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여든아홉 번째
격물치지格物致知
미국이 손꼽는 천재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사후 30년이 넘어서야 시인으로 인정받았고, 또 30년이 지나서야 위대한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 자신이 은둔생활로 일관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쓴 글이 아니기에 그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여동생이 언니의 시의 진가를 알아보았기에 꽃피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종교를 갖고 있지만 정작 자기가 믿는 신앙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뜻도 모르면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수리’ 염불하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뿐 정작 그 뜻은 알지 못하니 삶과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 할머니 세대가 그랬습니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겨지는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성경을 발간하려면 왕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당시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성직자들의 입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니 올바른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법정 스님이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해인사에 있었던 시절, 어느 날 장경각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한 할머니에게 인사하며 팔만대장경을 보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 왈,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노? 아, 그 빨래판!” 그러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스님은 깊이 느낀 바가 있어 불교 경전을 쉽게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여러 불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귀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 해도 그 가치를 모르면 ‘빨래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구경하고 왔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학문에 있어서나 생활에 있어서나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