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김대중'... 대통령실의 이상한 해시태그를 보며
[取중眞담] 윤 대통령이 극찬한 챗GPT도 중요하다는 디테일, 그걸 또 놓친 용산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소희 기자]
'악마는 디테일(세부사항)에 있다'는 말이 늘 옳진 않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보다 숲을 보라' 같은 정반대의 말이 나올 리 없다. 그럼에도 디테일은 중요하다. 식기에 묻은 고춧가루, 화장실 휴지 같은 작은 요소들은 어떤 서비스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책 <디테일의 발견>에 따르면, 컴퓨터 키보드 또한 디테일의 산물이다. F(ㄹ)버튼과 J(ㅓ)버튼의 돌기가 없다면, 우리는 일일이 자판을 확인하며 타이핑하느라 컴퓨터 사용이 곧 고통이었을지 모른다.
일상의 디테일만 중요할까? 아니다. '대국민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의 영역에선 더욱 그렇다.
대화형 AI(인공지능) 챗GPT는 '정치인에게도 디테일이 중요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인에게도 디테일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정치인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지지를 받으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때 정치인이 선거운동이나 정책 제안에서 디테일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들의 입장이 불분명해지거나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부연 설명도 했다.
챗GPT도 "정치인에게 디테일이 중요하다"는데
(정치인에게) 디테일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디테일이 높은 정책 제안은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정책을 제안할 때, 디테일에 신경 쓰면 정책의 실행 가능성이 높아지며, 그에 따라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정치인의 발언이나 정책 제안에 디테일이 없으면, 그들의 입장이 불분명해집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원인이 됩니다.
셋째, 정치인이 디테일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들의 입장에 대한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을 끄는 인물이므로, 그들의 발언이나 제안에 대한 비판이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디테일이 높은 정치인은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디테일에 신경 쓰면, 그들의 정책에 대한 실행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이 말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용산 대통령실이다.
12일 대통령실은 보도자료 한 편과 함께 짧은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공개 국무회의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강제동원 문제 해법은 대선 공약을 실천한 것"이라며 대선 때 외교 정책은 ▲한미 경제·안보동맹을 통한 확장 억제 강화 ▲김대중-오부치 정신의 계승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글로벌 중추 국가 지향이 핵심 방향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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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의 7일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 이날 오전 10시 26분 갈무리 당시 '오부치정신'이라고 쓰여있던 해시태그는 오후 2시 37분 재확인했을 때 '김대중_오부치정신'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
ⓒ 유튜브 화면 갈무리 |
대통령실은 이 발언 등을 소개하는 영상에 <모든 #책임 은 저에게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 #TheBuckStopsHere #한일관계 #오부치정신 #shorts>란 문구를 붙였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김대중-오부치 정신'이 아니다. '오부치 정신'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김대중-오부치 정신'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다. 이 선언은 한일 외교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공식 합의 문서로 명확히 하고, 한일 협력의 방향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로 꼽힌다.
특히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선 과거사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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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10월 8일, 국빈 방일 2일째를 맞은 김대중 대통령이 8일 숙소인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끝까지 언급 없는 '피해자'
즉, 한국의 관점에서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핵심은 김대중 정신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대통령 아닌가.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한국 대통령은 빼고, 일본 총리만 추앙하는 엉뚱한 해시태그를 썼다.
다행히(?) 뒤늦게 알아차렸는지 12일 오전 10시 26분 '#오부치 정신'이었던 문구는 오후 2시 37분 현재 '#김대중_오부치 정신'으로 수정되어 있다. 이런 디테일의 문제는 '악마'를 운운하기도 참 겸연쩍다.
디테일의 실종은 해시태그로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배상안 발표 때부터 줄곧 '피해자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야당과 언론의 지적은 한 귀로 흘려듣더라도, 우리 국민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을 계속 이렇게 흘려버릴 셈인가?
디테일은 결국 배려다. 그런데 이 정부는 디테일이 없어도 너무 없다. 윤 대통령이 극찬한 챗GPT도 디테일의 중요도를 아는데 용산만 모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