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로 인류와 화해의 새 계약을 맺으셨으니
저희가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1-12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것을 거부하면 상대를 투명 인간으로 만드는 것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세 번째 예수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가장 완전한 방법은 겸손함입니다. 구조는 마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같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게 되어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처럼, 오늘 복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말씀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버리고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하느님을 스스로 밀쳐내는 것과 같습니다. 순종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얻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가장 완전한 도구이자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뜻’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 높은 뜻을 원한다면 그 뜻을 따름으로 해서 주님께서 계심이 확실해집니다.
선한 목자 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는 오늘 복음과 매우 흡사합니다. 유기성 목사가 군종 훈련을 받다가 다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수술해도 장애자가 된다는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이때 유 목사가 찾았던 것은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 육신의 아버지였습니다. 하느님보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병원에서는 외부로 연락할 길이 없었고, 덕분에 유 목사는 하느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혼자 있는 방에서 크게 하느님 아버지를 세 번 불렀습니다.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그가 목사이지만 실제로는 육신의 아버지를 더 믿고 있어서 하느님께 죄송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목사를 할 수 있나!’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이 지었던 죄들이 생각났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울며 자기 죄를 크게 뉘우치었습니다.
그러자 점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장애를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습니다. 처음 하느님을 부를 때는 그분이 함께 계셔주신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뉘우치고 나니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이 믿어졌습니다. 그는 이제 장애가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다리를 주님께 바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유기성 목사는 처음에 하느님을 부르면서도 하느님께 자기 뜻대로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때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뜻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뜻’입니다. 나의 뜻이 있다면 나의 뜻과 반대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스스로 하느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에 순종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뜻으로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겸손해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예수님께 목숨까지 바친다고 해 놓고 배신한 경험 때문에 자신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누구의 뜻이라도 따르고 싶어질 만큼 자기의 뜻을 믿지 않을 때,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라고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것은 알았으나 거부하며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주님이나 성모님, 성인께서 나타나 주시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겠다고 기도 드렸습니다. 지금도 긴가민가하지만, 술을 마시고 밤에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님이 나타나신 것 같아서 무릎을 꿇고 무서워 한참을 있었습니다. 그러다 내려가면서 ‘성모님이 나타나셨을 리가 없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성모님이었다면 내가 결혼을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뜻’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순종 할 마음이 없으면 나타나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 했을 때 신학교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성체 안에서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참 기쁨을 누리려면 이제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의 뜻을 찾을 때 그분은 분명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https://youtu.be/EbYKuRbxJ7s
유튜브 묵상 동영상
깔끔한 것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지저분한 것을 좋아하십니까? 또 정리 정돈이 잘 된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혼란스러운 것이 좋습니까?
예전에 어떤 목욕탕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철분 성분이 가득해서 ‘홍염천’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피부병에 좋다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사람이 가득하다는데, 이른 아침에서 가서인지 한산했습니다. ‘홍염천’이라 불리는 붉은 탕 안에 들어가 몸을 담갔습니다. 저 말고도 몇 분이 그 안에서 몸을 담그고 계셨는데, 잠시 뒤 한 분이 일어났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온몸에 피부병처럼 보이는 종기가 가득한 것입니다. 피부병 환자와 같은 탕 안에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피부병에 좋다는 말이 떠올리면서, 멀쩡한 제가 들어간 것이 오히려 잘못이었구나 싶더군요.
우리는 깨끗하고 깔끔한 것,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도 깔끔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시지를 않나, 직접 손을 얹어 주시지를 않나, 손가락을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신 적도 있습니다.
깨끗하고 깔끔하지 않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그냥 고쳐주시면 얼마나 깨끗하고 깔끔합니까? 심지어 당신 죽음도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피땀 흘리며 수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가장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깨끗하고 깔끔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사랑에만 집중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에 빠져서 주님의 응답을 함부로 판단합니다. 깔끔하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평불만하고, 그 응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늘 사랑이 우선이었고, 사랑의 실현이었음을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비로소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안 계실 때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지만, 주님과 함께하면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몸소 숯불을 피워 물고기를 굽고 빵도 준비해놓은 장면에서 더 크게 사랑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외면한 채 일상으로 돌아갔는데도 아무 말 없이 배고픈 자신들을 위해 식사까지 마련하시니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늘 먼저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마련해 주십니다. 따라서 언제나 주님의 사랑에 집중하면서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의 결과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주님을 초대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헌신이야말로 사랑의 연습이다. 헌신으로 사랑은 자란다(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