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눅 3-70)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찬양 :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본문 : 눅 9:46-48절
☞ https://youtu.be/ih0nBri8J5I?si=XOoMvb5ikUEqLN5_
이제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오늘은 내 몸을 추스르고 영혼을 가다듬으며 주님을 예배하는 자로 서기를 준비하자.
어제는 양육과 목회사관학교 1차 면접이 있었다. 다음 주 있을 면접에 미리 잡혀진 선교 일정으로 당겨서 면접을 치뤘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열정과 분명한 부르심의 소망을 가지신 분들이라 행복한 시간이었다. 주님, 보내신 뜻이 2년이란 과정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실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셨을까?
본문에는 십자가에 죽으시는 주님의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했던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변론이 일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46절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누가 크냐 하는 변론>
διαλογισμός (dialogismos) → "변론, 논쟁, 생각, 의논"
μείζων (meizōn) → "더 큰, 더 위대한“
이 문장은 제자들 사이에서 능력과 서열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말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여전히 세상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누군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계시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님의 말씀은 묻기도 두려워하며, 결국 이들은 이런 논쟁을 하고 있다.
이런 제자들을 주님이 아셨다고 하신다. 47-48절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이 겉으로 하는 변론 뿐 아니라 주님은 그 마음에 모두가 변론하고 있음을 아셨다고 한다. 성품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말로 변론을 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제자들마저 모두가 마음에 변론을 하고 있음을 주님은 보셨다는 것이다.
여기 <아시고>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ἰδών (idōn) → ‘보다, 인식하다, 깨닫다’라는 뜻인데 단순히 육안으로 본다는 의미뿐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보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제자들 마음의 동기와 생각까지 꿰뚫어 보셨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 깊은 것까지도 이미 다 헤아리시는 주님을 묵상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편의 말씀이 생각난다. 시 139:1-3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편 기자는 이 구절에서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되 앉고 일어섬, 멀리서도 생각을 밝히 아시고 길과 눕는 것, 행위를 익히 아신다고 고백한다.
이런 주님이 오늘 제자들의 말뿐 아니라 그들의 생각 즉 그 논쟁하는 그 마음의 동기까지 꿰뚫어 보시며 익히 아셨다는 말씀이다. 오늘도 나를 이렇게 완전히 아시는 주님께 내가 무엇을 숨길 수 있겠는가?
세상의 감찰은 서류와 남겨진 기록과 말을 감찰하지만, 우리 주님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아멘. 누가는 이런 고백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제자들의 마음을 감찰하셔서 익히 아시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와 실물 교육을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큰 자는 이런 어린아이를 소중히 영접하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메시지 성경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는 이렇게 번역했다.
<이와같이 내세울 때가 아니라 받아들일 때 큰 사람이 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크기가 아니라 너희의 영이다.>
메시지 성경은 본문을 해석적으로 확장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지만, 핵심 메시지는 공감할 수 있다.
<내세울 때가 아니라 받아들일 때 큰 사람이 된다.>
세상적 가치관은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외치며 우리로 무엇인가를 주장해야 하고, 내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자들은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변론하며 내가 더 크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새롭게 조명해 주신다. 내세울 때가 아니라 받아들일 때 그것도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주님을 받아들이는 더 나아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진정 큰 자라는 것이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이것을 <영접>이란 헬라어 단어 δέχομαι (dechomai) <받아들이다, 환영하다> 의미에 초점을 두고 번역했다. 성경에서 ‘큰 자’는 권력과 지위가 아니라, 섬김과 사랑, 겸손으로 결정된다고 하신 것이다.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는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호기심을 빼앗기면 어린아이는 다른 행동을 하기에 온 마음을 집중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기 위해 온 마음을 쓰는 것이 사랑이고 섬김이며, 겸손이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안으셨을 때,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질문인데 오늘 아침 해보게 된다. 아마 어린아이는 금세 엄마를 찾았을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그와 눈을 맞추는 가장 작은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란 스스로 높아지려고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작은 자가 되어 사랑과 겸손으로 영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으로 준비되기를 다짐하고 기도한다.
예수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내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진실로 영혼을 받아들이는 자로 서기 위해 나를 부인하고 겸손히 영혼에 집중하는 날 되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죄인을 위해 가장 큰 희생으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묵상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장 작은 자로 영혼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정상화되도록
2. 목회사관학교 12기생 20명이 모집되게 하소서.
3. 30억의 재정공급을 통해 선교회 사역이 새로운 옷을 입도록
4. 라마나욧선교회 행정 시스템이 섬김을 위한 최적의 구조를 찾도록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만의 방식을 세워가도록
6. 틴케이스가 2025년 세운 계획들이 세워져 가도록
7. 작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도록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8. 충주 라마나욧이 구체적인 사역 방향을 정하여 세워지도록
9. 박정제목사를 비롯한 팀원들 모두가 성령안에서 충만하도록
삶에 적용하기 : 다음 질문을 통해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큰 자’가 되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2. 나는 어떤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가?
3. 예수님은 내 마음속 생각과 동기를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
4. 오늘 하루, 내가 가장 작은 자가 되어 섬김과 사랑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5. 나는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경쟁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