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는 송이버섯밭을 알고 있다고 했다 남처럼 지내는 늙은 작은아버지를 따라 송이버섯을 따러 산을 탔다 태양광 사업으로 산속 비탈밭을 팔아 벌목이 한창이라고, 그가 가리킨 곳은 털 빠진 환자의 민둥머리 같은 폐허 위 머리 푼 구름의 긴 그림자
말을 더듬는 그는 할머니 산소를 지나다 말없이 풀을 뽑았다 살아생전 할머니와도 끝내 말이 없었던, 포자처럼 흩어진 조상들의 묘지를 지나 몇 달 전 돌아가신 친척 할아버지 묘지에는 옮겨심은 잔디가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릴 적 그 할아버지 포도밭에서 죽은 개의 꼬리를 그을리던 불냄새가 훅 끼쳐온다
도둑골은 깊고 어두웠다 산적이 재를 넘던 시절 붙여진 이름이라고, 작은아버지는 가래 끓는 숨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한 시간여의 산행으로 뒤처진 우리는 숨을 몰아쉬며 자주 멈춰 섰다 가을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흩어졌다 소나무와 신갈나무 드리워진 숲, 되지빠귀 울음소리, 마른 낙엽 위에 화르르 끓어오르는 풀벌레 소리, 그가 보이지 않는다
산비탈 이끼 낀 평평한 바위에 그가 누워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영원히 기다리는 여자처럼, 어떤 발은 납작해진 바위를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진 다음 죽음의 고통조차 완전히 펴 말려버린 뻣뻣함으로 평평해진다
바위 아래 골짜기, 빗물이 흘러내려 촉촉이 낙엽을 적신 땅, 성근 솔잎과 가는 나무 사이 그는 무릎을 꿇고 목장갑 낀 손으로 솔잎과 갈잎을 헤치고 밑동에 나무막대기를 꽃아 지렛대로 쑤욱 송이를 들어 올렸다 봉그랗고 육질이 단단한 뽀얀 송이가 흙의 사리(舍利)로 반짝였다 조심조심 흙을 털어 내 손에 쥐여주고 향을 한 번 맡아보라 한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이슬 머금은 짙은 솔향과 흙이 되어가는 것들을 눌러주는 가을볕 냄새가 온 숲 파헤쳐진 흙의 맨살 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5.03.21. -
송이버섯의 둥근 머리 부분은 봉분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줄지어 자라난 송이버섯 군락을 보면 자연스레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줄지어 묻혀있는 가족묘가 연상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에게서 왔지만 “포자처럼” 흩어져 살아가야 하는 운명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진 다음”에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잊히겠지만, 우리의 곁을 떠나 어디론가 흩어진 아이들의 아이들이 “뽀얀 송이”처럼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