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교대역 7번 출구로 나와서 아크로비스타(옛날 삼풍백화점자리)로 가는 길은 마치
골고타 언덕으로 오르는 길처럼 구릉으로 이어져 있다.
언덕이 끝나는 그 언저리에서 큰 대로를 건너서 골목안으로 3-4분쯤 들어가면
대로변을 벗어난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있는 반포4동 성당을 볼 수가 있다.
(서울 서초구 고무래로10길38)
1998년 9월 서초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고 2003년10월에 첫미사를 드리게된다.
사실, 주님수난 성지 주일에 <반포4동성당>으로 발걸음을 하게된 이유중에 하나는
반포4성당의 14처 십자가의 길 조각상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조각한 홍혜숙 막달레나는 2003년 첫미사를 드리고 , 그 이듬해인 2004년에
돌아올 수 없는 먼길로 떠나고 만다.
그녀는 나의 동네 친구이자 대부인 고대 통계학과 홍완후의 막내 여동생이다.
예쁘고 재능이 있는 조각가였다. 그 서방도 루게릭이란 병으로
힘들게 견디다가 그 부인을 뒤따라 떠나버렸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리다.
64학번 동기회 창립에 큰힘을 보여준 같은 통계학과 조휘갑회장도 루게릭병으로
갔다. 완후와 절친으로 바둑도 잘 두고 친화력이 좋은 친구였다.
미사후에 그 14처 조각상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으면서 나는 점점 더 슬프고도 처연한
심정이 되었다. 조각가 홍혜숙 막달레나의 모습으로 그 위에 겹쳐져서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주일 서울주보의 화보 주인공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
이다. 위다(Ouida)의 동화 "프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Nello)는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성화를 보며 성당의 차거운 바닥에서 그 소년도 동반자 파트라슈(개)와 함께
마지막 숨을 거둔다.
긴장감과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聖畵이다.
푸른 옷을 입은 마리아의 모습은 그가 사랑한 첫아내 "이사벨라"가 모델이라고도 한다.
오늘은 성당동네 한바퀴의 인원이 한명 늘어났다.
교대역 7번 출구에서 성당을 찾는 아주머니 한분이 우리에게 목적지를 묻게 되었고
방향이 같아서 자연스레 함께 하게 된것이다.
아들집에 들렸다가 그녀의 집인 <제천>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제천에 도착하여 미사를
드리려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이곳 가까운 성당에서 미사 참여를 하고자 했다고 한다.
<제천>은 나에겐 고향처럼 포근한 곳이다. 대학동기 국문과 준삼이, 경제과 재완이를
비롯하여 제천의 서울 유학생들은 아마도 거의 모두와 같이 서울과 제천을 오가며
싸돌아다녔던 추억을 주는 곳이다. 준삼이네 집 화장실에는 내 이름을 붙인 칫솔도
있을 것이다. 제천땅을 마지막 밟은 것은 2년 전쯤 되는 것 같다
고대 서종택교수와 오탁번의 제천 문학관에 하루를 묵으면서 고기를 굽고 쇠주를
마신이후 발길이 뜸해졌다. 그곳 친구들이 더 볼 수 없는 곳으로 갔거나, 서울로
이주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반가움으로 기꺼이 그 아주머니에게 점심 대접을 융숭히 해 드렸다.
서울고등법원 담장에 드문드문 핀 개나리가 몇송이 되지는 않지만 병아리처럼
샛노랗다.
고개를 돌려보니 옛 삼풍백화점자리에는 아크로비스타가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 6월29일. 내가 경영하던 회사의 그 백화점 매장도
폭삭 내려앉았고, 그때 우리회사 소속 여직원도 같이 묻혀 잠들었다.
전직원이 일주일을 헤맨 끝에 퉁퉁 부어 얼굴을 식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니폼에
회사 로고가 있는 뱃지가 달려있어서 시신을 찾았고 그 원혼을 달래줄 수 있었다.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있는 씁쓸한 기억이다.
오늘은 한 일에 비하여 몹시 피곤한 느낌이다.
집으로와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나니 조금은 개운하다.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쓰고 있는지가 꽤 되었다. 아내 방으로 들어가서 책꽃이를 보니
한권의 시집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聖김대건> 배달순 장편서사시/文學稅界社
1987년8월20일 내가 아내에 선물한 시집이다. 내가 어떻게 이 제목의 시집을 선물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내가 명색이 詩人이기에 발간되는 시집은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반포4동 성당의 주보성인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아닌가!
김해 김씨
安敬公派의 후손
증조부는 충청도 해미 감옥에서
순교한 김 진후,
아버지 김 제준,
어머니는 고씨,
은밀한 봄의 속삭임을
김대건의 귀는 듣고 있었다.
고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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