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95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아아 만월이네’]
아아 만월이네
아 만월이네
저 노오란 달덩이,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 보이네 서른다섯 해 전 울 엄니 양은대야에 담겨있던 스물두 개 인절미가 보름달빛에 넘실거리네 시장바닥 귀퉁이에 온종일 쪼그려 앉아 칭얼대던 새카만 내 손등을 후려치던 울 엄니 야윈 손바닥에도 그땐 만월이 일렁였지 사글세 방 툇마루에 가득한 달빛 시어버린 스물두 개 인절미를 쓸어내리며 만월이 된 울 엄니 얼굴에 빛나던 금빛 소금의 눈물, 아 오늘 보아도 그때 그 만월이네
아아 만월이네
저 동그란 항아의 얼굴, 옛날처럼 더욱 그립게 보이네 그 여자 푸른 옷소매에 펄럭였던 상사의 석류 알맹이들 만월 속 떡방아에 계수나무 이파리 되어 부서지네 차라리 도화살 진했으면 서로가 문득 웃고나 말일이었지 입술하나 젖가슴 하나 훔치지 못했던 미련한 것들, 마냥 지순한 두견이 되어 저 노오란 보름달에 울컥이누나 아 오늘 보아도 그때 그 만월이네
아 만월이네
저 금빛 피안의 저편, 내가 조각배 되어 스며들어갈 천상의 부두 저마다 그리운 사람들 벅찬 소회에 심장이 터지는 아름다운 모두들 이 거룩한 달빛줄기 하나씩 밟고서 섬돌에 찍힌 누항의 덧없는 자국들 미련 없이 지워야 싶으이, 아 오늘 보니 또 그 만월이네
(2003 . 8 . 13)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아아 만월이네」는 '보름달(만월)'이라는 거대한 자연적 대상과 시간의 상징을 매개로 유년 시절의 가난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달픔, 그리고 삶의 궁극적 도달점으로서의 죽음과 구원을 탐구한 서정시입니다. 총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각 연마다 '만월'의 의미를 다각도로 확장하며 시적 깊이를 더합니다.
1. 시상의 전개와 연별 특징
♣1연 : 가난했던 유년과 어머니의 '금빛 소금의 눈물'
⚫핵심 이미지 : 양은대야, 스물두 개 인절미, 야윈 손바닥, 금빛 소금의 눈물
⚫해석 : 35년 전, 시장에서 온종일 떡을 팔지 못해 시어버린 인절미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름달빛 위로 겹쳐집니다. 칭얼대던 자식을 때리던 어머니의 '야윈 손바닥'과 '슬픈 얼굴'에 넘실대던 달빛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품어내던 어머니의 헌신과 슬픔을 '금빛 소금의 눈물'이라는 감각적 비유로 승화시킵니다.
♣ 2연 : 이루지 못한 연정(戀情)과 한(恨)
⚫핵심 이미지 : 항아의 얼굴, 석류 알맹이, 도화살, 두견
⚫해석 : 달 속에 투영된 고전적 서사(항아, 계수나무, 떡방아)를 바탕으로, 과거 성취하지 못했던 청춘의 애틋한 사랑을 불러냅니다. 적극적인 욕망(도화살)을 부리지 못하고 마음을 숨겨야 했던 미련함은 피를 토하듯 우는 '두견'으로 형상화되며, 한을 품은 서정적 자아의 깊은 탄식으로 이어집니다.
♣ 3연 : 피안(彼岸)으로의 승화와 초월
⚫핵심 이미지: 금빛 피안, 천상의 부두, 거룩한 달빛줄기, 덧없는 자국
⚫해석 : 1연의 가족사적 한과 2연의 남녀 간 한을 넘어, 시선은 마침내 삶의 종착지인 '천상의 부두'로 향합니다. 지상에서 새겨진 '누항의 덧없는 자국(삶의 미련과 고통)'을 달빛을 밟으며 미련 없이 지워내고자 하는 의지는, 만월을 통한 삶의 해탈과 구원의 열망을 보여줍니다.
2. 주요 시적 특징 및 미학
♣ '만월'의 다의적 상징성
시 제목이자 변주되어 반복되는 '만월'은 시인의 기억을 자극하고 확장하는 핵심 매개체입니다.
⚫1연 : 어머니의 눈물과 양은대야에 담긴 인절미 (가난과 어머니의 사랑)
⚫2연 : 여인의 얼굴과 그리움 (이루어지지 않은 연정)
⚫3연 : 천상의 부두와 피안 (삶의 승화와 초월)
♣ 시상 반복을 통한 운율감 확보
매 연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아(아) 만월이네", "아 오늘 보아도(보니) 그때 그 만월이네"라는 영탄적 어조의 문장은 시 전체에 단단한 통일성과 수수께끼 같은 주술적 운율을 부여합니다.
♣ 전통적 서정성과 감각적 시어
'두견', '항아', '도화살', '석류' 등 한국 전통 시학에서 자주 쓰이는 상징들을 통해 한(恨)의 정서를 깊이 있게 조명하였으며, 달빛의 '금빛'과 인절미/눈물의 시각적·감각적 결합이 돋보입니다.
♚ 총 평
이 시는 한기홍 시인 특유의 토속적이면서도 정제된 언어로 개인의 서글픈 기억을 우주적 시선으로 끌어올린 수작입니다. 하늘에 뜬 만월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시인의 지나온 삶의 상처와 그리움, 그리고 언젠가 돌아가야 할 평온한 구원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