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Tchaikovsky (1840-1893)
Symphony no.6 in B minor op.74 'Pathetique'
USSR Symphony Orchestra
Evgeny Svetlanov
1. Adagio-Allegro non troppo
2. Allegro con grazia
3. Allegro molto vivace
4. Finale : Adagio lamentoso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Pathetique' (비창)>
차이코프스키를 흔히 '우수의 작곡가'라고 한다. 그의 음악이 지니는 어두움과 쓸쓸함
때문이다. 물론 그의 병적인 소심함, 신경질, 우울증 같은 성격에 기인하는 면도 있겠
지만, 사실은 러시아 사회의 암울한 상황, 당장 질식할 것만 같던 시대상에 더 큰 원
인이 있었다. 그러한 어두움과 쓸쓸함은 당시 러시아인 전체의 어두움이며 쓸쓸함이었
다. 쉴러도 말하고 있듯이 '예술가란 그 시대의 소산물'이다. 차이코프스키가 태어난
1840년부터 [비창]이 작곡된 1893년까지의 러시아는 한마디로 불안의 시대, 암흑의 시
대였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 체호브도 투르게네브나 도스토에프스키 같은 인물도
이 시대를 산 사람이었다. 그 무렵 남달리 예민했던 차이코브스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예술가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오늘날 몸소 겪고 있는 이 음
산하기 그지없는 시대에는 오직 예술가만이 답답한 현실로부터 눈을 딴 데로 돌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위의 말에서 숨막히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교향곡 제6번 [비창]의 초연은 1893년 10월 28일 페테르부르그의 러시아 음악협회 연
주회에서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지휘로 거행되었다. 평판은 좋지 않았다. 너무 특이한
곡의 양식과 절망적인 어두움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과 청중이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다음날 동생 모데스트가 아침 차 마시는 시간에 형의 방에 찾아가니까 차이코프스키는
새 교향곡에 붙일 표제를 궁리하고 있었다. 출판사의 주인인 유르겐슨으로부터 악보에
표제를 붙이는 편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둘이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동생이 문득 "형님, '비극적'(Tragique)이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하고 제의했지만 차
이코프스키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한 참 있다가 "그럼 "비창"(Pathetique)
이어때요?" 하니까 즉석에서 "좋아, 그거야, 바로‥‥‥." 하고는 대대로 악보에 써 넣
었다. [비창]이라는 제목이 붙게 된 에피소드이다.
차이코프스키 자신은 "새 교향곡의 표제는 모든 사람에게 수수께끼가 될 것이다. 이 표
제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다. 여행 중에 곡을 구상하면서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고 조카 다비도브에게 보낸 편지속에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암울하고 절망적인 곡을 초연한 지 9일 만에 차이코브스키는 갑자기 죽었다.
자살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비창]의 평판이 좋지 않아 비관 자살했다고도 했다.
사실은 그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콜레라였다. 초연이 있은 지 6일째 되는 날 식당에 나
타난 차이코프스키의 모습은 초췌하고 태도도 여느 때와 달랐다. 전에 없이 주의력이
산만한 상태이며 누가 말을 걸어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는 식탁에 놓인 컵의 물을 들
이켰다. 끓이지 않은 냉수였다. 당시 콜레라가 온 러시아를 휩쓸고 있어서 냉수를 마신
다는 짓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무슨 생각에 골똘한 채 무심결에
물을 마셨다. 다음날 아침 고열이 그를 엄습했다. 심한 구토와 설사가 뒤를 이었다. 의
사도 이미 손댈 수 없는 상태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어머니도 그가 어렸을 때 콜레라로
죽었다.
4일 후인 1893년 11월 6일 새벽 3시에 그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이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자살설이 퍼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죽음 따위를 의식하고 있지 않
았다는 사실은 그와 친했던 사람들이 쓴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교향곡 제6번 [비창]
을 초연하기 직전에 모스크바에서 차이코프스키와 만난 카시킨은 그의 회상록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과 작곡가의 죽음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나 하고
탐색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 곡에서 죽음의 예감, 산 자의 마지막
교훈을 찾아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를 만났을 때 그런 인상은
조금도 받은 일이 없다.‥‥‥ 그는 젊은 시절에 죽음의 두려움으로 고민한 적은 있지
만 교향곡 제6번을 쓸 무렵에는 그런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죽은 후 다시 연주했을 때, 청중도 그 뜻을 알았기 때문인지 연주회장
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스타소브는 서슴없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교향곡 제6번은 차이코프스키의 최고 걸작이다.‥‥‥ 이러한 곡이 음악으로 작곡된 적
이 한 번도 없으며 정신 생활의 심각한 장면을 그렇듯 비범한 재능과 아름다움으로 표현
한 일도 일찌기 없었다.』
(본인소장음반, 안동림 교수의 이 한장의 명반해설)
♧'· ,…(옥련암입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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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no.6, op.74, '비창', USSR., 스베틀라노프/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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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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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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