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지꽃에 눈높이 맞춰
영남 곳곳 번지는 산불이 심각한 수준이라 걱정이 크다. 주간 예보에 새벽부터 강수가 있을 거라고 접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 기상청 레이더센터로 접속해 보니 밤중 한반도를 지나는 강수대는 미미해 산불 진화에 도움을 주지 못할 듯하다. 비가 오면 산책이 여의하지 않을 듯해 온천장을 찾은 이후 강수가 지속되면 도서관에 머물 작정인데 일정 변경이 있을까도 싶다.
삼월 하순 목요일 새벽이다. 잠을 깨 음용하는 약차를 끓여 놓고 아침밥을 일찍 해결했다. 여명에 길을 나서니 먼지를 재우는 정도 비가 내렸다. 원이대로로 나가 불모산동에서 첫차로 출발한 마금산 온천행 버스를 탔다. 대중 온천탕을 찾아도 이왕이면 입욕객이 적은 시간대 깨끗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기 위해서다. 온천장에 닿으니 어둠이 사라지는 즈음에 대중탕을 찾아 들었다.
먼저 탕에 든 늙수구레한 이들이 여남은 되었다. 새벽 5시부터 대중탕에 손님을 받는데 그들은 자차를 타고 왔을 테고 나는 대중교통 편으로 왔으니 뒤처짐은 당연했다. 간단한 샤워 후 온탕과 열탕을 오가면서 도중에 냉탕으로도 들면서 종아리에 뭉친 근육을 풀었다. 연전 귀촌을 앞둔 친구가 표고를 가꾸려는 참나무 자르는 일손을 거들어주던 통나무가 무릎을 스쳐 고생한다.
대중탕에 들면 무릎과 종아리만큼 신경 쓰는 부분이 발바닥에 붙는 굳은살이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시간이 지나면 절로 불어나 후속 조치가 따른다. 준비해 간 문구용 가위의 날을 펼쳐 조심스럽게 발바닥 굳은살을 갉아내면 매끈해졌다. 온탕에 한동안 몸을 담가 있었느니 굳은살이 불어나 쉽게 긁어 지울 수 있었다. 전에는 1시간도 길다 싶었는데 요새는 2시간 남짓 버틴다.
온천장 대중탕을 나오니 새벽길을 나설 때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그쳐 백월산 정상부는 안개가 걸쳐졌다. 주간 일정에 목요일은 강수 예보로 목욕 후 도서관에 머물 요량이었는데 열람실은 찾지 않을 셈이다. 도서관은 앞으로 날씨가 무덥거나 비가 오는 날 들릴 생각이다. 온천장 대중탕을 나와 그곳에서 가까운 북면 들녘을 향했다. 하늘은 구름이 낮게 끼어도 비는 오지 않았다.
북면 들녘은 현지 농부나 주민이 아니면서도 여러 차례 걸어 봐서 넓은 들판의 농로를 샅샅이 아는 정도다. 북면 들판은 주로 벼농사 일모작으로 그쳐 비워둔 논이 많았다. 더러는 단감을 비롯한 과수나 텃밭을 가꾸는 경작지와 농막이 보였다. 보편화된 과일이 아닌 자두를 수확하는 대규모 농장도 나왔다. 대산면과 같은 특용작물을 가꾸는 비닐하우스단지가 적음이 특징이었다.
김해 한림으로 뚫은 국도가 뻗어간 자동찻길로 나가 천주산에서 흘러온 신천 천변을 걸었다. 본포 근처에서 낙동강 본류에 샛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이르자 수액이 오른 갯버들은 연녹색으로 물들어 싱그러웠다. 명촌에서 신천으로 이어지는 북면 수변 생태공원은 본포 취수장에서 생태 보도교가 놓여 자전거가 다니고 산책객도 지나도록 했다. 샛강에서 생태 보도교를 따라 걸었다.
본포교에 이르니 유장한 강물 좌우 언저리 연녹색이 번지는 갯버들이 우거졌다. 물억새는 움이 트는 기색을 보이지 않아 색이 바랜 채였다. 수변 생태공원에서 강둑으로 오르는 길섶에는 작은 꽃송이를 단 꽃다지가 보여 허리 굽혀 눈높이를 맞추어 피사체로 삼았다. 모래흙에서 싹을 틔운 작은 잎줄기에서 꽃을 피움이 기특했다. 본포에서 가술을 거쳐 시내로 가는 31번 버스를 탔다.
동읍에서 옥정을 지나 대산으로 들어 가술에 닿아 점심을 먹고 오후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시골 초등학교 주변을 거닐며 ‘꽃다지꽃’을 남겼다. “십자형 꽃을 피워 씨앗을 맺긴 해도 / 다 자란 잎줄기가 요렇게 작음에도 / 망울은 꽃잎을 펼쳐 꽃술까지 달았다 // 세상을 밝히는데 크기가 대수인가 / 풀꽃이 왜소해도 점점이 피어나면 / 자잘한 꽃송이 모여 어둠 떨쳐 환하다” 2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