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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를 선택한것은 내 인생에 최선의 선택이였다
1968년 1월 21일 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로부터 300m 떨어져있는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 하였던 사건이다, 위기감을 느낀 박 대통령은 북한의 특수부대와
대항하기 위하여 최적의 장교를 양성하기 위하여 3사관학교를 창설하였다
월남전사태때는 우리 선배님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바탕이 되여서 한단계
올랐으며현재는 50,000여명의 장교를 배출한 대한민국 육군 장교의
주축으로 성장하였다
내가 알고 있기에는 1 기부터 3기선배님 까지는 교육기간이 52주 이였으며
4기 선배님부터 6기 선배님은 62주 였으며 7기 선배님 부터는 102주인 2년제
정규사관학교 체제를 확립 하였으며 2년제 초급대학교 자격증도 부여하였다
7기부터 10기 까지는 6개월 간격이였으며 11기부터 1년 단위로 입교를
하였으며 19기 까지 이어지다가 3사가 폐지되였으나 우여곡절끝에
다시 3사로 합처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최초에는 광주보병학교내에 2사관학교를, 영천에 3시관학교를 창설하였으나
1972년도 2사를 폐지하고 7기 부터는 3사 단일체제로 출발하였는데
우리가 다닐때 선배님들이 통합하여 광주에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1기부터 10기 까지는 기수차이가 4 ~6개월이였으나 11기부터 1년에
한번씩 뽑고 임관을 하였으며 1~10기 까지는 임관인원이 1,200명 ~ 1600명 내외로
알고 있으며 월남전쟁이 한창일때인 4기 선배님들이 인원이 가장 많았고
1기 선베님은 771명으로 알고 있으며 11기 후배님은 임관전에
전 병과를 다나오는 특이하였으며 임관도 750명 내외로 알고있다
당시에 우리는 곰발바닥을 만들기 위하여 중대에서 식당까지 약 500m 거리가 자갈밭으로
되여 있었는데 거기를 식사때마다 왕복으로 맨발로 다녔고 거기서 온갖 기압과 함께
절도있는 제식훈련을 받았기에 식사하러 가는것이 고역중에 고역이였다,,, ㅠㅠ
고경사격장 까지는 왕복 구보가 당연했으며 대창 중화기 사격장 까지 뛰면서 걷는것을
반복하였으며야외훈련시에는 일부러 맨앞에 서서 식사를 하고 다시 줄을서서
밥을타서 이중으로 식사를 했으며비오는날은 반합에 국밥을 같이 주는데
나중에는 빗물이 더 많았는데 그래도 맛만 있었다
여름철에는 펜티바람으로 옥상에서 모기회식을 수없이 했고, 방독면과 우의를
착용하고 구보를하는등 혹독한 기압이 있었으며, 겨울철에는 펜티바람에
찬물세레는 물론이고 고경사격장에서영하 10도에서도 개울물에 입수하는등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훈련을 받았다,,,,,
그래도 식사조건은 좋아서 풍부한 영양식을 많이 했으며, 20시에 배달되는
커다란 단포빵은지금도 있지 못하며, 일요일마다 단포강으로 가서 찬물에
군복과 속내의를 빨고 자갈밭에말리면서 추위 (더위)에 혹독한시련을
받은것도 그리운 추억중에 하나 입니다
후배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영천 3 사인으로 가장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기수는 1기 선배님 부터 10기 후배님 까지 라고 생각하며 당시에는
인간적인 대접도 별로 못받고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사진은 9기는 1971년 8월에 전국 각 지역에서 (나는 6군단에서 시험)
1차 필기, 2차 체력테스트, 3차 신원조회와 면접으로 입사시험을 보았으며,
1972년 1월4일 입소를 1,600여명이 해서 1973년 12월 21일에
1,186명이 임관 하였다
당시에는 우리들 호칭은 후보생이였으며 2학년이 되어서야 생도 호칭
으로 불렀으며 외출시에는 생도복이 없어서 장교복을 착용하였고
모두가 가슴에는 보병마크를 차고 1년에 2~3번의 외출과 5일 정도의
휴가를 받았으며 1973년에 소위봉급은 20,600원이지만 공제하고
18,700원을 받았으며 전방 한달 하숙비는 5,500원 이였다
아래사진은 그시절에 훈련받으면서 찍은 흑백사진으로 너무 낡아서
사진의 선명성이떨어지지만 그래도 내생각에는 당시를 회상할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귀한사진으로 넓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에필로그
1970년대는 국가적으로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이고 우리집만 해도
부친은 황해도에서 월남하여 각고에 노력끝에 고교 교사를 하였으며
형님은 고대법대, 동생은 숭실대, 막내는 연세대를 나왔는데 당시에 학비문제로
고통끝에 차남인 나는 스스로 3 사를 지원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3사를 선택한것은 최선의 선택이였으며, 나는 10여년의 군 생활후
삼성그룹에서 26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당시 SKY대학 출신들도 들어가기 어려웠지만
예비군 중대장으로 들어가서 다른직책까지 오랜생활 직장생활을 하면서
IMF와 명예퇴직도 모르고 자식을 대학까지 보낸 것은 3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72년에 3사에 지원한 것은 탁월한 선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극히일부 동기생은 3사를 나온것을 숨기고 은폐하고
동기회나 중대모임을 거부하고 외톨이로 사시는분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고 지난날에 내 선택이 옳았다는것을 증명한다
저는 국가와 3 사관학교에 무한하게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1972년 1월 4일부터 73년 12월 21일까이 사관생도 교육 모습
고경사격장에서 권총사격을 하고난후에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가 훈련받을때에 하의 군복주머니가 허벅지옆에 있는것을 입었다
화산유격장에서 레펠훈련으로 절벽에서 하강하는 모습이다
공수훈련과정이다, 당시에 정면에서 볼때 맨 좌측연병장에 있었으며 그뒤로 수송부가 있었고
우리는 2 2/1톤과 3/4톤 jeep차 교육등 대부분의 차량교육을 수송부에서 받았다
철모에 마크도 처음에는 일자표시인 후보생마크를 달았는데 나중에 월계관모양으로 바뀌였다
유격훈련중에 외줄타기 훈련이다, 당시에 줄타기에 앞서서 PT 체조로 몸이 그로기상태였으며
두줄과 세줄탈때도 예외없이 징그러운 기압에 거의 초죽음상태로 훈련을 받았다
체육시간에 평행봉 훈련을 했는데 조교들은 자세가 안나온다고 혹독한기압을 주었다
화산유격장에서 수직절벽에서 점푸를 하면서 하강하는 모습이다
공수훈련과정이다, 당시에 정면에서 볼때 맨 좌측연병장에 있었으며 그뒤로 수송부가 있었고
우리는 2 2/1톤과 3/4톤 jeep차 교육등 대부분의 차량교육을 수송부에서 받았다
철모에 마크도 처음에는 일자표시인 후보생마크를 달았는데 나중에 월계관모양으로 바뀌였다
유격훈련중에 외줄타기 훈련이다, 당시에 줄타기에 앞서서 PT 체조로 몸이 그로기상태였으며
두줄과 세줄탈때도 예외없이 징그러운 기압에 거의 초죽음상태로 훈련을 받았다
체육시간에 평행봉 훈련을 했는데 조교들은 자세가 안나온다고 혹독한기압을 주었다
화산유격장에서 수직절벽에서 점푸를 하면서 하강하는 모습이다
유격훈련중에 두줄과 세줄을 이용하여 건너는 훈련이다
유격훈련중에 "도피및 탈출" 과목시에는 식사도 안주어서 동기생 4명이 민가로 들어가서
300원을 주니 농부가 감을 70개정도 주었는데 그것을 먹고 대변이 안나와서 몇일동안
고생을 해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감을 먹지 않습니다요 ㅋㅋㅎ
캐리바 50 무기는 대전차와 장애물, 대공무기 였으며 사진하단부분이 필자이며
기갑전차에 붙어있는 캐리바50 무기교육을 받은후에 찍은사진이다
당시에 입교할때는 후보생마크를 달았으나 그후 1, 2학년 표지를 모표에 달고 다녔다
지금 후배님들은 3, 4학년으로 표지를 하고 다니는것으로 알고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군복은 무릎이 튀어나왔고 상의도 어떤때는 상의가 나왔고 어느시절은 상의가
혁대밑으로 들어갔다, 처음 권총사격을 할때에 반동으로 몸이 뒤로 제껴질대 많이 힘든기억이 난다
당시에 대대장님인 김하천 소령(진) 과 같이 화산 유격장에서 한컷
사진을 보니 좌로부터김병환, 유래영, 염윤배, 이대년, 김광철,고00,공진수, 김상진님으로 생각된다
유격훈련중에서 학교앞에 있는 단포천에서 자신력테스트로서 저위에서 손을 놓아서 입수하는것인데
당시에는 얼마나 무섭고 떨렸는지 모른다,,,밑에서 런닝입은자는 조교로 생각된다
106리미 무반동총훈련이고 유병길, 나상민, 임종국님 이다
학교안에 있는 공포의 유격종합훈련장
전투수영장으로서 나는 수영을 잘못해서 물도 많이 먹고 죽을 고생을 했다
학교상징탑에서 김재곤, 최수돌, 유사선님과 같이 2학년때 모습
화산유격장에서 레펠을 이용한 하강훈련
포천출신들이 8~10기 까지 모처럼 모여서 기념촬영을 했다
대창중화기 사격장에서 A형텐트를 치고 훈련모습, 나상민, 이창신,,,
대창모기는 모포3장이라고 그때 무지하게 고생했다
보병학교 교육시절의 무등산 으로 생각이 됩니다
첫댓글 새롭네요. 다음주 수요일 경주에서 23중대 죽기전에 얼굴 보는 행사가 있습니다. 추억이 겹쳐 지겠지요? 감사합니다
23회 경주 모임을 축하 드립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주 만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도 병마와
싸우느라 외출도 쉽지 않은데 앞으로 날이 갈수록
여러가지 사연으로 모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 글을 보면서 당시 영천에서
즐겁고 힘들었던 일을 회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