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B.C.239)년 진나라 시왕(B.C.246~206)때 신인이신 대해모수께서 웅심산에서 일어났다. 정미(B.C.194)년 한나라 혜제때 연나라 추장이였던 위만이 이를 맞아 싸웠으나 이길 수 없자 바다 길을 택해서 멀리 망명하였다. 이로부터 삼한의 무리는 거의 한수(난하)의 남쪽으로 옮겨갔으나 한때에는 여러 영웅들이 요해의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계유(B.C.108)년 한나라의 무왕때에 한나라는 군대를 움직여 우거를 멸망시켰다. 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이라 했다.을미(B.C.86)년 한나라 소왕(B.C.87~74)때, 부여의 옛도읍을 차지하여 동명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의 옛 땅이다.계해(B.C.58)년에 이르러 봄철 정월에 역시 천제의 아들인 고추모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났다. 단군의 옛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니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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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압록 사람인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역시 단군이라 했다.
을미(B.C.86)년 한나라 소왕(B.C.87~74)때, 부여의 옛도읍을 차지하여 동명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의 옛 땅이다.
(西鴨綠人高豆莫汗倡義興兵赤稱檀君 乙未漢昭時進據夫餘故都稱國東明是乃新羅故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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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국 선생님의 주해..
동명東明 - '삼성기 전'에서만 보이는 <동명국=신라>의 전거이다. 이에 의하면 신라는 옛 부여의 서울에서 건국하였으니 신라의 옛 땅은 한반도가 아니라 바로 몽고 할힌골 강江 유역이 된다. 유의할 일이다.
비슷한 설은 문정창文定昌 씨의 <신라 시조=흉노의 곤사왕昆邪王설說>이 있다. 모두 연구할 가치가 있는 설이라 할 수 있다.
*치우천의 생각..
서압록은 현재 요하의 서쪽 상류인 서요하를 말합니다. 요나라 이후부터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강을 따라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몽골 자치구로 통합니다.
중국 지도에서 길림성 장춘의 동북쪽, 길림市의 북쪽에 부여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신라도 부여에서 건국했다면 고구려와 백제 뿐만 아니라 신라도 부여의 정통성을 다투었던 모양..
실제로는 고구려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 셈이지만요.
청나라에서 편찬한 만주원류고에선 신라는 분명 한반도(만주 포함)에 있었고, 북방계통입니다.
지나족이 말하는 대륙의 사로는 남방계통이라 전혀 다르다고 봅니다.
안휘성에는 한자가 다르지만 사(泗)와 로(盧)라는 지명이 따로 되어 있습니다. 두 지명을 합한 사로..즉 대륙 신라의 근거지가 안휘성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도에서 안휘성의 지형을 보니..회수(회하)의 지류인 사수(泗水) 등 여러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남성과 호북성, 절강성과 인접하고, 운하를 이용하면 확실히 교통이 편리하겠군요.
광개토대왕비에 따르면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속국이라는데..
제 상상이지만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자기네 역사를 늘리려고 대륙의 사로까지 집어넣은 것 같습니다.
고구려도 삼국사기에 따르면 7백년이지만, 고리국(단군조선의 제후국 중 하나)과 북부여까지 포함하면 9백년이 되니..진나라 때부터 이미 고구려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나라가 고구려가 9백년이 되었으니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고구려와 백제가 대륙 전체가 아닌 대륙 동부에 있다는 건 확실히 믿을 수 있지만, 대륙 신라설은 아직 불확실하고, 만주신라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발해의 압박을 받아 만주에서 밀려난 적도 있지만, 대륙고려설과 대륙조선설도 너무 신빙성이 낮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지나족에게 악용될 우려도 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과 고려가 중원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환단고기와 만주원류고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의 지명들이 명나라 이후의 것이라는 거죠. 명나라가 고려를 중원에서 몰아냈고, 이성계는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조선을 세우면서 지명들이 동쪽으로 옮겨 놓았다고 보니까요..
환단고기를 읽어보면 대륙고려설보다 만주고려설을 뒷받침하는 듯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식민사관에선 한반도 평양이 고려의 서경이라는데..개성(고려의 서울)의 북쪽에 있으니 북경(北京)이라고 해야지..왜 서경(西京)이라고 하는 걸까요??
고려사에는 철령(요녕성) 남쪽으로 300리에 서경이 있다고 했고, 철령의 남쪽에 있는 요심(요녕성의 요양과 심양)은 우리 영토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려의 서경은 요양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쪽에는 요하(압록하)가 흐르고 있고, 주변에 곡창지대인 만주의 평원(지나족은 동북 평원이라 부름)이 있으니 전략적 가치가 크다는 걸 납득이 가지만..
요나라와 30년이나 전쟁을 벌였던 고려의 군사 수도인 서경이 요동 반도에 있었다면 압록하(요하)를 방어선으로 삼아 거란족의 기마군대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는지..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좀 더 연구해 봐야 겠습니다.
첫댓글 생각해보니 서경도 좀 이상하네요.... ㅡㅡㅋ 그리고 서경이 용양에 위치한다면 귀주대첩은 어디인가... 궁금하군요..
귀주 대첩도 만주 땅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중에 여-요 전쟁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서 올리겠습니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은 결코 뽀글머리네 평양이 아닙니다. 뭐 다 아시겠지만.. 장수왕대 평양은 요동전선과 가까운 곳으로 장수왕이 선 대제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지키기 위해 수도를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