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10.토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258) 축일
2코린9,6ㄴ-10 요한12,24-26
하늘 나라 꿈의 실현
“예수님을 닮자”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시편112,1)
지난 수요일(8.7) 입추부터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 싶습니다.
풀벌레들 청아한 찬미와 더불어 배봉지속 배들도 무럭무럭 커가며 익어갑니다.
오늘도 옛 어른의 말씀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고백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황량한 귀양지에서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위기는 나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이십년 세속의 길에 빠져 선왕의 훌륭한 정치가 있는 줄 알지 못했는데, 이제야 여가를 얻게 되었다.”
혹독한 고문후 생명을 부지한채 장기간의 유배생활은 말그대로 죽어 사는 삶이요
자기와의 참 외로운 고투의 삶이었음을 봅니다.
그러나 다산의 위대함은 무너져 내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불가사의한 업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다산은 스승 예수님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 살았던 분입니다.
참으로 진리이신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분투의 노력의 삶에 원동력이 됐음을 봅니다.
늘 읽어도 새롭게 와닿은 다음 제 자작시입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아마 진리이신 주님 향한 이런 사랑의 열정이 이뤄낸 다산의 업적일 것입니다.
새삼 진리이신 주님 향한 사랑의 열정이 마르지 않는 삶의 원천源泉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진면목을 잘 보여줍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은 이들은 이렇게 살아 가며 하늘 나라 꿈을 실현시켜 갑니다.
저는 예수님의 삶을 네 측면에 걸쳐 살펴봤습니다.
1.“죽어라!”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대로 예수님의 전삶을 요약합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이 참으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죽어야 비로소 무수한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평생 한 알 그대로의 이기주의적 삶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죽어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의 성사로 교회를 통해 끊임없이 열매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열매들입니다.
순교자들은 물론 순교적 삶을 살았던 예수님의 후예들인 성인들도 바로 그 모범입니다.
죽어 살았던 다산의 헤아릴 수 없었던 업적도 그 하나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도 그 모범입니다.
죽어 살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성인들입니다.
258년경 30대 초반에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 라우렌시오는 참으로 가난한 이들을 사랑했던
성인입니다.
순교를 예감한 성인은 교회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후 집정관 앞에 병자와 고아와 과부,
가난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나,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외쳤습니다.
성인은 뜨거운 석쇠 위에 눞여 살이 타들어가는 순간에도 웃으면서,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라” 말했다 합니다.
순교때나 순교후에도 그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 합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는 주님의 식탁에서 주님을 받았기에 그 보답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바쳐드렸다.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았다.”며 그의 순교를 칭송했습니다.
성 라우렌시오는 로마의 수호성인이자 가난한 이들과 요리사, 소방관, 코미디언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2.“비워라!”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이런 이들은 예수님을 닮아 참으로 무지의 탐욕을 비워낸, 집착에서 벗어난 이탈의 초연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란 불가의 사성제(四聖諦)에서 보다시피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집착에 있습니다.
애오라지 일편단심 주님 사랑의 자연스런 귀결이 자기 죽음에 이어 자기비움의 초탈의 삶, 영원한 삶입니다.
새삼 삶은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가는 겸손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3.“섬겨라!”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도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섬김의 삶은 우리 믿는 이들 삶의 모두입니다.
섬김의 영성, 섬김의 사랑, 섬김의 기쁨, 섬김의 행복, 섬김의 환대,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입니다.
외로움에 대한 최고의 처방도 섬김의 생활화임을 깨닫습니다.
섬김은 영성의 잣대요, 섬김과 추종은 함께 갑니다.
섬김의 삶이야말로 영적건강의 지름길임을 깨닫습니다.
섬김의 자리 바로 거기에 우리가 평생 섬기고 추종하는 주님이 계시고 아버지께서도
이런 섬김의 사람을 인정하시고 존중하십니다.
일상의 모든 섬김을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 삶이요, 섬김(service)의 종(servant)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4.“나눠라!”입니다
오늘 제1독서 2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둘째 서간이 참 아름답습니다.
나눔의 사랑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습니다.
나누라 있는 소유물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내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정말 그대로 주님 사랑을 닮은 이들이 나눔의 사람들입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 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없어서 못나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있어 나누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미소, 따뜻하고 진실하고 친절한 언행등 신망애(信望愛)의 삶,
진선미(眞善美)의 삶 존재 자체도 참 좋은 나눔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평생 섬기고 따를 파스카의 예수님이 늘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예닮의 여정’에 항구할 힘을 주시며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시편112,9).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 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