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사랑이다-3
5.
5년. 이제 그 운명이 끈을 늦추었다. 그리고 그는 지선경을 실제로 만나기 위하여 대전으로 가고있다. 비행기가 랜딩을 위하여 기수를 아래로 낮추며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멧세지를 듣고 그는 다시 한번 약속한 장소의 약도와 시간을 확인하였다. 그에게 대전은 낮 설었다. 아마도 근 25년 만에 가는 곳이다. 가슴은 온통 두근거림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도록 하였다. 첫 만남의 설램. 그것도 운명이 정해준 영혼의 아내를 처음으로 만난다는 것은 인생 일대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낮 12시. 인터콘티넨탈 호텔 커피 샾 안의 오른쪽 창가. 사실 그곳 실내의 오른쪽에 창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 조차도 운명에 맞겼다. 이미 사진을 통해 너무도 많이 봐 왔던 지선경이기에 설사 창가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걱정은 어떻게 또 다른 시작을 하느냐 였다. 무슨 말로…
“서영아~ 오늘 엄마는 좀 늦는다. 그러니 먼저 오게되면 혼자서 저녁 식사해. 응. 할 수 있겠지?”
“엄마~는~. 제가 아직 어린앤줄 아셔요? 근데, 엄마! 데이트라도 하슈~”
“응. 아주 귀한 사람을 만난단다. 나중에 너도 만나야 할 사람. 더 이상은 묻지 말 것. 오케이?”
“옛써~ 엄마.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저는 먼저 출근합니다.”
“서영아~ 차 조심”
“예. 알았어요. 사람조심하고 밤 늦게 다니지 말라는 말씀을.”
서영이 돌아보며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어머니가 하여야 할 말을 다 했다. 그런데,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어머니도 차조심 그리고 남자들 조심하세요. 이쁘고 아름다운 우리 엄마 누가 채어갈까 걱정이네요.”
딸이 걱정해서 하는 소리지만, 듣는 지선경은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 나도 잘 할 수 있단 말이야’ 서영이 등 뒤에다 나즈막히 속삭이며 뛰는 가슴을 안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선경은 텅 빈 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서성이며 어떻게 그를 만날까 생각하였다. 특별히 꾸미지는 말아야 할 것이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야한다 생각하였다.
선경은 아파트 앞 길에서 택시를 잡았다.승용차를 가져 가는 것 보다는 택시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였다.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가 주세요.”
마음 좋아 보이는 60대쯤의 운전사는 뒷 자석에 앉는 그녀를 빽미러로 훔쳐 보았다. 아마 택시 기사는 그녀가 차 안으로 들어오며 풍기는 화장품 냄새와 가볍게 뿌려 둔 아카시아 꽃 향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천지수가 아카시아 꽃향기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논산 훈련소에서 맡은 그 아카시아 향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하였다. 짙은 화장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서도 역시 은은히 풍기는 화장품 향기는 여자로서의 흔적을 여지없이 나타내었다.
“오늘은 운이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아름다운 분을 첫 손님으로 모시게 되어서요.”
지선경은 그가 손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가식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느꼈다. 어쩧던 기분은 좋았다.
“농담으로 듣기 좋아라 하는 말씀은 아니시죠. 기사님?”
“예. 저는 아무에게나 그런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느낀 그대로 본 그대로를 말씀드렸습니다. 손님의미소도 참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그는 정말 기분좋은 듯이 환하게 웃었다.
“기사님. 그곳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흠. 지금의 도로 상태라면, 2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손님은 목소리도 특이하게 아름답고 맑게 들립니다. 참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지선경은 천지수가 오랫동안 손에 차고있던 시계를 우편으로 보내 준 약속의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흰색 문자판에 날짜와 요일이 나타나고 시간을 표시하는 숫자에는 초록색 사파이어가 12개 박혀 있었다. 18K 금으로 된 참 이쁜 시계였다. 속지 않기 위하여 뒷면의 태엽과 기어들이 돌아가는 모습이 환히 보이도록 투명 튜랼리움으로 커버한 자동시계를샀다 하였다. 천지수가 어떻게 이런 시계를 차고 있었는지 가 궁금할 정도였다. 지선경을 위하여 산 시계같았다. 크기도 여자용과 남자용의 중간쯤 되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 시계는 어쩧던 남자용이었다. 그 시계 바늘은 오전 11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늦어도 약속한 12시에서 15분전 쯤에는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선경은 택시 뒷좌석 등받이에 등을 묻고 눈을 감았다. 언제 만날지도 모를 것 같았던 아련한 그리움속의 사람. 막연히 혼자된 영혼을 달래느라 시작한 관계인 것 같았지만, 지선경에게는 언제부터인가 그 사람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이 들었다. 세상으로 박차고 나갔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한 아이를 키우며 조그마한 학원을 운영하며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운명으로느껴졌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만날 수 없었더라도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숱한 유혹이 있었지만 다 견디어낸 것도 오직 이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을 만난 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계획도 없다. 그러나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만나 본 후 모든 것을 흐르는 운명에 맡기기로 하였다.
“사모님. 도착하였습니다.”
택시 기사의 말에 깜짝 놀라 상념을 거두고 밖을 보니 인터콘티넨탈 호텔정문이었다.
“좋은 날 되세요. 기사님!”
팁과 함께 이만 오천원을 두고 내렸다. 6월의 금요일 하늘은 맑고 공기는 신선하였다. 중국 대륙에서 불어 닥쳐오는 황사는 올4월 한 동안의 극성스러운 기세를 제외하고는 끝쳤는지 더 이상 기척없이 맑은 초 여름의 훈훈한 날이 계속되었다.
회전식 정문 출입문을 열고 호텔안으로 들어갔다. 초 특급 호텔답게 분위기가 화려하였으며, 넓은 홀 안 여기 저기의 곳 곳에서 삼삼 오오 손님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과연 특급 호텔 답다고느꼈다. 그러나 지선경에게는 생전처음 들어와 보는 호텔이고 분위기였다. 지선경의 모습은 그 많은 화려한 분위기속에 자태를 뽐내는 어느 여성들 보다 빼어났다. 시선을 끌기에 족할 아름다운얼굴과 하얀 드레스 셔츠위에 걸쳐입은 평범한 쉐타에 평범한 네비블루 컬러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지만 영화배우나 티비 탈렌트가 나타난 것 같았다.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남성들의 시선이 지선경에게 몰렸다. 그녀는 잠깐 어리둥절하였다. 분위기가 그녀를 압도하였고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모님?”
곤색 유니폼을 입은 젊은 직원이 다가와 공손하게 물었다.
지선경에게는 그것마져 당황스럽게 하였다.
“커피샾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하였어요. 커피샾이?”
지선경이 말을 다 마치기 전에 직원 등 뒤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천지수는 호텔에 체크인을하고 라비로 내려와 커피샾을 찾았다. 다행히 커피샾은 일층 라비 우측편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막연히 예상한 것과 틀림없이 같은 창가에 양쪽 2인용 쇼파들이 유리로 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여러개 자리하고 있었으며 장미목으로 만들어진 등받이에는 양각으로 조각이 잘된 의자 4개가 원형 유리 테이블 주위에 놓여져있는 몇 몇개의 좌석 중 하나를 잡았다. 그는 예상과 맞음에 크게 만족하였고 시작이 좋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자 곧 입구를 주시하였다. 먼저 지선경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손목시계를보니 10분 전이었다. 그 때 회전문을 밀고 들어오는 여성이 보였다. 눈감아도 그릴 수 있는 모습의 지선경이었다. 그는 빨간색 피러앤잭슨 담배와 일회용 라이터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일어났다.
호텔직원이 지선경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지선경!”
그는 나지막히 불렀다. 호텔직원은 고개를 돌려 그 보다 더 큰 천지수를 보고는 흠칫 놀랐으나 곧 안심한듯 고개를 숙인 후 돌아갔다.
“천지수!”
그녀도 속삭이듯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그렇게 5년만에 그들 각자의 사랑의 실체를 서로 확인하였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들 각자는 그 짧은 시간에 만감이 교차하였다. 이렇게 만나는 것을.
천지수가 손을 내밀었다. 지선경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망설였다. 천지수를 만나면 이렇게 할 것이다 하던 생각들이 다 어디로 숨어 버렸단 말인가. 그가 내민 손을 잡지 못하고 눈물이 먼저 그녀의 눈가에서 볼을 타고 내렸다.
“천지수! 여보. 내사랑!”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사이도 없이 천지수의 가슴으로 쓰러졌다. 쓰러져 오는 지선경을 그대로 안은 천지수는 지선경을 다시 힘껏 꼭 안았다.
“지선경. 내사랑.”
창가에 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지선경을 보며 천지수는 가슴에 치밀어오르는 설레이는 감동을 억 누르기 힘들어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두 사람 모두 격한 기쁨의 감격에 빠져 있었다.
천지수가 헤즐럿 커피를 두잔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지선경은 손수건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다시 천지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지선경~ 어서 커피 받아.”
천지수의 한없는 사랑이 담긴 목소리도 젖어 있었다. 고개를 끄득이며 받은 커피를 테이블에 놓고 거렁이는 눈물 가득한 눈을 들어 말하였다.
“여보! 천지수. 당신 맞아요?”
그녀는 아직 꿈속에서 천지수를 만나고 있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지선경. 그래. 나 천지수 맞아. 당신을 만나려고 에드먼톤, 캐나다에서 온 천지수. 그 천지수 맞아.”
“어서 그 손 이리 줘 보세요. 당신을느끼고 싶어요.”
지선경은 테이블 위로 천지수의 두 손을 그녀의 두 손으로 힘주어 꼭 잡고는 다시 얼굴에 대었다.
“아~ 여보! 내 사랑 천지수. 이렇게 만났군요.결국은 우리가 만났군요.”
그녀는 흐느끼며 말하였다. 천지수는 끝없을 것 같이 그녀를 바라 보았다.
천지수가 투숙한 호텔 룸 번호는 715호였다. 창밖으로 멀리 얕트막한 산과 소나무 숲이보였다. 그들은 룸 안으로 들어서자 누가 먼저라 할 것없이 뜨겁고 짙은 포옹을 하였다. 키스는 뜨겁고 달콤하였다. 천지수는 그녀의 입술이 한없이 부드럽고 매끈하고 싱싱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뱃어내는 숨 또한 축축한 흥분으로 짙은 단내음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금새 냉정을 찾았다. 첫 날 밤을 이렇게 충동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지선경의 붉게 물든 뺨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인.
내 운명이 당신의 운명과 합쳐져 함께 하여야 할 내 여자. 그는 뜨거운 감동에 못 이겨 다시 두 팔을 그녀의 허리에 돌려 안고 힘껏 안았다. 깊고 뜨겁게.
“아, 아, 아~ 천지수. 나 이대로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요. 어서 한 몸이 되어 나를 당신의 아내로 여인으로 만들어 주세요.”
“지선경. 당신만을 한도 끝도없이 사랑한다. 내가 죽어도 당신 영혼을 놓치지 않을거야. 우리의 영혼은 육체와 관계없이 맺어진 때문이다. 사랑한다. 지선경. 영원 그 끝 넘어까지…”
6.
“천지수! 내사랑.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거예요?”
“응. 선경아. 전에 당신에게 간단하게 말한 것과 같이 멜번에 도착하여 바로 호주의 중앙지대인 엘리스 스프링스에 내려 오래 전의 친구인 와이카바씨를 만나 그의 안내로 옐로우 스톤 주변을 돌아보며 하룻밤을 그 곳에서 숙박하고 별 일없으면 씨드니로 가 일단 휴식을 좀 취하고 그러면서 다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는거야. 당신 생각은 어때?”
“저는 요~”
지선경은 뜸을 드리며 천지수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왜? 다른 좋은 생각이 있어?”
“아니요. 나는 그저 당신과 같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즐겁고 행복한 걸요. 당신 손잡고 들어가는 불구덩이 속이라도 나는 행복해 할거예요. 또 그렇게 제 의견을 물어주는 당신이 너무 좋아요. 그런데, 손바닥에 넣어서 만지고 있는 것이 뭐예요? 틈만나면 주머니속에서 든 손바닥에서 든 조무락거리며 만지고 있던데요?”
선경이는 기여코 묻고야 말았다. 그녀는 유심히 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게 뭘까 하며 궁금해 하였던 것이다. 설마…하며 궁금해 하였고, 언제나 몸에 지니고 있어서 질투나기도 하였다. 천지수는 손 바닥을 펴고는 눈 가까이 들어 올렸다. 조그마한 막대기 같았다. 지선경은 더욱 궁금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맑고 큰 눈을 들어 어린 소녀가 보채는듯 천지수의 눈을 바라 보았다.
“으응. 이것. 진작 말했어야 하는데…”
“어서 말해봐요. 뭐예요? 누가 준거예요?”
지선경은 놀라서 다시 보챘다.
“으응. 이것. 대나무야. 대나무 쪼가리. 죽변이야.”
그는 지선경이 이해 할 수 없는 말들을 뱃었다. 더욱 궁금해 졋다. 그녀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