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일부터 7월 7일까지는 정부에서 지정한 양성평등 주간이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에 대하여 생각하려면 우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되며 평등해야 한다는 인식과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존재 가치가 있으며, 인격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엄하고 귀중한 존재이며 어떠한 불평등이 존재해서도 안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언제 어디에서나 똑같이 지켜져야 하고 변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이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우리 헌법이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공표하고, 이를 모든 법과 국가 통치로부터 고유한 인간의 가치로 보장하고자 하고 있다.
세계 제1차 대전 이후에 발생한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의 제국주의 등의 전체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강제노동, 전쟁을 통한 대량학살 등의 비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각 나라의 헌법들은 앞다투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규정을 규정하였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학살된 유대인은 600만 명이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학살 대상이었다. 워낙 대규모로 저질러진 학살이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은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으로 독일의 중령으로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일단 미군에 체포됐지만 가짜 이름을 사용해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후 일단 이탈리아로 도주했다가 1960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돼 1961년 4월 11일부터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사형 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재판 당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후에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부당한 명령이라도 해도 한 번 받아들이면 무비판적으로 그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즉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정치적 구조악에 대한 저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뉴요커』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 과정을 취재한 후 책을 출간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이라는 책에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나치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하며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아렌트의 기사는 곧 미국 전역에 퍼지고 세계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악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인물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이히만과 관련하여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 ~ 1980)은 '관료주의적 인간'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아이히만은 관료의 극단적인 본보기였다. 아이히만은 수십만의 유대인들을 미워했기 때문에 그들을 죽였던 것이 아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누구를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유대인들을 죽일 때 그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그들을 독일로부터 단지 신속히 이주시키는 책임을 맡았을 때도 똑같이 의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그는 규칙을 어겼을 때에만 죄의식을 느꼈다. 그는 단지 두 가지 경우에만, 즉 어릴 때 게으름 피웠던 것과 공습 때 대피하라는 명령을 어겼던 것에 대해서만 죄의식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아이히만이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했던 것이 그가 악의에 가득 찬 살인마여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악이 악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악하지 않은 사람도 악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칸트까지 인용하며 명령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일상성에 묻혀, “누구나 다 이러는데” “나 하나만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등의 이유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는 언제든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보다 선하게 만들고 싶다면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차별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恣意的)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를 이야기하며 일반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과는 거의 무관하거나 전혀 관계없는 생각에 근거하여 열등성을 부여하는 제도화된 관행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관행대로 행동하거나 판단하여 자기도 모르게 차별을 행하는 오류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성차별, 인종차별, 고용차별 같은 문화의 문제점들이 사실 다시 생각해보고 항의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계속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여러 차별 문화를 고치고 좋은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각들이 과연 옳은지 정당한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좋지 않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이나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사람의 처절한 희생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한다면 그것의 아름다움은 그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 아픔이 되고 만다.
문화정책이 가야 하는 방향도 문화정책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정책들도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지 어떤 집단에게만 유리하고 정책으로 인해 피해당하는 사람이 혹시 존재하지 않는지 살피고 만약 생각지 못했던 피해나 부당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면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인간이 만드는 인식의 틀이 자신은 옳다고 확신하나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고 조금 더 생각하고 알아가다 보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편협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독단이나 독선 또는 편견에 빠져있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이미 완성된 제도나 정책이라 할지라도 사회가 변하면 맞지 않을 수 있고 또 부족한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방식도 계속 변하고 문화 또한 변화하기 때문에 제도나 정책들을 수정 보완하며 개선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인권이 포함하는 권리의 내용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여성,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북한 이탈 주민,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 보호로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차별 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용모 등의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이나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 처분,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법률이다. 한국에서는 국가인원위원회에서 2003년부터 차별 금지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사실 아직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차별 금지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으나 우리 헌법에서 이미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구체적인 법률이 아니더라도 사실 국민들의 균등한 권리가 보장된다.
그런데 나라가 없으면 어떠한 자유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이지만 여러 가지 부분에서 필사적으로 국민들을 지키며 우리 국민의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또한 국민들도 국가에서 미처 하지 못한 부분은 스스로 채워나가며 함께 참여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 문화적으로 선진화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모두가 함께 노력해나가야 한다. 국가 간에 소리 없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면서도 좋은 방법과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늘 염두에 두고 최대한 부당하게 차별받는 사람이나 집단이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차별받고 있다면 권리를 주장하거나 제도나 정책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가치이나 사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지켜지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이상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첫댓글 좋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