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일을 보고 같은 일을 겪고
그리고 전혀 딴소리를 하는 일은...
사람들 마다 각기 다른 그릇에 각기 다른 성령을 받았음인가!
얼마전 성가대에 올라오신 수녀님께선 복음묵상을 해 주시며
성령의 활동으로 인한 결과는 일치라고 단언하셨다.
각기 다른 나라사람들이 성령의 감도를 받고는
각기 자신의 나랏말로 알아 듣는 기적이 일어나는 복음을 상기시키며...
지난 주 성령강림 대축일의 꽃을 꽂으며
저 자신 복음묵상도 오직 일치를 위해
붉은 싸릿대를 안으로 안으로 구부려서
주님을 상징하는 푸른 잎에 일치하도록 꽃을 꽂았다.
성령은 일치라는데...
그리고 모두들 신앙을 위해 하나되기를 기도하고
신앙안에서 하나인데
그리고 주님 사랑은 하나인데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이 생기는 것인지....
늘 상대를 배려하는 게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기준으로 사랑하며 너를 위해 그렇게 한다고 말하는 지경이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결코 혼자서는 안되는 많은 일을 하다보면
작은 일 하나하나를 치를 때 마다
뒤늦게 주님의 도우심이었구나하고 감사를 드리고나서는
그 일을 무사히 치르게 한 사람들 한 분 한 분을 떠올리고
그들이 성령의 협조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제 일이 아니라 주님의 협조자임을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아울러 하면서...
성가단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저는
엉겁결에 떠밀리듯 그 일에 "예!"하고 대답을 하고는
많은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를 탐낸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에서부터
그리고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 사람에게는 상처를 준 사람이 되고...
어떻든 지금 저는 그저 제가 맡은 일을 잘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별 무리없이 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대축일 미사에 춘 춤을 두고
어젯밤 몇 사람이 모여 그 감동을 나누며 다과를 했습니다.
모두들 춤춘 이들이 신자도 아닌데
어찌 그리 감격을 주었는지
손가락과 발 매무새를 흉내내며 화기애애 했지요.
다시한번 보기를 그리고 좀 더 길게 보기를 바란다고 말씀들 하셨는데
그 와중에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 자매님 말씀 하시길래
스스로 알이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은 모든 게 까맣게 보일 뿐이라고
그 안경은 자신만이 온전히 벗는 거라고 말했지요.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고
까만 건 까만 거지(아이구! 까만색 삐지겠다.)
어째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성령의 협조자란 주연일 수도 있지만
관객일 수도 있겠다는 묵상을 해봅니다.
누군가 선의로 한 일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격려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힘나게 하고
또 다른 일을 기꺼이 할 원동력이 되는 일임을 느꼈습니다.
신부님 발의로 거기에 순명해서 준비한 요번 대축일 춤사건은
교회의 새 기운을 받아 들이는 자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 자신 성령의 협조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자신을 성찰하는 맑은 양심이
제 기능을 할 때 가능한 일임을 다시 되새겨봅니다.
첫댓글 맞아요 검은안경을 쓴 사람은 온 세상이 검게 보인답니다....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으셨을텐데... 수고 하셨습니다....
각기 다른 성향으로 바라보니 수많은 다른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을것 같아요.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넓은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마음이 있느냐에 따라서 행복지수도 올라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