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I’m so angry I made a sign
1904년 7월 영국에서 온 베델이라는 청년은
대한 매일 신보를 창간합니다.
영국인의 이름으로 발행되었기 때문에
일제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눈엣가시였어요.
대한 매일 신보를 한글판, 영문판 등을 통해 일본의 실상을 기사로 폭로하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운영하며 일본이 강제적으로 도입한 차관을 갚기 위한 국채보상운동도 지원하였습니다.
이를 기회삼아 일본 정부는 베델이 국채보상운동 모금(의연금)을 횡령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립니다.
그는 이로인한 스트레스로 심장팽창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일제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지연이 쓴 베델의 비문을 깎아버리는 일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1964년에 대한민국전언론인 단체에서
다시 비석을 세웠습니다.
베델의 기사 덕분에 일본인이 탈취한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humor04&wr_id=434193
-------다른 펌글에 관련 정보가 있어 보다가 말 안통하는 일뽕 피폭맞은댓&흥미댓 추가
요놈
국채보상금을 '어디론가' 빼돌린 게 사실이라며
관련기록들 증거랍시고 가져온 게 무려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통감부문서' 여기인데..
나치가 누군가를 누명 씌워놓고
독일 제3제국 정보부 기록에서
범인이라는 증거가 나왔다고 하면 그걸 믿어야 함?
저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방후 일본이 매일신보로 갈아버리고 총독부 기관지로 활용함. 그래서 친일반민족행위자 판별할 때 여기 이름이 나와 있는 사람은 사실상 조선 총독부가 인증한 부일매국노라 보면 무방함.
이후 해방된 후에 매일신보는 서울신문이라 개칭했지만 이때는 이승만 정권에 아부한 흑역사가, 그리고 4.19 혁명 때는 그야말로 부역자 신문으로 찍혔지만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짐.
(→창시자의 목적이 좋았더라도 사후 탈선은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창시자의 횡보는 기억했으면!!! )
당시 영국 국적이 goat인게
대놓고 일본인,개 출입금지 간판걸고
이외에도 대놓고 일본까는 기사나 그런거 막 실었다고..
근데 대표가 영국인이라 건들면 바로 외교분쟁 ㅋ
첫댓글 이를 악 물고 흥미로운 정보 공유하는 척 일본 편을 드네
그리고 아예 다른 나라 일인데 저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도우려했다는 게 놀랍다…
진짜 쪽바리 왤케 많냐
저새끼가 글쓴 거 목록 보니까... 각 나옴. 잔존 일본인이 뿌리깊게 박힌 거 알겠음.
진정한 언론인
명예쪽바리 왤케많아
베델님 감사합니다
베델 제사 지내주자
얼마나괴롭혔으면 스트레스로 사망까지..
나쁜 쪽바리들 ..
남의 나라인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도와줬을까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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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구먼
하...ㅜㅜㅜ
진짜 쪽바리, 명예 쪽바리들 다 고통 받아라
베델씨 감사합니다...
아니 진짜 일본 왜저렇게들 좋아하는거야???? 자료까지 찾아가며 쉴드 어지간히 쳐주네... 진짜 이해불가... 이래놓고 나치는 부득부득 욕할거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