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제 트레킹 클럽을 꾸리는 어느 여행가는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닌다. 밥도 챙겨
먹을 겸 괜찮은 음식점도 찾아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난감한 것이 식당 드나들기다. 멀쩡한 중년 사내가 혼자 밥 먹는 게 머쓱하더니 이젠 이골이
났다. 문제는 혼자 오는 손님은 아예 받지 않는 식당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창 바쁜 밥때에 한 사람이 식탁 하나를 차지하는 게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몇 번 쫓겨난 뒤로 음식점 들어설 때면 무슨 죄인처럼 조심스럽다. 어쩌다 가끔 편하게 맞아주는 곳도 있다. 그럴 때면
천사라도 만난 듯 고맙다.
얼마 전 군산에 갔다 들어간 집이 그랬다. 칼국수 한 그릇을 차려주는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인상도 말도 부드러워서 아주 편안히 먹을 수 있게 해줬다. 그는 "음식이 맛있다고 다 좋은 음식점은 아니다. 아무리 유명해도
손님을 불편하게 하는 집이 많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음식점 다니다 보면 내가 손님이 맞나 헷갈리기 일쑤다. 두어 사람이
이것저것 맛보고 싶어 각자 시키면 으레 주인의 '명령'이 떨어진다. "한 가지로 통일하라"고. 두 사람이 한 그릇 나눠 먹는 건 꿈도 못 꾼다.
2인분 이상만 판다는 집도 흔하다. 남도 한정식 상은 네 명이 기본이다. 비싼 걸로 많이 시키라고 몰아붙이는 집도 적지 않다.
생닭
구이가 이름난 산골 음식점에 간 적이 있다. 닭을 구워 먹고 있자니 젊은 한 쌍이 들어왔다. 둘은 메뉴판 맨 위 7000원짜리 산채비빔밥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안 된다"고 했다. 우리 닭 구이 상에도 갖가지 나물이 오른 걸 보면 안 될 리 없지만 주인은 막무가내다. 둘이 돼지
구이 2인분을 시키자 이번엔 "양이 많지 않아 3인분 이상만 주문받는다"고 했다. 착한 커플은 울상 짓다 3인분을 주문했다. 곁에 앉은 우리까지
밥맛이 떨어졌다.
곤돌라 타고 오르는 어느 스키장 정상 식당에서도 못 볼 꼴을 봤다. 등산 온 옆자리 중년 부부가 우동 두 그릇을
사놓고 배낭에서 김밥을 꺼냈다. 종업원이 달려와 "싸 온 음식은 못 먹는다. 김밥을 도로 넣어달라"고 했다. 부부가 "우동을 사 먹지 않느냐"고
해도 종업원은 "안 된다"만 되풀이했다. 그러더니 결국 "나가라"고 했다.
서울 성북동 오래된 국숫집에서 본 일도 잊히지 않는다.
대학생 같은 커플이 1000원 비싼 '곱빼기' 칼국수 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나눠 먹고 있었다. 주머니 가벼운 데이트가 젊고 예뻤다. 늘 붐비는
집인데도 선선히 한 그릇만 차려준 주인을 다시 봤다.
지난달 통영 서호시장 옆 수정식당에 갔다. 통영에서 복국 잘하는 집에 꼽히지만
일부러 찾아간 이유는 따로 있다. 한 사람 먹기 딱 좋게 일인분 회를 낸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혼자 다니는 여행자는 생선회에 반주 한잔 하고
싶어도 마땅치가 않다. 회를 한 명 먹을 만큼만 주는 집도 드물뿐더러 값도 만만찮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수정식당은 문에 차림과 값을 써 붙였다. 미리 메뉴를 '탐색'할 수 있다. 문 열고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돌아 나오기 쉽지 않은 게 우리네 정서다. 바깥 메뉴판은 합리적인 발상이다. 거기에 '생선회'가 8000원이라고 쓰여
있다. '소금 적게 쓰는 식당'이라는 팻말도 미덥다.
자리를 잡고 주인에게 물었다. "회 조금만 맛볼 수 있을까요." 나이 지긋한
남자 주인 대답이 시원시원하다. "해돌라(해달라)는 대로 다 해드립니데이." 네댓 명이 회 일인분 시키든, 혼자서 몇 인분 시키든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한다. 둘이서 2인분 주문했다.
열린 주방에서 주인이 칼질을 하더니 뚝딱 회 한 접시를 차렸다. 두툼하게 썬 회가 얼핏
봐도 서른 점 넘는다. 참숭어는 껍질째 끓는 물에 잠깐 데쳐 얼음물에 담가 냈다. 껍질은 쫄깃하고 살은 사각거린다. 병어 뼈회가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한 줄 몰랐다. 광어는 냉장 숙성해 쫀든쫀득 차지다. 멍게엔 통영 바다 향이 짙다. 이리 실한 회가 1만6000원이라니 황송하다. 쌈 채소나
구색 곁 음식은 없다. 마늘과 된장만 곁들였다.
복국에 밥을 먹고 있는데 언젠가처럼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쌍이 왔다. 남학생이
쭈뼛대다 물었다. "멍게비빔밥 하나만 시켜도 될까요." 주인이 또 시원스럽게 대답한다. "해돌라는 대로 다 해드립니데이." 둘은 사 온
충무김밥을 꺼내 비빔밥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서울로 돌아와 수정식당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일인분 회도
알찼다. 겨울 어느 날엔 대구·학꽁치·보리멸 회에 굴이 올랐다. 철 따라 봄 도다리, 여름 농어, 가을 전어가 이어졌다.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예순다섯 살 윤도수씨는 1982년 식당을 열어 지금 자리에선 22년째 장사하고 있다고 했다. 32년 한결같이 일인분 회를
차렸다. 그는 "몇 만원씩 하는 회는 사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수정식당엔 활어 수조가 없다. 아니 필요
없다. 매일 새벽 바로 옆 서호시장에서 펄펄 뛰는 제철 생선을 사 오는 덕분이다. 손질한 뒤 그날 상에 올릴 때까지 냉장고에 두면 숙성돼
감칠맛이 난다. 부부가 일하고 주말엔 자식들이 거들어 사람 값도 덜 든다. 제일 중요한 건 마음씨다. "1000원 남을 것, 반만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장사합니데이." 젊은 학생 둘이 김밥 싸 와도 내색 안 해 보기 좋더라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남는 자리, 비워두면
뭐합니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