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베키산*에서의 해후
손진은
산 정상, 흰 절벽 꼭대기의 맹금 날개를 마악 펼치려는 검독수리는, 틀림없이 당신이 당신의 생에 대하여 거듭 보낸 물음에 대한 응답 생을 구부리고 또 구부리면 인화되는 한 마리 새, 한껏 날개를 뒤로 젖혔다가 갑자기 선회하는 놈에게 당신의 간肝 사정없이 찢겨질 때 하얗게 타오르는 깊고 무거운 신음에도 기적처럼 소생되는 새날을 맞는 날짐승의 시간을 갑자甲子 돌아온 지금에야, 코카서스 심장까지 더듬으며 올라와 주웠다는 당신 인간은 슬퍼하고 신은 웃는다는 말도, 어머니 자연의 가장 사소한 순간 속에서만 겨우 혼이 살아남는다는 말도 구차하다 한여름에도 눈을 덮어쓴, 저 부릅뜨고 노려보는 날짐승의 눈앞에선 풍경을 좁히고 또 좁히면 사람 형상이 된다는데 저 불타는 눈이 당신을 쏘아보는 설산에서 감춘 날갤 퍼덕이지도 못하고 당신을 보는 당신을 만나는 새벽 네 시, 무수한 당신의 몰골들! ⸻⸻⸻ *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 주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는 산.
—계간 《詩로여는세상》 2023년 가을호 ---------------------- 손진은 /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저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