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좀 흘렀다. 언젠가 집사람하고 백화점에 갔을 때다. 집사람과 나이 차가 고작 세 살인데 백화점 직원으로부터 내가 시아버지로 오해 받은 적이 있다. 아마 내 얼굴을 보고 판단한 웃고 넘어야할 상황이었다. 그 일 말고도 나는 자주 가지 않았지만 집사람과 백화점 쇼핑에서 여러 사연을 남겼다. 집사람은 나와 동행한 쇼핑을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한정했고 출발 전 교육을 받았다.
집을 나서면서 매장에서 제발 촌티 내지 말라는 당부였다. 나는 물건 값을 물어볼 때 ‘가격이 얼마입니까?’라 하지 않는다. 그냥 퉁명스럽게 ‘금이 얼마요?’라고 한 마디 불쑥 던진다. 집사람은 나의 이런 말투가 참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금이라는 말은 시골 노인네나 쓰는 것으로 알았다. 사실은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는 당당한 표준어다. 금은 시세나 흥정에 따라 결정되는 물건 값이다.
시월 셋째 토요일은 매달 한 차례씩 열리는 문학동호인 월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새벽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며 가을비가 살짝 내렸다. 아침 날씨가 쌀쌀했지만 하늘은 참 맑고 파랬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 먹고 근교 산자락 조용한 숲에서 맑은 공기를 쐬고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집사람과 함께 어디를 다녀와야 할 일이 있었다. 백화점에 쇼핑이었다.
우리는 창원 시내 백화점을 찾지 않고 마산에 있는 백화점을 선택했다. 인근 도시로 나간 김에 어시장도 구경했으면 싶었다. 마산은 창원과 같은 생활권이면서도 다른 면도 많다. 창원이 젊은 도시라면 마산은 늙은 도시였다. 주민들의 연령도 마산이 더 높을 것이다. 근래 몇몇 지역에서 행정구역 통합을 의견수렴이 있는 모양이었다. 거리 곳곳에 통합을 지지하는 펼침 막이 걸려 있었다.
나이 들면서 나는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한 갑 넘게 피웠던 담배를 끊은 지는 십년 지난다. 그간 체중이 제법 많이 불어났다. 지난겨울부터 다른 매체운동의 도움 없이 걷기운동만으로 십 킬로그램의 살을 뺐다. 체중을 많이 줄였더니만 그간 입던 옷이 모두 헐거워졌다. 바지는 치수를 줄여 입기도 했다만 윗옷은 어쩔 수 없이 새로 사야 했다. 그래서 나선 걸음이었다.
집사람은 1층 가바치 매장에서 검정색 손가방을 하나 보아두었다. 3층 신사복 코너에서 계절에 맞는 콤비와 바지를 샀다. 근처 매장에서 카디건도 하나 샀다. 알려진 브랜드보다 내 체질에 맞는 수수한 차림이 마음 들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집사람은 아까 보아 두었던 손가방을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다른 제품과 비교해 망설여보다 값을 치르고 백화점을 나섰다. 바로 곁이 어시장이다.
우리는 어시장 청과물 골목을 빠져 나와 활어매장으로 갔다. 새벽 경매시장에서 살아 펄떡이던 활어가 넘쳐났다. 제철 전어가 인기였다. 광어와 우럭도 있었다. 자연산 돔과 방어도 있었다. 횟집 아주머니가 제주 근해에서 가을 한철만 잡힌다는 팔뚝만한 방어를 추천해 주었다. 방어는 등이 푸른 활어로 꼬리를 힘차게 흔드는 녀석이었다. 한 번도 회로 먹지 않은 물고기라 썰어 달라했다.
방어를 회 뜨게 주문해 놓고 옆 가게에서 신선한 생굴을 샀다. 어시장은 주말을 맞아 평일보단 손님이 많은 듯했다. 그래도 재래시장의 활기가 예전만큼 같지 않았다. 노점에는 제철을 맞은 감이나 밤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모양 예쁜 화분에 담은 싱그러운 화초도 있었다. 잘 가린 시금치나 솎음 무나 배추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시장을 좀 더 둘러보고 싶었는데 집사람 아니었다.
그간 둘만 지낸 썰렁한 집이었다. 큰 녀석은 군 복무한다고, 작은 녀석은 기숙사에 머문다고 집을 비웠다. 큰 녀석이 이태 가까이 전방에서 보내다 최근 제대했다. 내년 봄 복학을 앞둔 사회적응 기간을 보내고 있다. 용돈이랍시고 생각하며 고등학생 과외지도에 틈을 내기도 한다. 저녁 식사시간 4인용 식탁에 작은 녀석 자리가 비긴 해도 오붓한 자리를 했다. 상추쌈에 회 한 점을 곁들였다. 09.10.17
첫댓글 참 소박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