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에 머물다 귀경하려면 살피는 일이 있다. 수도, 전기 안전한 장치를 걸어 놓는 일과 청소 등은 당연한 일이고 그 밖에 흙이 주는 선물인 수확물이다. 앵두는 이미 따서 청과 담근 주로 만들어 놓았으나 쌈 채 여러 종을 수확하여 봉지 담아둔 후 세차를 하고 잠시 잔디에 서서 살피다 매실이 보인 것이다. 뒤에 뽕나무 오디도 지금 한창인데 몇 해 전 담 궈 놓은 담 금주와 청이 아직도 많아 남아 있어 올해는 수확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 놓았지만 매실을 필요한 과실이다. 사다리를 준비하고 아주 작은 가지치기 가위와 플라스틱 바구니를 준비하고 매실나무와 씨름하기 시작하였다. 산막에 있는 나무와 화초, 야생화, 채소류에는 전혀 약을 치치 않는 무공해다. 대신 이른 봄에 퇴비를 넉넉하게 주어 건강하게 자랄 터전을 만들어 주는 편이다. 그러니 두더지가 많아 농작물을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앵두도 상층부에 달린 열매는 새들 모이로 남겨 두었다. 그래야 녀석들이 먹고 날아다니다 씨앗이 퍼져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손이 닺는 것까지만 수확하여도 한 양동이를 수확하였다. 나머지는 익은 후 조금 더 수확하여 차 또는 식용재료로 사용하려고 남겨 두었다. 청을 만들 양으로 충분한다. 말끔하게 씻은 후 채반에 받쳐 야외용 식탁에 올려놓자 잘 건조되어 봉지담아 차를 실어 둔 후 아침에 산막을 출발하였다.
귀경하려는 목적은 토요일 정기산행이 있고 일기예보를 체크해 보니 큰 비소식이 있어 마석 창고를 철거하며 전기 단락을 시키지 않고 기존 전선을 방수 처리를 하여 건물 귀퉁이 철고리에 묶어 두었다. 새로 반입된 컨테이너 창고에 연결하여 인입시키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큰 나무 판재를 추녀 밑에 두었는데 젖으면 모양이 뒤틀리면 용재로서 가치가 상실된다. 이런 일 정도는 현지 근무자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할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종합적인 건물관리는 남성이 전문적으로 맡아 주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안 되고 각형제회 소수 몇 사람이 드나들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해오다 보니 많은 수고가 따르고 노력을 하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조화에 있어 미진한 부분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기회에 틀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경계복원측량과 지적현황측량이 남아 있고, 우수배관, 맨홀공사가 남아 있지만 동안 수목관리가 전혀 안돼고 있어 이 문제도 이 기회에 체계적인 창고관리와 함께 공종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목에 휩싸여 상실된 성모님 동산도 제대로 환경개선을 하려고 한다.
잠시 집에 들러 수확물을 내려놓은 후 곧장 양양고속도를 타고 화도 IC를 빠져나와 비룡로를 이용하여 내방리에 도착하였다. 일단 성모님 동산에 들러 인사를 드린 후 낮은 사다리를 준비하고 가지치기 용도 손가위와 끈을 들고 성모님을 감싸고 있는 철재 틀에 장미꽃가지를 전부 묶어 두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뽕나무 단풍나무 등 수목을 가지치기를 하였다. 그런 후 오후에 비 소식이 있어 묶어 놓은 전선을 찾아 절연 테이프를 이용하여 다시 세심하게 묶은 후 비닐봉지에 넣어 동그랗게 전선을 만든 후 벽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줄자를 이용하여 전기 분배반을 찾아 새로 설치된 컨테이너 창고까지 거리를 측정하여 작업수첩에 적어 두었다. 전기자재를 매입하기 위한 선작업을 해 둔 것이다. 전기자재를 전부 발주하여 다음 주에는 전기 인입공사와 외등공사를 모두 마치려 한다. 그러는 사이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부근 공사장에 콘크리트 타설공사가 있는지 옆집 차량주인 다가와 잠시 피난하기 위하여 차를 컨테이너 앞에 주차를 시키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해 왔다. 우리 쪽 정문 앞에 매설된 수도관에서 공사현장 단독주택으로 연결해 가느냐 도로를 굴착한 후 흙만으로 되 매 우기를 해 놓은 것을 콘크리트 포장을 하는 것으로 알아듣고 타설을 해 놓으면 빠져나올 수 없어 모든 일을 종료하고 철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 내내 비 예보가 있어 정기산행을 참가하기로 결정하였다.
비 소식을 알고 짐을 꾸릴 때에는 보다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철저한 방수를 선택해야 한다. 자켓과 바지를 오버트러스로 선택하고 모자도 완전방수가 된 둥근 원형으로 얼굴에 들이치는 비를 막아주는 원형으로 여벌 모자도 선택해 야 한다. 땀으로 젖을 것을 감안하여 여벌로 2장도 정도의 티샤스 와 양말도 챙기고 모든 산행물들은 방수처리해야 한다. 커다란 비닐봉지를 배낭에 넣은 후 그 안에 짐을 꾸렸다. 우린 늘 만나는 시간을 40분으로 정하고 있다. 먼 곳에서 오는 대원을 위한 배려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40분에 만나 담소를 나누고 먼 곳에서 오는 대원들에게 심적인 여유를 주기 위한 불문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행에 나서기 하루 전부터 시계 분침을 10분 정도 빠르게 조정해 놓고 그 시간을 기준으로 집에 나선다. 그런데 환승을 2번 이상 해야 하는 관계로 주말에는 5분 정도 늦게 도착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20분의 여유 시간 중 5분 정도 혜택 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우이동을 목적지로 다니는 전철을 탄 후 시간을 체크하자 4분 정도 어긋나 있었다. 즉시 등반 운행을 책임지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옛 만화상회 앞 3명의 회원이 와 있어 인사를 나눔 하고 백운대와 인수봉 아래 숨은 벽 방향으로 올라오는 서울 서북방향 도시에 살고 있는 회원들과 통화를 하였다. 12시 정각에 Empor 산장에서 만나는 것으로 변경하여 약속을 다시 정한 후 산행을 시작하였다. 흐리고 산 기온은 선선하였다.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개인적인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동안 누적된 피로가 해소되지 않아 체력의 고갈처럼 느껴졌다. 이 점을 우려하여 정기산행을 쉴까 생각하였었지만 다른 회원들에게 누가 될 까봐 나는 섰는데 오히려 누가 될 것 같아 열심히 걸었다. 삼각산을 정면으로 보고 걷다가 오를수록 삼각산은 동북사면으로 바뀌게 된다.
잔뜩 흐렸던 산 날씨가 별안간 개이기 시작하였다. 변덕이 심한 곳이 산 날씨다. 늘 이 점을 감안하여 여름산행이나 적설기 산행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소 귀천 계곡 마지막 구간 위 능선을 통과하면서 바위에 서서 인수봉을 보고 있었다. 좌측 긴 능선이 바로 만경대 능선이다. 일만가지를 볼 수 있다는 평평한 바위를 갖고 있는 만경대(萬景臺) 과연 그곳에 서서 보면 그렇게 보일까?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툭 터져 있어 삼라만상이 보일 정도의 산뜻한 풍경들이 다가오는 곳이다. 그리고 만경대를 릿지 삼아 오르다 보면 기묘한 바위들을 안고 밀고 당기며 오르는 재미도 쏠쏠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북한산성 성곽이 없는 곳이다. 성곽보다도 더 웅장하고 빈틈없는 천연요새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라 그런 것이다. 만경대 옆에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큰 바위가 북한산을 상징하는 백운대(白雲臺)다. 늘 흰구름에 휩싸여 있다는 그러한 명칭은 기후의 변화로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장마철과 동계에는 흰구름과 흰 눈이 쌓여 있는 곳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만경대와 백운대 사이는 성곽이 있고 위문(衛門)이란 암문과 같은 형태의 문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 내려서면 북한산성으로 내려 가는 가파른 길이 나온다. 동쪽으로 내려서면 백운산장과 깔딱 고개와 도선사 광장과 우이동이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백운대 아래에 서 있는 육즁한 바위는 바로 암장으로 유명한 인수봉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여인이 어린아이를 들쳐 업은 것처럼 보인 다하여 부악(負岳)이란 이름도 갖고 있다.
다양한 암벽등반 코스를 갖고 있어 담력과 도전정신과 균형감각을 익히고 오른다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곳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일 파트너들과 기개 있게 오르던 옛 추억이 활동사진 처 럼 펼쳐졌다. 아~~ 살아보니 이토록 짧은 것이 세월이구나 느껴졌다. 젊은 날 암벽등반을 수련 시킨 시간도 참 많았었다. 그 때 나에게 배운 이들은 지금 나를 사부라 부른다. 오늘 나오는 산악부원들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오랜만에 나온 절친 동기도 나를 통해 산에 입문을 하였고 지금껏 산을 놓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집이 일산방향이라 북한산성 방향에서 올라와 대동문 너머 태고사 위 아늑한 휴식터에서 우이동에서 올라온 팀들과 만나 점심을 나누었다. 산속 생활 대부분 이 친구와 함께 보냈다. 등반대장이 따끈한 물을 준비해와 날씨에 어울리는 준비라 하여 나중에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이러한 준비가 악천우에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식사 중 하늘이 어둡게 변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동물적인 감각으로 누구나 말할 것 없이 우장구를 꺼내 준비하고 단박에 짐을 챙긴 후 폭우에 대비하였다. 급변화는 산 일기에 철저하게 대응한 것이다. 얼마나 폭우가 쏟아지는지...
상의만 오버트러스를 입고 미끄러운 산 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서로에게 주의를 당부하며 샘까지 내려서자 갈증이 몰려왔다. 아직도 소귀천 계곡을 횡단해야 할 곳이 서너 차례 남아 있는 상황이라 안심할 수 없었다. 마음 속으로 대피로를 계획해 두며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 두었다. 벌써 징검다리를 타고 넘는 수량이 넘치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우중산행의 백미를 경험하니 마음은 호쾌해지기 시작하였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도 소환하고 공유하며 하산 길을 더듬어 내려섰다. 다들 안전하게 천도교 봉황각까지 내려섰다. 안심해도 도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하산 후 저녁을 챙길 식당을 정한 후 옛 식당을 경영하며 우리들에게 많은 배려를 해 주신 성만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급은 은퇴하신 후 건물 전체를 타인에게 세를 주셨지만 세입자 역시 식당업을 하여 손 맛이 있는 집이다. 또한 우리들이 형님을 만나는 장소로도 편한 집이라 늘 그렇게 선택한다. 형님도 옛 추억을 상기하시며 끝까지 잊지 않고 찾아 주는 심성에 고맙다 하신다. 오늘도 버스에 오르는 나를 배웅하시며 우중에도 끝까지 손을 들어 흔들어 주고 계셨다. 작고하신 장형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통해 나의 큰 형님도 아시게 되어 두 분이 친하게 교제하시며 한 세월을 보내시기도 하셨었다. 성만이 형은 우이동에서 몇 분 안되시는 어른이셨다. 선각자 최남선 씨 와도 가깝게 지내셔서 봉황각을 자주 빌려 사용하기도 하였고, 당시 대기업 회장들이 소유하고 있던 별장이 많은 곳이 우이동이었는데 성만이형이 나서 주셔서 수영장이나 태니스 장을 빌려주셔서 친구들과 어울려 수영도 하고 태니스도 많이 치기도 했었다. 이러한 추억담을 나누며 형님을 모시고 즐거운 식사를 끝낸 후 등반을 완성하기 위하여 각자 종착지인 집으로 향하였다. 즐거운 우중 산행으로 노년에 삼각산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 귀가 후 전부 세탁 후 건조대에 널어 놓고 산 장비들은 물기를 딱고 말린 후 제 자리에 놓자 시간은 얼추 10시가 되었다. 책상에 앉자 카톡으로 사진들이 전송되기 시작하였다. 수고했다는 인사말과 함께 이러한 인사는 우리들 각자가 소풍을 끝내는 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우정의 본질이다. 산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도 그렇게 유지될 것이다. 왜? 산을 닮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