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재를 넘으면서
삼월 끝자락 주말이다. 현직 시절에는 어느 계절이나 설레면서 맞던 주말이었다. 그 가운데도 봄날은 더 기다려졌다. 근교 들녘이나 산자락을 누비면서 야생화를 탐방하고 땅 기운을 받고 돋는 봄나물을 채집해 찬으로 삼을 수 있어서다. 퇴직 후 이태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산천을 주유하다, 작년 봄부터 시니어 봉사활동을 겸한 아동안전지킴이 치안 보조로 평일은 발이 묶인 처지다.
삼월부터 평일 오후 시간대는 이태째 창원 대산 들녘 초등학교 주변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기다려지던 주말을 맞아 근교 산기슭으로 들어 봄기운을 느껴보려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여항산 산세가 뻗쳐온 깊숙한 골짜기로 들려고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진전 둔덕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탈 생각이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길목은 주말 노점이 펼쳐져 봄내음이 가득 번졌다.
한동안 마산역 광장 노점을 둘러보고 진전 둔덕으로 가는 76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춘분이 지나 해가 점차 길어져서인지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날 때 용무를 보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텃밭으로 일을 거거나 근교로 나가 쑥을 캐려는 아낙들도 있을 듯했다. 일부는 양촌 온천장을 찾기고 했다. 서서 가는 승객이 늘어도 먼저 자리를 차지한 우선권 꾹 눌러앉은 특권을 누렸다.
버스는 적석산 등정 기점이 되는 일암을 거쳐 대정과 거락을 지나 둔덕골로 들었다. 평암과 둔덕 사이 지방도 확장은 수년째 걸려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버스가 골옥방으로 들어 시동을 끄고 머물 때 남은 승객은 넷이었다. 기사가 다시 시동을 걸어 종점 둔덕에 이르러 그 가운데 한 아낙은 양촌에서 내려야 할 손님이 정류소를 놓쳐 되돌아 나가고 사내 둘은 둔덕 현지 주민이었다.
나는 마을을 등지고 군북 오곡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오실골로 올랐다. 갓길에는 최근 들어선 독립가옥이 한 채 나왔고 방향을 급선회한 찻길 언덕에 머위 순이 보여 비탈을 올라 몇 줌 캤다. 곁에는 잎줄기에 가시가 붙어 손가락을 찌르기도 하는 엉겅퀴가 보여 놓치지 않았다. 비가 오면 언덕에서 흘러내린 물이 지나는 계곡 바닥에도 머위 순이 자라 검불을 비집어 캐 모았다.
다시 포장된 길로 나와 차량이 다니질 않는 비탈길을 올라가서 미산령 임도와 나뉘는 길목에서 배낭을 벗고 쉬었다. 아까 캔 머위와 엉겅퀴에 붙은 검불을 가려 정리해 놓고 간식으로 가져간 삶은 고구마를 꺼내 먹었다. 군북으로 가는 오곡재로 향하자 길섶에 쑥은 지천이지만 거들떠보질 않고 엉겅퀴는 더 캤다. 오곡재에 이르니 이정표에 발산재와 미산령으로 가는 표시가 나왔다.
고개를 넘기 전 고지대 산마루 핀 생강꽃과 진달래꽃의 열병을 받았다. 오곡재를 넘어 비탈을 내려선 산중에는 산림을 개발한 숲에 뭔가를 심어 파릇하게 자란 약초인지 산나물인지 보였다. 포장된 찻길을 따라 걸어 상데미봉이 바라보인 임도 들머리에서 술빵을 간편식 점심으로 때웠다. 사촌으로 가는 임도가 아닌 오곡으로 가는 길로 내려서니 숲 바닥에 피는 남산제비꽃을 만났다.
숲을 빠져가자 사방 사업을 마친 계곡 양지 켠에는 두릅 순이 나와 자라 있기도 했다. 고개를 드니 상데미봉에서 이어진 거대한 피바위가 위압적인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수년 전 그곳을 지날 때 붉은색을 띤 바윗돌을 봤는데, 전설에 나온 미모의 처녀와 총각으로 변신한 뱀이 사투를 벌인 흔적이다. 미국 지도에 ‘전투봉’으로 등재된 상데미봉은 한국전쟁 상흔이 서린 봉우리다.
마을 뒤 저수지가 나왔는데 준설을 위해 물을 빼 바닥을 드러냈다. 오곡동에 이러러 마을회관 앞에서 함안 가야로 가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명 유래를 적어둔 안내에 까마귀 ‘오(烏)’에 대한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최치원이 모친과 마을을 지나다 산마루에서 지쳤을 때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닭 다리를 물어다 주어 기력을 회복, 모자는 통영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고 했다. 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