정벌하여, 숙외(叔隗)와 계외(季隗)라는 두 미녀를 사로잡았는데, 계외를 중이에게 시집보내고 숙외를 조쇠(趙衰)에게 시집보냈습니다. 두 여인은 각각 아들을 낳았습니다. 君臣이 가정의 즐거움에 안주하여, 우리를 염려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신이 지금 적나라를 정벌하러 가면, 적나라는 필시 중이를 도와 군대를 일으켜 항전할 것이니, 승부를 점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사(力士) 몇 명을 구해 은밀히 적나라로 들어가, 중이가 밖으로 놀러나가는 틈을 타서 죽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혜공이 말했다.
“그 계책이 참으로 묘하다!”
혜공은 발제에게 황금 1백 일(鎰)을 주며, 역사를 구하여 일을 행하라고 하였다.
“너에게 사흘의 기한을 줄 테니, 그 안에 역사를 구해 떠나도록 해라. 일을 끝내면 중용하겠다.”
예로부터 말하기를,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행하지 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말하지 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혜공이 부탁한 것은 비록 발제 한 사람뿐이었지만, 내시 가운데 그 음모를 들은 자가 많았다.
호돌은 발제가 황금을 흙처럼 뿌리면서 역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심이 들어 은밀히 사람들을 풀어 그 까닭을 알아보게 하였다. 호돌은 연로한 국구이니, 내시들 가운데 그와 친한 자가 없겠는가? 결국 혜공의 음모는 누설되어, 호돌의 귀에 들려오게 되었다. 호돌은 크게 놀라, 즉시 서신을 써서 사람을 적나라로 보내 공자 중이에게 알리게 하였다.
한편, 중이는 그날 적군(翟君)과 함께 위수(渭水) 가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홀연 어떤 사람이 사냥터 안으로 들어와 호씨 형제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말했다.
“국구께서 보낸 서신이 있습니다.”
호모(狐毛)와 호언(狐偃)이 말했다.
“부친께서는 평소 외부에 서신을 잘 보내지 않는데, 지금 서신을 보냈다는 것은 필시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형제는 즉시 그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는 서신을 바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곧바로 몸을 돌려 돌아갔다. 호언은 의심이 들어, 서신을 열어 보았다.
주군이 공자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며, 내시 발제가 사흘 내로 떠날 것이다. 너희 형제는 공자께 알리고 빨리 타국으로 떠나되, 지체하여 화를 당하지 않도록 해라.
형제는 크게 놀라 서신을 가지고 가서 중이에게 아뢰었다. 중이가 말했다.
“나의 처자가 이곳에 있으니 여기가 내 집인데, 장차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호언이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차 나라를 도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멀리 갈 수 있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이곳에서 쉬었던 것뿐입니다. 이제 이곳에 온 지도 이미 오래되었으니, 마땅히 대국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제 발제가 오는 것은 하늘이 공자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이가 말했다.
“그러면 어느 나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齊侯가 비록 늙었다고는 하나 아직 패업을 잃지는 않아, 여전히 제후들을 통솔하고 현명한 선비를 등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죽어 제나라에는 제후를 보좌할 현명한 인재가 없습니다. 공자께서 제나라로 가시면, 제후는 필시 예로써 대접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晉나라에 변란이 일어난다면, 제나라의 힘을 빌려 복귀를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중이도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사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중이가 아내 계외에게 말했다.
“晉侯가 사람을 보내 나를 죽이려 하고 있소. 일단 독수(毒手)를 피해 멀리 대국으로 갔다가, 秦나라나 楚나라와 결연하여 귀국을 도모하고자 하오. 당신은 정성껏 두 아들을 잘 키워 주시오. 내가 25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타인에게 개가하도록 하시오.”
계외가 울면서 말했다.
“남편이 천하에 뜻을 두고 있는데, 첩이 감히 만류할 수 있겠습니까? 첩의 나이가 지금 스물다섯인데, 다시 25년이 지나면 첩은 늙어 죽을 것입니다. 어떻게 개가하겠습니까? 첩은 당신은 기다릴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조쇠 역시 아내 숙외에게 부탁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계외와 숙외 및 그 아들들은 훗날 어떻게 될까?]
다음 날 아침, 중이는 호숙(壺叔)에게 타고 갈 수레를 준비하라 이르고, 재물을 관리하는 두수(頭須)에게 황금과 비단을 챙기라고 분부하였다. 그때 호모·호언 형제가 황망히 달려와 고했다.
“부친께서 또 사람을 보내 왔는데, 발제가 명을 받은 다음 날 출발했다고 합니다. 부친은 공자께서 미처 떠나지 않고 있다가 화를 당할까 두려워, 서신을 쓰지도 못하고 발이 빠른 자를 급히 보내 공자께서 빨리 피하라고 재촉하셨습니다. 시각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중이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발제는 어찌 그렇게 빨리 온단 말인가?”
중이는 행장도 미처 꾸리지 못한 채, 호씨 형제와 함께 걸어서 성을 나갔다. 호숙은 중이가 이미 떠난 것을 알고 송아지가 끄는 수레 한 대를 몰고 급히 그 뒤를 따라가 중이를 수레에 태웠다. 조쇠와 서신(胥臣) 등 여러 사람들도 뒤를 이어 쫓아왔는데, 수레를 타지 못하고 모두 걸어서 왔다.
중이가 물었다.
“두수는 왜 아직 오지 않소?”
누군가가 대답했다.
“두수는 모든 재물을 챙겨서 달아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이는 이미 보금자리를 잃은 데다 노자마저 없어졌으니, 그때의 심정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하지만 사정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떠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바쁘기가 마치 상가지구(喪家之狗)와 같고 급하기가 마치 누망지어(漏網之魚)와 같았다.
[‘상가지구’는 ‘초상집의 개’라는 뜻인데, 초상집은 개에게 먹이를 줄 경황이 없어서 개가 수척해지게 되므로, 수척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얻어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누망지어’는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라는 뜻으로, 죽을 지경에서 간신히 살아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혹은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범인을 비유하기도 한다.]
첫댓글 과연, 중이의 앞으로의 행로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