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찰
/ 나태주
늙으신 부모님 앓고 계신다는 것도 모른 채
너무 오래 술집에 앉아 있었던 거다
병든 아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너무 오래 외간아낙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던 거다
아니다 저승에서 잠시 다녀오마 인사하고 떠나온 우리
훌쩍 하루치의 여행길에 나서듯 떠나온 우리
이승에 와 애기 노릇하다가 학생 노릇하다가 자라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어른 되어
다시 아이들 낳아 기르다가 이제
이렇게 노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거다
떠나온 지 너무 오래 되어 어쩌나
돌아갈 길을 잊어버려서 어쩌나
이쪽에서 아웅다웅 너무 사납게 사느라고
생각나지 않는 저쪽 사람들 얼굴
저쪽 사람들과 있었던 이야기며 약속들
까맣게 떠오르지 않아 어쩌나
아무튼 우리는 지금 너무 오래
열심히 살고 있는 거다
엉뚱한 짓들에 한눈을 팔며 너무 오래
해찰부리고 있는거다.
- 나태주 시집 <물고기를 만나다> 2006
첫댓글
수고 하셨어요 ~^^
Oooo
( )
). /
(_/
찍고 가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