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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19구간을 이어갑니다.
지도 #1
12:34
산동 ~ 주천 구간이 15.1km에 6시간 소요.
일반적인 둘레꾼들의 평균 소요시간으로 이해합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폰이 흔들리는군요.
진행 방향 우측 끝으로 뾰족하게 만복대1433.4m가 보이는군요.
어디서 보더라도 서부 지리의 중심은 역시 만복대와 반야봉입니다.
물론 찾기는 노고단이 제일 쉽지만....
중간에 움푹 들어간 데가 다름재.
작년 가을 다름재 좌측 1048.3봉에서 우틀하여 구룡폭포로 진행을 했었죠?
백두대간이 물을 건넌다는 한 지리학자의 변辯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잠깐이지만 19번 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12:44
저 앞에 보이는 현천마을 표지석에서 좌틀하여 토끼굴을 빠져 나갈겁니다.
토끼굴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지만 계속 직진하여 마을 안으로 올라갑니다.
서시(견두)지맥 라인이 바짝 앞으로 다가오고.....
잠시 뒤를 돌아봅니다.
백두대간 라인이 일렬로 섰습니다.
비닐하우스와,
민가 몇 채를 지나니,
12:54
당산나무와 주차장이 있는 현천마을입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직진하면 견두산으로 올라가는 등로이지만 둘레길은 우틀하여야 합니다.
다시 백두대간 라인을 봅니다.
우측에 종석대, 중앙에 작은고리봉 그리고 좌측의 만복대까지.....
둘레길은 저 앞 당산나무에서 이 현천제 뚝방으로 올라서서 진행을 합니다.
그러고는 우틀하여 저 당산나무를 보고 진행하여,
폐가 몇 채를 지나야 합니다.
여기서도 좌틀하면 견두산으로 오르는 등로이니 직진을 합니다.
13:17
안내판을 보고,
부드러운 길을 따르면,
둘레길은 좌로 휘어지면서 계척제를 지나 계척마을로 들어섭니다.
홀로 산책을 하시던 동네 어르신께서 무척이나 심심하신가 봅니다.
혼자 다니기 심심하지 않느냐 물으시는군요.
이 동네에는 노인들도 별로 안 계시나 봅니다.
이제 농사일이 시작일 텐데.....
13:26
삼거리가 나옵니다.
지도 #1의 '나'의 곳입니다.
이 루트가 좀 문제입니다.
둘레길 이정목은 직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좌틀하여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일단 직진을 하면 바로 우측에 산수유 나무가 보입니다.
안내판을 보니,
이 나무가 산수유 할아버지 나무라는군요.
우리나라 산수유 생산량의 70%가 이 산동면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산수유 나무가 이 땅에 자리잡게 된 경로에 대해서 설이 갈립니다.
하나는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에서 이 산동면으로 시집을 온 처녀가 시집올 때 처음 가져와 심었단 설과 조선 초에 경상북도 경주에서 이 아무개씨가 가져와 원달리 갈전마을에 심었다는 설 등이 그것입니다.
어쨌든 관리에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니 농한기의 노민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득거리라고 하는군요.
이 산수유시목지가 있는 곳은,
마침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구례지역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구례군에서는 이렇게 공원을 조성하여,
장군의 행로를 백의종군길과 수군통제사 길이라이라 하여 탐방로를 조성하였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들면 이 길도 탐사하여야겠죠.
어쨌든 이 부근의 둘레길은 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도 #1
즉 보라색 길과 녹색 길 두 개로 보면 됩니다.
원래 둘레길은 보라색 길로 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뒤에 생긴 위 공원으로 인해 노선이 변경된 것입니다.
산수유 시목지와 충무공 공원을 실수로 빠뜨리지 말고 확실하게 즐기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사) 숲길의 둘레꾼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저는 좌틀 코스 즉 보라색 길을 택했습니다.
꼬불꼬불한 길을 가다보면,
13:43
7분 만에 이정목을 만나면서 아까 우회했던 길과 합류합니다.
지도 #1의 '다'의 곳입니다.
주천까지는 아직 11km가 넘게 남았군요.
13:49
계척마을 체육공원입니다.
지도 #1의 '라'의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도대체 계척 마을 주민이 몇 명이나 된다고 이런 곳에 이런 공원을 조성해놨는지 모르겠군요.
정신 나간 사람들 아니고서야.....
아주 호사스러우나 황폐해 가고 있는 멋진 체육공원입니다.
13:51
시멘트 포장도로를 계속 따르다 우측으로 이정목이 보입니다.
좌틀하여 산길로 진입하라는 얘기입니다.
지도 #1의 '마'의 곳입니다.
지도 #2
나무 계단 등으로 잘 닦여진 길을 따르면,
쉼터도 있고,
편백나무도 있는 숲길을 아주 편안하게 걷게 됩니다.
평상은 물론 화장실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마치 휴양림에 온 느낌입니다.
맑은 개울물에 세수도 하고 손으로 떠서 두어 모금 마셔보기도 합니다.
아주 시원하고 맛깔납니다.
개울을 따라 고도를 높입니다.
14:20
대나무 숲을 지나,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백두대간의 종석대1360.9m가 좌측에 우뚝 솟아 있고 그 줄기는 차일봉1004.7m 내려가고 다른 한 줄기는 우측으로 간미봉728.4m을 빚어 놓았습니다.
현지에서는 뚜렷하게 조망할 수 있습니다.
민가를 만나면서 우틀합니다.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200m 가면 밤재 터널입니다.
터널 앞에는 공사하느라 인부들과 차량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직진합니다.
14:29
삼거리에서 4분 정도 올라가면 또 3거리가 나옵니다.
지도 #2의 '바'입니다.
이정표와 둘레길 이정목은 직진하는 큰 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좌측으로도 표지띠가 날리고 있습니다.
참고도 #2
설명을 드리자면,
위 참고도 #2의 보라색 길은 제가 진행한 루트이고 지금 이 위치가 바로 '삼거리'입니다.
녹색 길로 평범하게 오르는 길은 힘들지 않고 완만하게 우회하여 밤재로 오르는 길입니다.
반면 좌틀하여 진행하는 보라색 길은 밤재터널로 올라온 지맥꾼들이 사용하던 길이었습니다.
서시(견두)지맥에 대해서는 지난 오미 ~ 난동 구간 때 자세하게 설명드렸습니다.
만복대 3거리 ~ 밤재 ~ 견두산 ~ 천마산 ~ 깃대봉 ~ 서시천과 섬진강의 합수점에 이르는 산줄기죠.
지맥꾼들은 도상거리 약 37km되는 이 서시지맥을 보통 2 ~ 3구간으로 나눠 진행합니다.
3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지맥꾼들의 첫 구간은 보통 만복대 3거리 ~ 밤재로 끊게 됩니다.
이때 지맥꾼들이 날머리나 들머리로 밤재터널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 지맥꾼들이 이용하는 루트가 바로 이 보라색 길입니다.
아무래도 산꾼 중에서도 숙련된 고수들인 지맥꾼들이 이용하는 만큼 난이도가 있는 루트겠죠.
그래서 (사)숲길에서는 누구나 편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우회하는 평이한 루트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안전이 제일입니다.
좌틀하여 지맥 길 진입루트를 이용한다면,
된비알을 올라 좌틀하면 평이해지다가,
편백나무 숲으로 들은 다음,
14:41
그러고는 밤재입니다.
밤재에는 정자와 벤취 그리고 이렇게 표지석과,
이정목, 물통 등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밤재에서 둘레길은 서시지맥과 만납니다.
그런고로 이 이정표는 지맥꾼들이 보는 것이지 둘레꾼들을 위한 이정목이 아닙니다.
둘레꾼들은 저 계단을 오름이 없이 그냥 직진하여 내려가는 길을 이용해야 합니다.
잠시 지리산을 봅니다.
아까와는 또 다른 지리가 다가옵니다.
좌로부터 만복대, 작은고리봉이 보이고 그 사이로 둔부같은 반야봉입니다.
노고단 옆의 KBS의 송신탑이 보이니 그 옆의 뾰족한 게 종석대입니다.
대단합니다.
이 맛에 둘레길을 하는 겁니다.
반야봉을 좀 당겨볼까요.
이제 주천까지 7km 남았습니다.
두 시간이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니 5시 26분 기차는 충분히 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밤재에는 또 하나의 표지석이 있군요.
왜구도 좋고 왜놈도 좋을 것입니다.
뭐라고 부르던 사과 한 마디 없는 왜놈들에게는 아무렇게나 불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일본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배워 극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표지석의 내용인즉슨 멀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가까이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무고한 양민들과 농민군들을 살육한 왜놈들이 지난 길이라는 것입니다.
1597. 8. 7. 구례 봉성산 입성하였는데,
같은 달 9일 박계성 등 의병 둔산재 전투에서 패배.
같은 달 13. 남원성 공격.
같은 달 16. 조선군, 명군, 의병 등 패배.
같은 달 21. 전주성 입성.
명나라 군인들이 뭐 전투라도 제대로 했겠습니까?
다 우리나라 의병들 몫이었겠죠.
이제 구례군 산동면을 버리고 남원시 주천면으로 들게 됩니다.
그 남원시내를 봅니다.
여기서 남원성을 정찰하기 딱 좋았겠군요.
일제가 만든 소위 구례와 남원을 잇는 신작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우측으로 미니 태양광발전소를 봅니다.
좀 보기 안 좋군요.
친환경인가요?
자연 파괴 같은데.....
그런데 이 길이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보니 시간이 상당히 걸리긴 합니다.
꾸불거리는 길을 능선을 따라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나옵니다
멋이 있고 운치가 있는 멋진 길입니다.
밤재 터널을 빠져나온 차량이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구례군 산동면에서 보았던 19번 도로를 이제는 남원시 주천면에서 봅니다.
도로 끝에서 좌틀하여 토끼굴을 빠져 나갑니다.
우측은 지리산유스호스텔입니다.
이정목 우측의 수준점을 봅니다.
이곳이 해발272m.
상당한 고지이군요.
15:23
19번 도로를 빠져나가면 60번 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우측으로 19번 도로에서 나오는 진출로가 보이고,
지도 #5
그 진출로에서 30여 m 아래 '둘레길'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려는데 개쉬키 두 마리가 개거품을 물며 짖어댑니다.
당연히 입마개와 개줄은 없는 상태.
새끼와 같이 있는 걸로 보아 암놈인데 혹시나 지 새끼를 데리러 왔는 지 착각을 한 상태 같습니다.
부득이 진입을 하지 못하고 일단 후퇴.
궁리를 합니다.
스틱도 없고...
그렇다고 인간이 개하고 싸움을 할 수도 없는 노릇.
돌맹이 몇 개를 주워서 다시 진입할까?
그냥 진출로로 들어가 19번 도로를 횡단해 버려?
15:31
일단 19번 도로 진출로로 진입을 합니다.
차량은 절대 진입금지이지만 사람은 다닐 수 있도록 인도까지 만들어진 것을 보면 진입도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웬걸 들어가보니 도로 옆으로 둘레길 표시까지 되어 있고 나무 계단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괜히 사람꼴 안 되게 개쉬키하고 싸우느니 이 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계단을 내려오면,
19번 도로를 통과하게끔 토끼굴이 있는데 그 길을 빠져나오면,
토끼굴을 하나 더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바로 아까 보았던 지리산 유스호스텔을 지나게 되고,
그 길은 곧 산길로 이어집니다.
물길을 두어 개 건너,
운치 있는 길을 따라 걷노라면,
16:02
이내 무너미입니다.
그러고는 내용궁 마을로 들어섭니다.
민가라고는 서너 채 있지만 벌써 농사준비에 열중이십니다.
중앙에 586.2봉이 보이는군요.
저 바로 옆으로 1구간때 지나쳤던 솔정지가 있는 곳이죠.
우측 바로 아래로는 구룡폭포가 있을 겁니다.
오래된 건물.
류익경 효자비와,
감모재라는 편액이 붙은 재실입니다.
어느 집 가문의 재실인지.....
장안제를 좌측에 두고 민가 서너 채를 지납니다.
아까 온 길은 저 산줄기 우측이죠.
16:16
용수사 삼거리를 지나,
이게 뭔가요?
그런데 저 멀리 백두대간의 고남산846.8m이 보이는군요.
그 좌측 뒤로 요천지맥의 연화산527.3m과 천황산909.6m이 겹쳐 서 있고....
우측으로는 고리봉1305.4m이 머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저 고리봉 뒤로 넘어가면 지리서부능선이 세걸산 ~ 바래봉 ~ 덕두산으로 진행하여 2구간을 마무리하는 구인월로 떨어지게 되겠죠.
용궁교를 건너고,
고리봉에서 백두대간길이 고기리로 내려오는 모습을 봅니다.
둘레길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고남산이 자꾸 숨고 있군요.
16:32
원천초등학교 교정 뒤로 고리봉이 한눈에 잡힙니다.
지리산을 보며 자라는 어린이들.
저 좌측 뒤에 보이는 봉우리.....
세걸산 정도 되겠나요?
정말 멋집니다.
16:35
소나무 옆으로 쉼터가 있고 사무소 하나가 보입니다.
둘레길을 처음 시작할 때 보았던 곳입니다.
오늘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버스가 5시에나 있다고 하니 택시를 불러야겠군요.
여기서 남원역까지 10,000원 정도 나옵니다.
남원역에서 15:26 기차를 기다리면서 지리산을 봅니다.
좌측의 만복대.
구름에 가린 반야봉이니 노고단.
남원을 떠날 때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지리산.
영원한 어머니 산입니다.
첫댓글 정말 멋진 산행기입니다.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며 멋진 역사가 깃든 장소가 많다는 것을 소개해주는 산행기입니다. 재미있게 잘보았습니다. 지도와 사진, 역사, 유래등을 소개해주셔서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