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을 6톤 샀습니다.
사 오년 전에 때 써 본 경험으로는 한 해 겨울나기를 알 수 없어 이 양을 기준 삼을 셈이죠.
화목보일러를 본적도 없는 사람이 다만 비싸고 좋아보이는 유니온보일러를 샀고
그 불을 당길 때까지만 해도 한겨울 뜨듯한 거실을 생각하며 느긋하였지요.
밖에 창고벽을 기대려다가 맘을 돌려 창고 안을 선택했어요.
나무를 쌓기 위해 오년 묵은 창고를 방출하고
그것들을 버리거나 모으거나 쓰기 좋게 재진열하기까지 며칠이 걸렸죠.
아침을 먹기도 전에 일어나 깜깜해서야 들어오니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립니다.
지난 삼년 정원단장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제 건강과 정력은 두 주먹 부르르 떨며
이 산 저 봉우리를 날아다녔지만
시방은 요 쪼꼬만 일 하나에 사방팔방이 다 삐그덕거립니다.
골병이 든 게죠.ㅎ..
근육과 힘줄이 굳어 유연성이 떨어졌는가 싶었지만 겨우 요 정도를!
밤에 들어오면 통처를 누르며 뜸을 뜨게 하는데 그 부위가 열 댓 자리나 됩니다.
약도 달입니다. 상지, 오갈피, 모과, 갈근, 독활, 황기, 맥문동, 작약, 목단피, 단삼, 토사자...
지난 여름이 무척 더워서 열이 채 가시지 않은 데다 이리 중노동이고
며칠이고 막걸리잔이니 피부에선 군데 군데 '풍진'이 돋기도 했어요.
시골생활에 무언가 한 가지가 늘어나면 그 양만큼
돈, 시간 공간 노동들이 따르게 되죠.
나뭇꾼의 눈이 저런 것들을 일삼더니 버리기는 아깝고 세우자니 보통 일이 아니라서
저렇게 쌓아두는 번거로움까지 늘었습니다글쎄...
털고 씻고 다듬고 자르고 문지르고를 다하여도 이제부터
포리코트를 이용하며 세우는 일이 남았고요
그 과정에서도 셀 수 없이 자잘한 손이 필요해요.
만일 풍란을 붙여 기른다면 실내, 기온, 습도, 햇빛, 영양 등
수 많은 정성을 쏟아부어야 하니
전원생활이란 참 적당함을 맞추기가 어렵군요.
저 보일러는 유니온화목보일러인데 비싸기는 왕 비싼데 비해 품질은 별루예요.
거꾸로 타면서 연기가 연소실 뒷편의 세 개의 관구멍으로 빠져나가는데
그 위엔 타르를 청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죠.
그 공간의 존재를 모른 채 용수철로 연결된 상하운동의 손잡이로
털어내는데 조금 뻑뻑한 것을 당겼더니 톡 부러져 버리는 겁니다.
회사에 전화했더니 고쳐주지는 못하고 그 용수철을 제거만 해주겠다는 것.
결국 지금은 이 몸매로도 비좁은 보일러 뒷공간으로 끼어들어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 세 개의 구멍을 청소한답니다.
청소하러 들어갈 때는 아직 버리기는 아까운 이 보일러를 다독거리지만
그 진력나는 청소의 순간에는 당장 내다버리고
접때 나주농업박람회 때 보았던 그 '뉴탑보일러'가 간절해지는 겁니다.
시골은 일년내 밖으로 나가는 태울 것들이 많죠.
휴지, 종이, 천, 박스, 나뭇가지 등...
재작년은 뒷숲에 벌목꾼들이 베놓고 간 것들을 줏어오기만 하여도 한 겨울을 났고
작년은 그것들이 줄어드니 좀 먼 거리까지 원정을 가야 했으며
더러 뒷터의 공간을 밭으로 쓸 목적으로 자잘한 잡목들을 베어 놓으면
노느니 주기도문 왼다고 또 한 겨울이 어느덧 휭 날아가기도 하였는데
올해는 나무를 사게 되었으니 이 어찌 안 귀할까!
그리하여 잘 마른 이 나무를 창고로 모시게 된 것이죠.
위 그림은 화실로 들어가기 전 제 도끼실력을 늘려갈 공간.
창고는 전원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죠.
가차운 곳에 자주 쓰는 물건들은 입구 쪽에, 깊이 들어가도 곧 꺼내 쓸 수 있는 구조,
비를 피할 물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장들의 보관소로서 긴요하기 이를 데 없어요.
빗자루 하나도 용도별로 필요하고, 바구니 하나도 크고 작기가 여럿이어야 하며,
사다리도 몇 개, 리어커도 다양해요.
집짓기 공사가 끝나고 남은 자재들은 한 오년을 우려먹습니다.
어디서고 필요해지며 조금만 변형하면 요긴하게 쓰게 되어
굳이 사러 가고 오고 남아서 저장하고 부족하면 또 나가야 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재료의 사용법을 배우고 역시 한 오년 만지작거리다보면
더는 별로 할 게 없다... 이것들로부터 손과 어깨가 자유로워집니다.
휴가 온 딸과 아내가 내 허리를 가리키며 몇 번을 말려도
저는 비장하게 새벽같이 나가 또 일을 해요.
손주의 "하찌야!" 소리를 뒤로 하고 장갑을 끼는 순간이 가장 서럽죠.^^
창고에서 잠 자고 있던 오년 전의 옛 딸의 침대를 분해하고 서랍장을 부수며,
그 곱던 옷들을 꺼내고 활용 재활용을 구분하며 버릴 것을 가르고
쓸 것을 모으며 태울 것을 쌓으면 차차 공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요.
내 마음의 창고는 한결 넓고 환해진답니다.
참 자리차지하기 어려운 예초기도 큰 대자로 늘어지게 눕고
평상 아래로 갈 것 위로 오를 것들이 분명해질수록
내 사주며 관상이며 풍수가 서늘지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지나 온 오년인가 싶습니다.
저 앵앵거리는 기계톱을 작년부터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산에서 바로 실어오는 산림청작업 땔감은 잘게 절단하지 않고
쌓아놓았다가 다시 싣는 수고도 없어서 이때 사면 그만큼 싸죠.
30cm 길이로 잘라놓은 땔감의 시중 가격은 마르지 않은 목재 기준으로
톤당 17만원 정도가 기준이더군요. 이것을 장작으로 쪼개어서 팔면 20만원.
1루베로 파는 것은 가로 세로 높이가 1m이므로
1톤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이 오는데 12만원 정도에요.
실내난로에나 맞아요.
내친 걸음에 자루가 빠진 넉가래에 나사못을 조여 걸어주고
쇠스랑의 자루를 비롯한 몇몇 농기구들을 보수합니다.
전혀 쓸 데가 없어서 세워두었던 평상도 꺼내어 긴 것 두 개는 창고에,
큰 것 하난 그림 작업실로 옮겼놓았답니다. 눕혀놓고 그릴 그림을 생각해서죠.
이곳은 집의 뒷공간. 보일러실의 뒤.
'까대기'를 내어 만든 이 공간은 주로 '만들기' 위주의 연장들을 죄 모았죠.
목부작, 용접, 자르기, 붙이기, 칠하기, 풀기, 묶기...
책장과 서랍에서도 모두들 질서정연하게 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요곳은 스티로폼 박스죠?
요뇬석도 버려지기 전에 한 번 더 일을 해야 합니다.
ㅎ 저 안에 제 몸의 일부를 담고
지 모습과 똑 닮은 다른 몸으로 변신하는 거.
더욱 강인하고 단단하며 견실하고 무거운!!
우리 집에서 젤 잘 활용할 것처럼 했던
이 공간은 가장 내버려진 곳으로 변했답니다.
딸기, 마, 천문동, 갯기름나물, 삼백초, 쉽싸리, 콩들이 공존하다가
주인의 발길을 잃으니 잡초밭이다시피 돼버린 것.
이 공간을 위해 새로 준비하는 첨병이 스티로폼이었습니다.
나무로 틀을 만들어 대강 구상한 대로 뽑아내면 얼추 정원 그림이 나올 것이죠.
널부러졌던 공간을 치우고 그 자리에 저장고에 두었던 것이 햇빛을 보고
드뎌 큰 평상이 들어오기도 하였으니 이제 제 작업실이 썰렁한 공백을 내 쫓으며 슬슬
붓동가리들이 움직이려고 합니다. 손주의 '하찌야'를 물리치고 창고 일을 서두르는 이유이기도 하고
화단을 언능 해치우려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땔감을 창고에 쟁이는 진짜 이유이기도 했죠.^^!
행복한 일상 위에 따뜻한 겨울 맞으시길...
첫댓글 넘 잘하셨습니다
벤치마킹했습니다
모르고 덤빈 화목난방 스토리구요,
지금은 가스로 전환하여
이리도 편한 세상이 다 있었구나, 헤프게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