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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요한복음 21:1-14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있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했을 때 다른 제자들 여섯이 ‘우리도 함께 가겠노라’고 하며 베드로가 3년 전에 고기 잡던 디베랴 호수로 갔습니다. 모두 배에 올라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밤새껏 그물을 내려도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셨고 제자들은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 일백쉰세 마리의 큰물고기를 잡았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물고기’, ‘고기’, ‘생선’, ‘큰 물고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모두 ‘fish’, ‘great fishes’, ‘fishes’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에는 3절에 ‘물고기’는 ‘알레이온’, 5절에 ‘고기’는 ‘프로스파기온’, 9절과 10절에 ‘생선’은 ‘옵사리온’, 으로 기록되어 있고 6절과 11절에 그물을 던져 잡은 ‘물고기’와 ‘큰 물고기(익튀온, 익튀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물고기지만 뜻글인 헬라어로 기록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니까 다른 제자들까지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하며 같이 따라 나선 이유는 밝히지 않아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문이 뜻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한 물고기(알레이온)는 어부가 돈을 벌기 위해서 잡는 고기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물고기 잡아서 돈을 벌기 위해서 가자고 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전에는 자신들의 쓸 것들을 충당하고도 남아 가난한 이웃을 돕는 구제 사업을 할 정도로 재정상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못했든가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신 사건들로 인하여 귀부인들의 공궤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재정적인 어려웠다고 봅니다. 그래서 고기라도 잡아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면하고자 나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며칠 동안에 따르는 무리는 다 흩어지고 헌금도 뚝 끊어졌기 때문에 베드로가 옛날 고기 잡아 먹고 살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고기 잡으러 갔다는 것은 이해는 되지만 정확한 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의미하는 교훈은 제자들이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한층 더 일깨워주는 것일 뿐 아니라 그 같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근원이 무엇이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제자들은 밤새껏 그물을 바다에 내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밤이었지만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는 것은 실패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비록 고기잡이는 실패하였으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제자들이 사람 낚는 어부로서 장차 감당해야 할 전도 사역에 있어서도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써 그 모든 일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사역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인간적인 생각과 노력으로 모자라는 재정을 보충하고자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를 들면 선교나 구제를 하기 위해서 교회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어떤 사업을 해서 재정을 모으고자 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어떤 교회가 교회당을 건축하고 많은 빚을 져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추석이나 설 명절에 공원묘지 입구에서 평상을 펴고 국수를 팔고, 조화를 팔아서 이자라도 갚으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바닷가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새벽의 짙은 안개 때문으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기 잡는 그곳까지 찾아오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내가 크게 실패하고 어려움에 빠져 절절매고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실패하고 어려움에 쩔쩔매고 있는 나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죄중에 빠져 있는 그곳까지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합니다. 설마 예수님이 여기까지 오시겠느냐는 생각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5)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고기’는 3절에 ‘물고기(알레이온-어부가 사업상 잡는 고기)’와는 좀 다른 ‘고기(프로스파기온)가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팔아서 돈이 되는 고기가 아닌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3절에 물고기(알레이온)는 팔수 있는 상품인 물고기를 의미하고, 5절에 ‘고기(프로스파기온)는 요리를 하기 전에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9,10절에 생선(옵사리온)은 숯불에 굽었든지 요리를 해서 당장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모자라는 재정을 보충하고자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없나이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고기 잡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베테랑입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제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고기 잡아서 모자라는 재정을 보충하는 어부로 사명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불러 주신 목적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해변에 서 있는 분이 누구신가를 알았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물고기를 그물 가득히 잡는 이적을 경험하게 되자 그때야 비로소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 중에 누가 가장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도 사랑의 척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제일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주님이시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가 제일 먼저 바다로 뛰어 내려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다’(7)는 말씀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은 겉옷을 입었다가도 물에 뛰어 내릴 때는 겉옷을 벗고 물에 뛰어 내립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벗었던 겉옷을 다시 두른 후에 물에 뛰어 내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베드로의 겉옷은 제자를 상징하는 옷입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가 겉옷을 벗고 고기를 잡다가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벗었던 겉옷을 두르고 예수님께로 달려갔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잠시 제자의 사명을 벗어 버리고 옛날 어부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변가에 서서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 신줄 알았을 때 다시 겉옷을 두르고 예수님께로 달려 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겉옷이 있습니다. 목사에게는 목사를 상징하는 가운이 있습니다. 성도로서, 집사 장로 권사에게도 맡은 사명을 상징하는 겉옷이 있습니다. 우리는 맡겨 주신 사명의 겉옷을 입고 맡은 일을 해야 합니다. 사명감을 알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하면 실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벗었던 겉옷을 다시 입고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은 겉옷을 벗고 있지는 않습니까? 겉옷을 다시 두르고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나머지 여섯 제자들은 배를 끌고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숯불에 구운 생선과 떡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준비해 놓은 ‘생선’(9,10)은 예수님께서 숯불에 구워서 먹을 수 있는 고기(옵사리온) 입니다. 밤새껏 그물을 내려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춥고 배고푼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고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생선과 떡을 구워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새껏 수고하고 춥고 배고픈 제자들을 위해 성찬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렇게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먹으라고 하시므로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친밀한 교제와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실패한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다시 사명감을 주시고자 하는 깊은 의도가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려 잡은 고기를 세어 보니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였습니다. 여기에 ‘큰 물고기’는 어부가 사업으로 잡은 고기(알레이온)나, 요리를 하기 위한 물고기(프로스파기온)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 ‘생선(옵사리론)도 아닌, ‘물고기’(익튀온, 익튀스) 입니다. 이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익튀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모은 단어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물고기 모양을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부호로 삼았습니다. 요즘도 자가용이나 잘 보이는 곳에 물고기 모양을 붙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증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던져 잡은 물고기는 다름 아닌 ‘익튀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를 믿는 구원받은 성도라는 것을 의미하는 물고기 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는 다름 아닌 ‘익튀스’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복음 전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제자들이 할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아 모자라는 재정이나 보충하라고 뽑아 세운 제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 받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성도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교회가 할 일은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받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제자들인 나와 여러분은 말씀대로 순종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받도록 해야 합니다.
모나미 볼펜에 보면 ‘153’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모나미 회사 사장이 처음 볼펜 공장을 경영하면서 기독교정신으로 볼펜을 만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백쉰세 마리의 물고기를 의미하는 ‘153’의 숫자를 세긴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크게 축복을 받고 성공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모나미 볼펜은 세계적으로 인정합니다.
처음에는 제자들이 사명에서 벗어난 잘못된 목적으로 출발을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제자로 불러 세우신 올바른 사명감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백쉰세 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물고기는 어부가 사업적으로 잡은 물고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을 수 있는 물고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잡은 물고기(익튀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구원받은 성도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자기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고기를 잡아보았지만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였을 때 큰 물고기(익튀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 구세주)를 잡을 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셔서 잘못된 출발을 하였던 제자들에게 다시 사명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셨고,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시는 줄 주님이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다시 주셨습니다(15).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여러분에게 찾아오셔서 사명에서 벗어난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십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주의 종으로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고쳐 주십니다. 우리는 잘못 생각으로 실패하였을지라도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듣고 잘못을 고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