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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법회보를 접어 차곡차곡 챙기시니, 법회 날 아침 송파 17구 보살님들은 현관에서 법회보를 배부하시고, 송파 27구에서는 엘리베이터 봉사로 분주한 가운데 사무국에서는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회의를 진행하고 계신 법회장님을 비롯한 부회장 단 및 정수위원 님.
동대문구, 중구, 송파 1구, 송파 4구에서 떡과 생수를 보시하여 불광 형제들께 배분하고 계신 보살님들.
법회 안내 팀, 새법우 안내팀, 여러분들의 봉사로 오늘의 일요법회도 여법하게 이루어 집니다.
현수 거사님께서 천수경 및 법회 시간에 맞추어 타종. 사회자님의 멘트로 부처님 전에 헌향과 헌다를 올리며 시작되는 법회.
일요 법회에 참석하신 불광법회 형제들로 가득한 보광당의 모습입니다. 어느 누가 이 장엄한 법회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금주의 법문 : 효림 스님(경원사 주지)
금주의 법어 : 하나로 합한 상(相)도 상(相)이 아닙니다.
불광 법회가 창립된 지가 어떤 문건에 보니까 50년 되었다고 하네요. 50년이라고 하면 반백년입니다. 불광법회가 상당히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그동안에 아주 승승장구하고 줄기차게 발전해 오다가 중간에 조금 거시기 했는데 오늘 법회가 와서 보니까 기운이 약간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좀 있는 것 같아서 상당히 고무적으로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제 금강경도 이렇게 끝나가는 시점인데 끝나면 제가 마음에 묻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특별법회로 하려고 하는 것은 혜담스님이 지난번에 쓰셨던 책, 그 책을 내가 시간 날 때마다 한 번씩 읽어보는데 혜담스님이 정하기를 『정관명상』 이렇게 정했어요.
그래서 요즘 우리가 명상한다. 선 명상 또는 명상이란 말이 요즘 굉장히 유행하잖아요. 그래서 그 명상에 대해서 읽고 나는 그 감상에 대해서 내가 한번 얘기를 해야 되겠다 그것을 별도로 한번 얘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그 책이 우리 큰스님이 아주 내용을 충실하게 정밀하게 하셨어요. 우리는 글을 그렇게 잘 못 씁니다. 그 학문을 전문으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 자료 찾기도 힘들고, 또 시인은 글을 횡간의 넓이를 넓힐수록 아름다운 글이다 이런 의식이 있어요.
그래서 간결하게 쓰는 걸 좋아하지 그렇게 세밀하고 섬세하게 쓰는 것을 잘 못하는데 아주 최근에 나온 어떤 그 어떤 논문보다도 아주 우수한 그런 글이다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아니 50주년 하니까 불광법회가 50주년을 맞아서 참 기념비적인 것도 하나 나왔다.이런 뜻에서 제가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더불어 이제 참고사항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불광법회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잖아요.
큰 스님이 불광법회의 새로운 한국불교에 그동안에 없었던 관세음보살을 염송한다든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한다든지 그런 것은 있었고 일본 같은 데서는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도 그게 ‘남묘호렌게쿄’ 이러잖아요. 일본 말에서 호렌게쿄가 ‘나무묘법연화경‘ 이런 뜻이라 그래요. 그래서 거기에 이제 법화경이라고 하는 경전의 원 제목이 ’실상 묘법연화경‘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그 ‘실상 묘법연화경‘의 경전 제목을 염송하는 그런 것이 전례가 있기는 합니다마는 그 광덕 큰스님이 ’마반야바라밀‘을 염송하게 했다는 것은 특이한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반야‘를 염송하라 이 소리예요.
그러면서 아울러 정말 큰스님은 천재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하‘라든지 또는 ’바라밀’이라든지 이것은 ‘반야’에 붙어 있는 서술의 표현이고 그 핵심은 ‘반야’거든요. 불교의 핵심은 명상을 통하여 정각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 명상이 뭐냐 명상의 핵심이 '반야'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여기에 불광에 오면 유달리 광(光}자가 많잖아요.
불광이라고 할 때 광(光)자와 더불어 통하는 게 법등(法燈), 명등(明燈)입니다. 등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빛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한번 아울러 이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지극하게 집중해서, 이제 이렇게 더불어 얘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더 하는데 우리가 이 선방에도 참선을 하는 스님들이라든가 또 연구를 하는 스님이라든가 이런 것에 보면 용맹정신을 선호하고 이러면서 보면 많이 하는 량(量)으로 승부를 걸라고 그래요. 그런데 량(量)으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질(質)로 승부를 거는 게 좋다. 잠깐만 하더라도 아주 집중적으로 딱 그러니까 ‘반야바라밀‘을 내가 혼자 잠자기 전에 한 5분이나 10분, 처음에는 한 5분 나중에 한 10분 그래야 나중에 한 30분 이렇게 짧게 하더라도 한 5분 10분하더라도 그것을 간단(間斷) 없이, 쉽게 말하면 그치지 않고 하루 이틀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반복해서 하는 것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래 하는 게 좋지, 용맹정진을 한다고 밤을 새워가면서 한 며칠 하고 염증내고 또 한 번 기도 한번 해야 되겠네 이러면 겁이 나요. 하기 싫은 생각이 나고 그렇게 어떻게 또 밤 새고 해야 돼? 그렇게 하는 것보다 한 5분 10분 한 30분 이렇게 짧게 하더라도 그것을 할 때 집중력을 높여서 하는 것에 대한 그 오묘한 맛을 느껴야 됩니다. 해보니까 재미가 있구나. 해보니까 좋네.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발적으로 자꾸 그것을 시간만 나면, 하고 싶은 그런 생각을 내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을 더불어 말씀을 드리면서 서술이 좀 길었는데 또 이렇게 제가 하나 써 왔습니다.
有我之卽 有宇宙 (유아지즉 유우주) 내가 있은즉, 우주가 있는 것이다.
又有宇宙 是有我 (우유우주 시유아) 우주가 있으면 내가 있는 것이다.
是故我 宇宙同根 (시고아 우주동근) 그래서 나와 우주는 같은 것이다.
我也宇宙 不分離 (아야우주 불분이) 나와 우주는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런 게송인데요.
그래서 불교의 연기법에 의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대체적으로 연기(緣起)다 이러잖아요.
해석을 하자면 이런 거예요. 내가 있고 있은 즉 내가 있은 즉 우주가 있는 것이다.우유 우주라 그러면 이게 어마무시하게 큰 우주가 있잖아요.이게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습니다. 내가 아니 내가 태어나지도 않고 아예 생기지도 않고 처음부터 아직 없었다고 생각해봐요.그냥 우주가 있겠어요. 그 유 우주 피와 우주가 있으면 또 내가 있는 것이다.근데 그게 나는 있는데 우주는 없다 이게 또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이게 그런 연고로 나와 우주는 동덕이야 같은 것이다 같은 것이요.아야 우주 나와 우주는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누어지는 것이 연기(緣起).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이제 뒤에 오면 공(空)의 사상으로 발전하기 전에 중도 사상도 있고 이랬는데 중도 이런 것이 다 그 연기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얘기를 이해를 하시면 돼요.그래서 이것은 나라고 지칭할 때 내가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 위해서는 내가 있다 의상 스님이 쓰신 법성게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의상 스님은 화엄경을 전공하신 분이에요.
중국에 유학까지 가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오셨어요.원효 스님하고 같이 유학을 갔는데 원효 스님은 중간에 중국 갈 거 뭐 있노? 무덤 속에 들어가서 요즘 무덤하고는 달리 옛날 우리 고대 무덤은 사람이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고 그랬던 모양이에요.
오래 묵은 무덤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밤에 잘 때는 그걸 몰랐는데 아침에 깨고 보니까 해골 속에 있는 물을 먹었단 말이에요. 해골 속에 고여 있는 물을 비가 주룩주룩 와서 비를 피하려고 굴이 있어서 쑥 들어갔는데 그래서 그걸 보고 그 순간 도를 깨달으셨다. 그래서 중국을 안 갔죠. 두 분이 다 화엄을 정통했어요. 화엄을 정통하셨는데 의상 스님은 중국에 가서 유학을 하셔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오셨고 원효 스님은 중국에 안 가시고도 스스로 화엄의 도리를 정통하셨다.뭐 이렇게 돼 있는데 근데 이제 거기에 보면 오늘 이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과 연관이 있기에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하나의 작은 티끌 가운데 티끌이 시방 세계를 시방 세계가 우주죠.우주 이 우주가 그 속에 다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이 함(含)이라고 하는 게 한 글자로 머금을 함(含) 이렇게 돼 있어요. 그 머금고 있다.그 속에 다 담아가지고 있다. 이 소리예요. 작은 티클 속에 우주가 다 담겨져 있고, 일체 진중 역여시라(一切塵中亦如是) 일체 그게 한 티끌만 그런 게 아니고 일체 티끌 가운데 모든 티끌이 다 그래요. a라는 티끌에만 우주가 담겨 있고 b라는 티끌에는 안 담겨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모든 티끌 가운데 우주가 다 담겨 있다. 이게 내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거울을 두 개 이렇게 놓고 마주 보게 집에 가면 거울 많잖아요. 한번 그 실험을 해봐요. 그게 딱 삐딱하게 각이 기울면 조금 덜한데 아주 각을 딱 반듯하게 세워서 정확하게 거울 가운데 자기가 서서 왼쪽을 쳐다보든지 오른쪽을 쳐다보면 그 끝이 어딘지 안 보입니다.
얼마나 멀은지 우주를 이해하는 것도 나는 그와 같다고 봐요.한 거울이 우주를 다 머금고 있고 우주가 한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 念) 시간도 그래 공간 이거는 이제 공간적으로 그렇게 돼 있는 것 같으면 무량원겁즉일념이라 무리 헤아릴 수도 없는 큰 시간이 한 생각 속에 다 들어 있다는 거야.
한 생각이 또한 무량겁이라 이 무량(無量)한 헤아릴 수도 없는 긴 시간이 한 시간 속에 짧은 찰나 속에 싹 들어가 있는 것 같으면 일념(一念)이 또한 늘어나서 무량겁(無量遠劫)이 된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아니 여러분이 정관 명상을 하셔가지고 삼매를 터득하잖아요.그럼 그냥 다 알아버려요. 이거 안 배워도 알아 그것이 ‘반야(般若)입니다.여러분들이 반야바라밀을 염송해서 삼매를 딱 이루면 이와 같은 복잡한 논리가 한 번에 싹 다 통해버립니다. 그것만 알면 돼요.
그래서 중요한 거는 자꾸 이걸 머리를 굴려가지고 어떤 사람은 수학적 계산을 잘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머릿속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잘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그래 아니 그걸 두 개를 다 잘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각기 다 머리를 쓰는 것이 달라서 어떤 거는 이해하기 쉬운데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거는 이해하기 어렵다.이런 것이 굉장히 많은 차별이 있습니다. 사람들 그런데 명상을 통해서 삼매를 이루면 거기 하나를 다 통해버려요.그래서 큰스님이 맨날 일념으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 염송하라 염송하라 계속 그렇게 강조를 하시는 거예요.큰스님 법문에 항상 그걸 많이 강조하시잖아요.
다음에 혜담스님이 써놓은 정관 명상에 써놓은 글을 설명하려고 이 정도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런 가운데도 하나 좀 설명을 할게요.이거는 이치로 이해 한다는 것보다 하나가 전체를 머금고 전체가 또 하나를 머금고 우리는 한쪽으로만 보잖아요.한쪽으로만 그게 한쪽으로 치우쳐서 왜곡되게 인식을 하는 것인 거란 말이에요.그래 이게 뭐냐 하면 우리가 우주 속에 들어 있다 하면 그거는 쉽게 이해하잖아요.우주 속에 들어있다. 근데 우주가 내 속에 다 들어있다.
이 광활한 우주가 아니 1억 광년 이라 그러면 1억 광년이라는 말을 우주 천체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무슨 저 별은 거리가 얼마나 떨어 있습니까? 물으면한 1억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이럽니다. 그 1억 광년은 빛의 속도로 1초에 얼마를 간다.그렇게 빠른 빛의 속도로 1년을 가는 걸 1광년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그렇게 빛의 속도로 온 게 한 1억 년 동안 왔다. 그 얼마나 먼 거리를 왔겠어요 그걸 천체 물리학자는 그걸 거기에 무슨 저거 안드로메타라는 별이 있다 하면 거기 몇 억 광년에서 온 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거든. 그만큼 우주가 넓다. 이게 내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뜻이에요. 근데 이거는 이제 뭐냐 하면은 우리가 한 개인이 하나의 우리가 개인이잖아요. 어디에서 무슨 사고가 나가지고 한 사람이 죽었다 저 어디 전쟁이 나고 백 사람이 죽었다 그러면 요즘 전쟁은 사람 많이 안 죽더라고 보면 옛날에 고대사 같은 그런 걸 읽어보면 전쟁에 한 번에 수십만 명이 한 번에 죽고 그러는 전쟁이 많습니다. 근데 그런 전쟁 속에서 사람이 무수하게 죽었잖아요. 우리가 사람을 두고 볼 때, 한 사람의 목숨이 100사람의 목숨하고 무게를 닮아 어떤 게 더 무거울까 우리가 그런 걸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사건이 한 사람 죽으니까 이거는 가벼운 사고고 백 사람이 죽으면 무거운 사고인가. 생명의 무게는 이런 저울의 추가 저 시장에서 파는 물건 다는 무게 저울하고 달라요.어떻게 다르냐 한 사람의 무게와 100사람의 무게도 동일하고 한 사람의 무게가 만 사람의 무게하고도 동일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존엄의 가치는 한 사람의 존엄이 지구 안에 60억 70억의 인구가 사는데 그 사는 사람들의 무게가 동일합니다.
이 불교 하는 사람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존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각기 우리가 하나의 개체로서 그런 존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미진중 함시방이니 의사는 그런 것 속에서 이해하기 좀 편하다고 제가 그렇게 비유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또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서 어떤 왜곡된 인식을 하느냐 하면 자기가 경험한 것으로서 이 속에 머리에 담아놓고 있는 것으로서 그걸 견주어 인식합니다. 그래 우리가 시각적으로 붉은 것은 불이다. 그래 불하고 똑같은 빛깔을 여기다 갖다 놓으면 아 저게 불인 줄 알고 위험해서 손을 못 건드리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런데 이제 그런 기억을 축적해 놓고 있는 것이 우리의 기억 체계인데, 그러나 쉽게 제가 한번 비유를 들어서 해결을 할게요. 우리가 명상을 통해서 삼매를 이루면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이 인간의 의식이 요즘 현대 심리학이라든가 이런 것에서도 미처 얘기하지 못한 것으로 우리는 이 반야심경을 얘기할 때 이렇게 하잖아요. 오온이 개공하다 관세음 보살이 반야 바라밀다를 깊이 행할 때 이게 뭐냐 하면 우리가 반야 바라밀을 깊이 행하는 것은 반야바라밀 삼매에 들었다 이 소리라고 이해하면 돼요.
관세음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행하나 여러분들이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마야반야 바라밀을 일체 망념이 떨어지는 삼매의 경지에 들어가도록 염송하면 그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깊이 행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얼마만큼 깊이 행해야 되느냐 그게 부처님 경전에 보면 제일 마지막 단계에 무슨 멸진전이 있다.부처님 경지까지 가려면 아주 이게 우리가 인식 체계가 우리가 평생에 인식체계가 표면 의식으로 가지고 있는 게 6식(六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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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식(六識)이 반야심경에 보면 안식(眼識) 이식(耳識) 그러니까 그렇게 나오죠. 6식(六識)을 가지고 있는데 그 6식에서 하나의 기억을 저장하는 내가 누구한테 계돈이 없다 그래서 빌려준 얼마를 빌려줬는데 그런 걸 여러분 우리가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잖아요.며칠 후에 누구 생일인데 가서 축하를 해줘야지 이런 걸 다 기억하고 있어 그 7식(七識) 말라야식이라 그래. 우리가 염송을 할 때 일념으로 할 수 있는 경지에 가면 말라야식 정도를 넘어서요.
근데 거기에서 더 가는 것만 뭐냐 하면 이 스님들이 법문하실 때 아뢰야식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죠.아뢰야식 그 아뢰 야식은 어떻게 돼 있는 거냐 하면, 우리는 윤회를 하잖아요.윤회. 내 그게 어떤 무슨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와 있다고 그러나 내가 그런 걸 한번 들여다보지는 않았는데 요즘 불교계에서 누군가가 윤회는 없다. 그래서 어떤 의도로 윤회가 없다고 얘기했는가를 내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비판하지는 않겠어요. 우리가 뭐가 있어서 윤회를 하느냐 무아라는데 윤회하는 실체가 없는 거다.
아뢰야식이 있어서 윤회를 해요. 아뢰야식 요즘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도 잠재의식, 잠재의식을 얘기하고 무의식을 얘기합니다.그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무의식의 경계가 어디까지 깊이 들어가 있는 것이고 얻은 것을 얘기하는 건가 내 전문가가 아니라서 딱 집어서 얘기할 수는 없으나 그게 아뢰야식이라고 보면 돼요.
그래서 이거는 뭐냐 하면은 우리가 과거 전생부터 익혀온 모든 업이 딱 뭉쳐 있어요.그래서 그걸 산스크리트를 아뢰야식 하면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중국말로 번역을 하면 장식(藏識)이라 그래요.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북극에 가면 빙하라는 것이 앞에 이렇게 딱 드러나서 조그마한 게 하나 주먹만한 게 드러나 있는데 속에는 어마무시하게 큰 게 이렇게 있잖아요.그것처럼 아뢰아식이 있어요. 근데 그 아뢰야식 그 경지까지만 가도 신통이 나온다 그래요. 신통이 근데 그걸 넘어서야 돼요. 그래야 여래장까지 들어가는 거예요. 여래장까지 이게 좀 이상한 얘기같이 됐는데 그건 나중에 우리 큰스님 법문을 얘기할 때 내가 조금 더 보태서 얘기를 하도록 하고 하여튼 그런 것이 있어서 그게 윤회를 하는 것이다 하는 것으로 얘기하겠어요. 그렇게 하는데 그런 어떤 기억의 가지고 있는 것에 그에 의해서 우리는 현상을 왜곡되게 인식한다.
우리가 오온이 개공하다 하니까 싹 없는 걸로 인식을 하는데 그런 게 아니고 거기 집착심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실상을 보는 게 아니고 오온의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오은에 집착해서 왜곡되게 보는 거예요.
그래 그걸 어디 비유를 들면 설명을 이렇게 해놨어. 어떤 사람이 밤에 캄캄한 데 가다가 발을 딱 디디니까 뭐가 물컹한 게 밟히는 거예요.그래서 아 뱀을 밟았구나. 그래 자기가 집에 들어와 갖고 방에 들어와서 잠을 자는데 밤새도록 뱀이 꿈에 나타나서 왜 나를 물었냐고 막 그 꿈에 시달렸다는 거야. 근데 그 이튼 날 아침에 가서 보니까 뭐예요? 누가 버리고 간 끈이야 끈 새끼줄 그래서 그러니까 어떻게 돼 있어요?
그동안에 내가 오해했구나. 그래 그걸 유식 같은 데서 하는데 이 전문 용어로 이런 어려운 말은 내가 되도록이면 잘 안 사용하려고 하는데 ‘변계소집성‘이다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다 이 소리입니다.
우리가 새끼줄을 밟고 뱀이라고 인식하면 아주 잘못되고 왜곡되게 인식해서 한참을 잘못되게 인식한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게 많다.
그런 겁니다. 그래 이건 중간부분 하는 얘기는 이 정도로 끝내고 원문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먼지로 만들었다면, 먼지가 많다고 하겠느냐 하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여기 작은 밀알 하나를 가루로 만들면 입자의 숫자를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 삼천대천 세계를 잘게 부수어 부숴 가루로 만들었다면, 숫자가 얼마나 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숫자를 무지수라고 합니다.
이거는 하나의 비유이며 상징입니다. 그렇게 많은 숫자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일합상’ 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만을 부처님이 말씀해 오셨는데 그것은 다 허상이다. 일합상이라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우주와 같은 거예요.
우리는 큰 우주에 비하면 하나의 먼지 같은 존재예요. 역시 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개체인 아상만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체를 종합한 일합상도 상이 아닌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일합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상이 없는 것처럼, 이걸 일러서 금강경에서는 대체적으로 얘기하기를, 금강경에는 ‘공’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공’이라는 글자를 안 사용하는 경전인데,
대승 경전의 뜻이, 내가 처음 금강경 시작 할 때 얘기했는데 뭐냐하면, 처음에 부처님이 무아를 얘기하셨어요 무아를, 무아를 얘기하셨는데 그 뒤에 금강경에 와서는 무아상을 얘기 하시는 거예요. 지금도 많은 학자들 가운데서 여기에 와서 막히고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요. 이게 뭐냐하면 무아인데 왜? 선정에서는 견성을 얘기하느냐? 성품을 봤다고 얘기하느냐 우리가 부처님이 무아라고 하는 것은 반야심경을 보면 딱 명확하게 드러나요.
반야심경에 보면 ‘오온이 개공하다’ 이러잖아요. 우리는 무얼 ‘아’ 라고 하느냐. 오온을 가지고 ‘아’라고 한다. 오온은 무엇입니까? 자동차하고 비유하자면 바퀴가 있고, 껍질이 있고 엔진이 있고, 이것을 조립해서 하나의 자동차를 형성했잖아요. 하나의 조립한 부품을 해체해 놓으면 부품은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하지만 자동차는 사라지는 것, 그걸 무아라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오온은 색. 수 .상. 행. 식. 일각에서는 전 5식 이라고 하는데, ‘식’을 가지고 ‘나’로 삼는다. 식이 멸해서 없어지면 진아(眞我) 진짜 ‘나’가 된다는 거예요. 무아를 얘기하는 너희들은 오온을 ‘나’로 삼지않느냐. 그러니 본래 오온은 없는 것이다. 그걸 넘어서서 진아를 봐라.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이, ‘식’이라고 하는 것을 금강경에서는 뭐라고 얘기했어요.
모양 상(象)이라고 표현했다. 그 상을 가지고 ‘나’라고 삼았다 말입니다. 그 상을 벗겨 내면 진아가 참 ‘나’가 드러나는 거예요.
우리가 상을 벗겨 내고, 여러가지 껍질로 되어있는 70가지 80가지 식이 덮혀져 있는 것을 벗겨 내면, 거기에 ‘여래장’ 부처님이고 불성이 그 안에 들어있다 그말입니다.
불성이 있고 불광이 빛나고 있고,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면서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
불광을 빛 내려면 거기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야 불광, 반야가 빛나는 것이다.
우리가 무상하다 그럴때, 개체로 나눠져있는 것은 누구나 다 무상하다 인정을 할 수가 있지만
‘일합이상분’ 제 30분을 읽고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제 30分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수보리야 약선남자선여인) 以三千大千世界(이삼천대천세계) 碎爲微塵 於意云何(쇄위미진 어의운하). 是微塵衆 寧爲多不(시미진중 영위다부). 須菩提言 甚多 世尊(수보리언 심다 세존). 何以故 若是微塵衆實有者(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佛 卽不說是微塵衆(불 즉불설시미진중). 所以者何 佛說微塵衆(소이자하 불설미진중)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즉비미진중).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세존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 卽非世界 是名世界(즉비세계 시명세계). 何以故 若世界(하이고 약세계) 實有者 卽是一合相 (실유자 즉시일합상)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여래설 일합상 즉비일합상)是名一合相(시명 일합상). 須菩提 一合相者 (수보리 일합상자) 卽是不可說(즉시불가설). 但凡夫之人 貪著其事(단범부지인 탐착기사).
오늘은 조금 처음부터 이런 내용을 폐이지 수를 잘못 해가지고 헷갈려가지고 혼선을 좀 빚었는데 미안하게 생각하고요.이것으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 찬탄곡 :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윤소희 편곡), 잊혀진 계절(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수능 백일기도 발원문 낭송 : 혜담 스님 , 대중과 함께
발원문 낭독 : 송파 27구 명등 혜진운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불광법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광덕문도 입장문을 발표하고 계신 혜담스님
불광법회로 첫걸음, 새법우 환영식. 오늘의 불법인연으로 나날이 좋은날 되소서._()_
언제나 법회 마무리까지, 방송실, 새법우 안내팀, 법당 안내팀 등 봉사하시는 분들이 계서서 잘 마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법회 후, 불광 법등 형제들은 둘러앉아 서로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며 소찬으로 점심공양하는 정겨운 불광법회 현장입니다.
염송팀의 집전으로 하루도 빠짐 없이 금강경을 염송하여 불광 형제 여러분들의 염원인 '불광 정상화는 이루어지이다. '
법회 전 날 청정봉사팀의 법당 청소 및 의자 배치는 타의 추종 불허.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아니한 곳이 없으니 감사드립니다.
사측에 교육원에서 기본 교육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으나, 사 측이 불허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불교기본교육 강의 일정 및 교재. 교육원 사용 불허로 오후 1시 30분 부터 어쩔 수 없이 보강당에서 개강식이 있었습니다.
한 분 한 분 보광당 입구에서 출석 체크하고 계신 교육생들의 열정이 가득한 모습이 너무 멋집니다.
입문교육 개강식 현장의 열기는 뜨겁습니다. '보살이 깨달음을 향하여 가는 불자를 일컫는 다'고 말씀드렸더니, 교육 회향 때 법명도 받는다는 말씀에 뛸듯이 기뻐하시며 빨리 법명을 받고 보살이 되고 싶다던 분도 지금 저 교육과정을 듣고 계신답니다.
지난 주에도 불광법회 형제들께서는 조계사, 봉은사, 동명사에서 1인 시위 정진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마음님 혼자서 법문 녹취하고 일지 작성하시느라 힘이 많이 드셨겠습니다 최고의 원력으로 맡은 일 해내시는 마음님께 존경을 바칩니다_()()()_
사진 찍으신 원각화보살님 감사합니다_()()()_
시월의 마무리 법회가 참 아름답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숙연의일대사인연 덕분입니다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