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두려워하지 마라, 열려라, 차별하지 마라”
2024.9.8.연중 제23주일 이사35,4-7ㄴ 야고2,1-5 마르7,31-37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146,1-2)
지금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파푸아뉴기니는 흥분의 도가니속에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3일간 사목방문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도 열렬한 환대중에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어제 강론처럼 오늘도 교황님의 소식을 알림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인구 1천50만명의 파푸아뉴기는 전체 인구의 약 26%가 가톨릭 신자이며, 70%는 개신교를 믿는 기독교 국가입니다.
어제 교황님이 파푸아뉴기니 곳곳에서 나눈 연설 제목을 소개합니다. 88세 고령이지만 정신은 영원한 청춘이요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빛나는 희망의 표지가 되고 있습니다.
“정의감, 친근함, 연민 그리고 부드러움을 지니십시오.”
“용기, 아름다움 그리고 희망의 증인이 되십시오.”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으십시오.”
“교회의 선교는 우리의 기술이 아닌, 성령의 활동입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미래를 지닙니다.”
“파푸아뉴기니 가톨릭 신자들은 멜라네시아계(96%) 파푸아인 정신으로 그들의 믿음을 살아야 합니다.”
“파푸아뉴기니 어린이들이여, 타오르는 사랑의 빛으로 사십시오.”
“교황님의 방문은 학생들에게는 큰 꿈을 꾸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 하나하나마다 우리를 고무하고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꼭 10년전 2014년 한국을 찾았던 교황님이 기적처럼 10년후 이맘때쯤 동남아시아 3개국과 오세아니아의 파푸아뉴기니를 찾은 것입니다.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향력이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고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늘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절박한 물음입니다. 답은 단 하나,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구체적으로 믿음의 삶, 희망의 삶, 사랑의 삶, 즉 신망애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대해 세 측면에 걸쳐나눕니다.
첫째,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 말씀입니다.
우리의 원초적 정서가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성서에 365회 나온다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성구는 수도원 십자로 예수 성심상 바위판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향과 행복을 노래하며 이들의 희망과 믿음을 북돋웁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의 믿음을 북돋우며 믿음의 삶을 살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이런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살 때 사라지는 두려움입니다.
둘째, “열려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열려라의 아람어 “에파타!” 어감도 힘차 좋습니다. 닫힘에서 희망의 열림입니다. 닫힌 우리를 열어주시어 희망의 기쁨을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닫혀 불통일 때 온갖 죄요 병입니다. 마음도, 귀도, 입도 열려야 제대로 듣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이사야 예언자의 꿈이 오늘 복음을 통해, 또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리라.”
실낙원은 복락원이 되고 새로운 창조의 구원으로 새롭게 살아나는 희망의 그때를 노래하는 사랑의 시인이자 신비가이자 영성가인 이사야 예언자요, 그때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실현됩니다. 귀먹고 말더듬는 이가 상징하는바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똑같은 파스카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에파타! 열려라!”
복음의 귀먹고 말못하는 이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하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우리 역시 복음의 치유기적을 목격한 이들과 함께 더할 나위없이 놀라서 고백합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 구나!”
그대로 태초에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매번 되뇌던 말씀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1장 마지막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것이 참 좋았다.” 과연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요 우리들인지, 하느님 향해 활짝 열린 희망의 삶인지 반성하게 됩니다.
셋째, “차별하지 마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차별하지 않는 사랑이, 편애하지 않는 사랑이 하느님 다운 사랑입니다. 참으로 사랑의 하느님을 닮은 이들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도 야고보가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잘 반영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부자에게는 ‘선생님은 여기 좋으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악한 생각을 지닌 심판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형제 여러분, 들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가난한 이들을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을 닮은 이들은 결코 차별하지 않으며 자발적 가난으로 믿음의 부자가 되는 길을,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생명이자 빛이요, 진리이자 길이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삶, 하느님께 이웃에 활짝 열린 희망의 삶, 차별하지 않는 대자대비(大慈大悲),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사랑의 삶”을, 바로 참된 신망애(信望愛)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이방인을 보살피시네.”(시편146,8-9ㄱ).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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