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길, 봄기운 디뎌 밟아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맞은 삼월 하순이다. 토요일은 서울을 다녀오니 늦은 밤이었고 일요일은 한림 강가와 들녘을 걸으면서 봄기운을 받았다. “살붙이 만나려고 서울에 올랐다가 / 녀석이 사는 모습 멀찍이 지켜보고 / 지하철 중곡역에서 돌려세워 보냈다 // 하행선 출발 일러 공예전 둘러보고 / 지정된 객차 올라 용산을 빠져나와 / 철교를 건너는 창밖 노을빛이 비쳤다”
토요일은 한강을 건너온 열차에서 ‘한강 노을빛’을 봤고, 일요일은 근교 산에 불이 나 소방 헬기가 강물을 퍼다 나르며 진화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월요일 아침 자연학교 등교에 나서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가니 꽃대감 친구와 안씨 할머니 꽃밭을 살펴봤다. 이른 시각이라 주인이 내려와 있지 않아도 수선화를 비롯해 초본에서 피어나는 여러 가지 봄꽃을 완상했다.
이후 아파트단지 인근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로 창원역 앞에서 근교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난 가월마을 앞에서 내렸다. 물에 잠긴 둥치가 고목이 되어 삭기도 한 동판저수지 갯버들에서는 연녹색 잎이 트려는 즈음이었다. 바야흐로 갯버들은 꽃가루가 날리면서 유록색 잎이 싱그러워지는 계절을 맞았다.
주남저수지 들머리 한 카페 뜰에는 야생화가 피어 피사체로 놓치지 않았다. 솜털이 보송한 할미꽃이 무더기로 피었고 양지바른 곳답게 양지꽃 송이도 보였는데 햇빛이 구름에 가려 꽃잎은 오므려 있었다. 조경석 돌 틈에 자란 돌단풍은 밀어 올린 꽃대와 함께 잎이 돋았다. 출근하는 주인이 몰아온 차를 세우려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 운전대를 잡고 물끄러미 지켜봐 준 배려가 고마웠다.
주남저수지 둑길 따라 걸으니 그곳도 동판저수지처럼 갯버들이 연둣빛으로 물드는 때였다. 둑길 가장자리 색이 바랜 물억새는 잘라 눕혀 놓았는데, 곧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싱그러운 순을 잘 드러내기 위함인 듯했다. 여기저기 쑥이 돋았는데 주말 이틀 산책 나온 이들이 쪼그려 앉자 등 뒤로 햇살을 받으며 캐 갔을까 싶었다. 월요일 아침은 산책객 발길이 끊어져 호젓하기만 했다.
둑길을 걷다가 흐린 하늘에 빗방울이 들어 탐조대로 올라가 비를 피했다. 마침 이제 막 출근한 직원이 맞아주었는데 월요일 탐조대 개관은 3월 말까지만 열어둔다고 했다. 겨울새가 떠난 4월부터 10월까지는 여느 박물관처럼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했다. 탐조대 실내에 머물면서 아까부터 앵글에 담은 주남저수지 봄 풍경을 몇몇 지기들에게 실시간으로 보내면서 아침 안부로 대신했다.
드넓은 저수지 수면에는 새들이 거의 떠나 빈 둥지로 연상되었으나 여남은 마리 쇠기러기가 보였는데 마지막 무리인 듯했다. 그 곁에는 겨울에는 개체 수가 드물던 흰죽지들이 여러 마리보였다. 오리류에 속하는 흰죽지는 몸짓이 가벼워 동작이 민첩했다. 텃새로 머물기도 하는 가마우지는 왕성한 먹이활동으로 배출시킨 분변이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백화 현상을 일으킬 정도였다.
주남저수지 둑길에서 북쪽으로 더 나가지 않고 주천강 물길이 시작되는 배수문에서 천변을 따라 걸었다. 냇바닥 가장자리는 태공이 몇 보였는데 주남지는 낚시 금지구역이라 그곳을 피한 수문 밖에서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찌를 응시했다. 둑길 남향 언저리는 야생 갓과 절로 자란 유채가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볕 바른 곳에 일찍 꽃을 피운 십자화과는 좋은 밀원이 될 듯했다.
주천강 둑에서 판신마을과 주남마을 사이로 놓은 돌다리를 건넜다. 돌무더기를 기둥 돌로 쌓아 커다란 판석을 걸친 옛 다리는 도 지정 문화재로 보존 가치가 높다. 고인돌이 연상되는 상판은 800년 전 정병산 정상에서 옮겨왔다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다. ‘새다리’로도 불리는 주남 돌다리는 건너 고등포에서 상등을 거쳐 상포로 가니 비닐하우스 안에는 봄 감자가 싱그럽게 자랐다. 25.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