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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포커스님
님께서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
고 하신 말씀에서의
1.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신 뜻과
2. 종의 멍에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혹자는 이것이 율법에서 자유하라는것과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이 옳은 해석인지 궁금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의 글을 드립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하시고 있는 말씀인 ‘자유케 하심’과 ‘종의 멍에’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전에 하신 말씀의 의미를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서 4장까지에서 해주시고 있는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불러 주셨습니다. 이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가 되심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 삼으심은 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이시고 그를 이방인들에게 보내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에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만 우리의 죄에서 구원받음을 말하는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전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에게만 아니요 모든 이방인에게도 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도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개종한 유대인으로 태어난 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다른 복음을 말하며 이를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도 요구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만일 그러하다고 하면, 그래서 낡은 옛 제도에 여전히 남아 그것에 매여 있다면, 그러는 한에는 그는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을 것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사람은 율법을 다 지켜 구원 얻으려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것은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는 육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킴으로써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입을 수가 없으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하나님의 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전하였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바울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며 가르치는 자들을 경계시켰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자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면서, 이는 육체로 마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것임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이방이 받을 복을 받은 것은 그에게 유대교의 율법이 주어지기도 전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구원의 복을 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된 것을 행하여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을 것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래서 이것으로 구원 얻는 의로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은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하신 말씀은 율법을 행한 그 행함에서 구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것도 일생에 있어서 단 한 차례의 범함도 없이 그렇게 율법 전체를 온전히 행하여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에, 이것의 본의적인 실상은 육체인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말해줌으로 이 사실을 알게 해주고자 하여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유효한 한시적인 것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죄에 대하여 감독자의 역할을 하면서 죄 아래 있는 우리를 율법의 보호 아래 있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을 수 있게 하기 전까지 우리의 몽학선생, 곧 율법의 교사요 안내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할 것과 율법을 행하여 지킬 것을 요구하며 그래야만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따라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그는 믿음의 길에서 떠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의에 있지를 못하고 율법의 저주 아래 그냥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이방인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약속된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의 설명을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이 그와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이며, 여기에서 ‘네 자손’이라 함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오는 유대인 전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을 의미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그리스도이신 믿음을 통해서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후 430년이 지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후에도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없어지지 않고 아브라함이 약속, 곧 그리스도이신 믿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았듯이 이것 외에 그 어떤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닌 아브라함이 받은 동일한 약속인 그리스도이신 믿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그들도 받을 것임을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서 구원 얻는 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셨는데, 그래서 구원 얻는 길이 있는데 또 다른 길로 율법을 주셨겠는지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는 또 다른 구원의 길, 또 다른 구원의 복음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음은 천하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온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로써 모든 시대에 걸친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인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이란 후견인의 관리 하에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는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다 자란 장성한 사람이며, 그는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서 보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며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유대인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자녀들이 아닌, 아브라함의 여종인 하갈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의 육체를 따라 맺어져 율법의 복종 아래 있는 종된 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종의 아들이니 자유자의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결코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말미에 이르러서 이 사실을 다룹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종의 아들은 자유자의 아들이 받는 유업을 함께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를 내쫓으셨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은 율법에 속한 죄의 종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실 자유하는 여인의 아들, 그러니까 자유자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자녀들인 자유자가 되게 해 주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가 믿는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율법에 매인 죄의 종된 자에게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심으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자유’는 육체를 따라 난 자가 되어서 율법에 매인 죄의 종된 자였던 자에서 이제는 더 이상 율법에 매인 죄의 종된 자가 아닌,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아들로서 자유자에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아들이 되어 율법에서 자유하는 자가 되는 것은 땅에서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이 아닌 하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신 약속의 아들, 곧 자유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된 세례를 받음으로써 되어진 것이기에 율법에 자유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함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곧 그리스도인이 더 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고 자유한다는 것은 자유하신 아들인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자유에 의하여 그들 또한 그 자유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입니다. 단지 율법을 이제는 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고 여전히 행하여야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율법을 행함으로, 율법을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율법을 행하지 않음으로 ‘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그래서 그리스도가 그에게 없이는, 그리스도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가 없으니 율법의 매임으로부터의 해방, 곧 율법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가 믿는 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리는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여 흘리신 피로 죄 사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가 할례를 받았든 할례를 받지 않았든지 간에, 또한 율법을 행하였든 율법을 행하지 않았든지 간에 여기에 매여 정죄를 받고 심판에 이르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자유의 의미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의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율법을 행하여야 하느냐 그렇지 않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서는 몇 번이고 죽었다 깨놔도 율법의 정죄와 그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철벽을 하늘로부터 오신 자유하는 아들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여 흘리신 피가 발휘하시는 죄 사함의 공효가 돌 위에 돌 하나 얹혀 있음이 없게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것이요, 그래서 율법이 어떤 조항을 들먹이면서 인간의 행위에서 드러나진 죄를 낱낱이 고발하고 죽음의 저주로 몰아가는 공격을 하여도 전혀 무능력한 것으로 돌아가게 만듦으로써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유를 결코 억압하여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곧 그리스도인이 이런 자유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케 하시는 이 자유(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에 견고히 있어 다시는 ‘종의 멍에’가 되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의 멍에’란 앞에서 말해온 율법에 매인 종(노예)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말은 또한 ‘종의 멍에가 되지 말라’는 것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란 말과 ‘종’이란 말이 서로 대조되어서 상대적인 개념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여지고 있는 용어를 통해서 이 둘을 대조적으로 사용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심으로써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매인 죄의 종으로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자유한 자가 되게 해 주셨음으로 해서 다시는 율법의 어떤 조항과 그 요구에도 결코 매인(율법 아래 있는, 곧 율법의 지배를 받는) 종으로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율법의 권능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그 권능이 행해지는 족족 무능력하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는 말이죠. 율법이 목적하고 있는 죄인을 정죄하고 심판에 이르게 하여 죽음의 형벌을 받게 하는 일에 그리스도의 권능을 힘입고 있어 자유한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도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죄 사하심으로 죄가 발생하는 모든 죄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공효가 미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자는 다시는 율법에 매인 죄의 종, 곧 종의 멍에를 맬 필요가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율법의 의한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고 육체로 맺는 의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구속력(拘束力)이 없습니다. 해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결코 구속(拘束)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한 것을, 율법 아래 들어가 스스로 종의 멍에를 지려고 하는 것은, 율법에 매인 죄의 종인 예전의 모습 속에 있으면서 육체로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 이것으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니,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으로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한 자가 되게 하고 다시는 율법에 매인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된 우리에게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죄 사하시는 구속의 피를 흘리게 하셨으며, 이 피를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한데, 대체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것과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한 것을 율법에 관련해서만 보고 율법을 행할 의무와 그 책임이 없다는 것에서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자유는 율법에서가 아닌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救贖)의 피에서 보아야 하며,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율법에 매인 죄의 종이 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자가 된 사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님이 궁금해 하시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신 뜻과 종의 멍에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되어서 님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목사님 감사합니다 약간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지만 프린트해서 자세히 읽어 봄으로 해서 풀린것 같습니다 항상 궁금증을 해소해 주시는 목사님의 수고에 감사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