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수도꼭지 아래서 여자의 껍질을 벗겼어
여자는 깔깔거리며 양파처럼 잘도 벗겨졌어
어두운 밤이 한 꺼풀 벗겨지자 투명한 낮이 솟아올랐어
신선한 알의 물컹한 속처럼
배수관을 타고 피가 쭉쭉 빨려 나갔어
그러지마 그러지마 느네들 왜 그래 누군가 울었어
낮을 쪽쪽 빨아먹으면 슬픈 맛 매운 맛 밤이 솟아오르고
천년만년 세세무궁 낮밤은 그 짓을 되풀이했건만
여자는 훌러덩훌러덩 잘도 벗겨졌어
양파를 벗기던 남자는 눈이 매워서 울었어 여자도 덩달아 울었어
아 그리고 그래서 그럼에도 오늘 낮이 가고 밤이 왔건만
나는 어디 있었는지 매운 껍질의 갈피 어디 숨겨져 있었는지
자꾸만 물어보다 돌아보면 여자의 몸은 다시 그래도
남자는 울면서 자꾸만 울면서 여자의 껍질을 벗겼어
양파처럼 다 벗겨지고 나니 나는 없는데
나를 나라고 부르던 나는 어디 숨어 있었던 것인지
매운 껍질들 다 벗어놓고 밤은 마룻장 밑에 숨어서 떨기만 하는데
저 바다는 바지를 벗었다가 또 입었다가 한없이 그러는데
여름엔 더웠고 겨울엔 추웠어 모두모두 흘러가 버렸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이야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