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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죽음이 주는 역설적인 진리다
오늘은 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선지자의 죽음이 주는 역설적인 진리이다. “ 역설적이라는 말은? 상반되는 두 개의 명제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둘 다 옳은 경우에 역설이라는 말을 씁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 아느냐 나는 분쟁을 주려고 왔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고 믿어요. 왜? 예수님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노래 불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로다.
이 땅에는 평화를 주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평화가 저절로 오는 평화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됩니다. 많은 희생과 고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평을 주러 온 줄로만 생각하지 마라 내가 분쟁케 하려고 온 거다.
또 내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려고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고 다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역설로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대표적으로 사용했던 역설이 그거예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데도 안 계신다.
이 두 개는 정반대되는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옳은 거예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것을 체험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신자의 눈에는 하나님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고 어디에도 계시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바르게 알아가는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우리가 다 잘 아는 이야기인데 당시에 헤롯 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해가지고 자기 아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헤롯이라는 놈도 나쁜 놈이지만 그 여자도 얼마나 나쁜 여자입니까?
동생의 아내 노릇하다가 왕인 남편의 형이 자기를 부른다고 해서 자기 남편을 버리고 그리고 가서 붙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 여자입니까?
그런데 세례요한이 그 꼴을 보고 가만히 있었으면 되는데 그러니까는 책망을 해도요 가난한 사람 못난 사람 병든 사람 약한 사람을 상대로 해가지고 막 책망을 하면 그 사람들은 쩔쩔매고 아이고 잘못했다고 하지만 특별히 권세가진 자들 놓은 자들에게 대해서 책망을 하면 100% 어김없이 대적하고 이를 갈고 죽이려고 복수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목사님들도 교회에서 누구 책망을 못해요 책망을 하면 누구를 책망하느냐 제일 못난 사람 가난한 사람 노인네들 …이것도 그냥 사납게 책망하면 안 되고 아주 부드럽게 완곡하게 해가지고 책망을 해야지 좀 들을까 말까 합니다. 그렇게 남을 책망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근데 사람이 일반적으로 책망을 받으면 네 가지로 반응이 일어납니다. 우리 성경을 보니까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첫째는 악인들 이들은 이를 갈고 대들고 복수하겠다고 합니다. 스테반이 책망하니까 돌을 들어서 스테반을 쳐죽였어요. 예수님이 책망하시니까 예수님한테 이를 갈고 있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자연인이에요. 변화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 중한 죄를 지금 짊어지고 사는데 자기의 약점인 이 죄를 들춰내면 세상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복수하려고 대들어요. 이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 대다수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지자들이 다 이렇게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류는 어떤 사람들이냐 조금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책망을 받으면 슬금슬금 꽁무니 빼는 인간들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끌고 와가지고 예수님 앞에 놓고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번 이 여자를 심판해 보시오.” 하고 예수님께 다그칩니다. 그때 예수님 뭐라고 하셨어요?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이 말씀이 얼마나 권위가 있었는지 이 말씀에 이 무리들이 다 양심에 찔림을 받고 그래서 돌을 하나씩 들고 오긴 했지만, 예수님을 쳐죽이려고 들고 왔던 돌은 그 여자에게 던지지도 못하고 그냥 양심에 찔리니까 괴로워가지고 돌멩이는 또 거기다 그 자리에다 떨어뜨려놓고 슬금슬금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은 비겁합니다. 잘못을 알면 회개하면 되는데 잘못을 알아도 회개할 줄은 모르는 것입니다.
셋째 부류는 어떤 사람들이냐 자기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결단을 못 내려요. 그렇다고 악인들처럼 잘못을 지적해 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에게 피해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이 셋째 무리의 사람들은 당신 말씀 다 옳습니다. 내가 고치기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 고치고요 조금 이따가 고치겠습니다. 이게 차일필 미루는 인간들, 이런 사람들 그게 누구냐?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왕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 아닙니까? 이 사람이 그런 짓을 했습니다.
또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이 벨릭스라고 하는 사람도 가끔 불러서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긴 듣는데 양심에 찔리니까 회개는 하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바울을 놓아주는 것도 아니고 바울을 그냥 감옥에 가둬놓고 차일 피일 미루다가 결국 자기 임기 끝나니까 다른 데로 가버리고 그 뒤에 베스도라고 하는 총독이 와서 그 사람한테 다 넘겨줘버리고 자기는 피해 도망갔습니다. 헤로당의 경우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은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입니다. 이런 악한 짓을 저질렀어요. 벨릭스의 경우는 죽지는 바울을 죽이지까지는 안 했지만 결국은 처리하지 못하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하는 것입니다. 이거 다 비겁한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넷째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은 누구냐? 양심에 찔림을 받으면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 흘려 회개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서 저들에게 힘껏 외쳤습니다.
이 성령이 강림하셨는데 이것이 무엇이냐? 이건 술 취한 것이 아니다. 이건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분 그분이 너희는 누군지도 모르고 죽였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였다. 이분을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이분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이다.이것이 요엘서 2장에 예언된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외치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래가지고 자기들이 그렇게 바라던 메시아를 자기들 손으로 죽였다고 하는 것에 양심에 찔림을 받고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통곡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다 회개해라.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랬더니 그날에 3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성령 받고 예루살렘의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내 양심에 찔림을 주는 말씀이 있게 되면 그 말씀을 듣고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즉시 즉시로 회개해서 새롭게 변화받는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죽음은 세 가지의 중대한 역설적인 진리가 들어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진리는 뭐냐? 세례 요한은 어떻게 죽었느냐? 음료의 춤값에 죽었습니다. 이 헤로디아라고 하는 악한 여자 이 여자의 딸이 춤을 추어가지고 헤롯을 기쁘게 하니까 헤롯이 그 아이에게 너 소원이 뭐냐 뭐든지 다 주겠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달라면 주겠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이렇게 했겠습니까?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 여자 아이가 자기가 필요한 거 있으면 뭐 달라고 했으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쪼르르 지 엄마한테 달려가서 엄마 내가 뭘 달라고 할까요? 그러고 물었더니 이 어미라는 여자가 뭐를 달라고 하라고 시킵니까? 뭐 돈이나 한 번 다리 달라고 하든지 비싼 물건 뭘 사 달라고 하든지 그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데 이 여자 악한 여자는 역시 택하는 것도 악합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 이렇게 가서 요구해라. 하긴 그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요한의 목을 갖다가 어디에다 써 먹겠습니까? 그런데 악한 여자는 항상 악한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결국 이 음란한 여자의 총값에 팔려 죽고 말았다 하는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음란한 여자인지 아닌지 그건 잘 몰라요. 그렇지만 그 어미가 음란한 여자죠, 어미가 결국 시킨 것이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어린 아이의 춤 값에 요한은 너무나 싸구려로 싼 값에 이렇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헤롯이 이 아이에게 제안한 것은,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달라고 하면 내가 주겠다고 그랬어요. 진짜로 절반 달라고 했으면 줬을까요? 아마 그거는 조금 어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술도 한잔 들어갔겠다, 기분도 좋겠다, 하니까 사내 녀석이 돼가지고 뻥뻥 이렇게 허풍을 떨고 잘난 척하고 큰 체하고, 그러다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했던 건데, 다행히도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목을 달라고 했으니까, 이 헤롯이 꼼짝 못하고 결국 요한을 못 배워서 죽이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 값은 나라의 절반보다도 더 큰 값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사실을 마음에 새롭게 기억해야지 합니다.
의인은 어떻게 죽습니까? 가장 싼 값에 죽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비싼 값에 죽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선지자들, 기독교 2천년 역사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선지자들이 어떻게 보면 참 싼 값에 죽은 것 같아요 그러나 아닙니다. 그들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비싼 값에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세상 악인들, 이 세상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은 그렇게 귀한 거 아니에요.
오직 누구의 생명이 그렇게 귀한 거냐 의인들의 생명입니다.하나님의 사람들의 생명은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 우리는 우리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귀한 생명을 주님께 바쳐서 천국을 건설해 나가는 거룩한 역사를 이 땅에 이루어야지 하겠습니다. 선지자의 죽음이 주는 역설적인
진리 둘째는 무엇이냐? 세례 요한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죽으면서 만약에 내가 이렇게 죽게 되면 내가 하던 일은 누가 계승해서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은 아마 죽지 못할지도 몰라요.
조금 더 살아야 되겠다 내가 누구에겐가 바톤을 인계해 줄 사람이 나타나기까지는 나는 죽으면 안 되겠다 그럴지 몰라요. 모세가 죽게 될 때에 모세는 위대한 후계자 여호수아라고 하는 사람을 두어서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바톤을 넘겨주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후계자를 자기 눈으로 보았고 자기 손으로 안수했고 이래가지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신이 충만해지고 이렇게 해서 가난한 정보를 그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리아의 경우도 엘리사라고 하는 후계자를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눈으로 세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경우는 자기 사역을 넘겨줘야 될 후계자가 있어야 되겠는데 자기 눈에 그게 안 보였잖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고 더 살아보겠다고, 했다면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광야의 소리는 죽었습니다.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광야의 소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어떡해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광야에 나온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보려고 나왔을지 몰라요. 선지자의 소리를 들으려고 왔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그들 앞에 보여주신 분은 세례 요한이 아니고 메시아, 세례요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그들 앞에 나타나셨고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고 신기합니다.
우리가 험한 세상 사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죽음이 닥치게 되면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내가 하던 일은 누가 계승할 것인가? 그래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죽겠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더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유대나라 왕들의 역사에서 보면 히스기야라고 하는 왕을 대표적으로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큰 공을 세우고 온 백성들이 울어보고 이방 나라의 왕들이 다 두렵게 하는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을 병이 들려가지고 죽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습니다.
왕에게 가서 전해라. 그래서 너는 죽는다 하고 전합니다. 집안을 정리해라 하고 말씀합니다. 그랬더니 히스기야가 벽을 향해 돌아누워서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합니다.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진실함으로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일을 했고 나라를 구하고 큰 일을 한 것을 하나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 놀라운 일을 다 이루어 주셨는데 이제 나를 데려가시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면서 조금 더 살게 해달라고 막 이렇게 몸부림치면서 기도를 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다시 돌아가서 왕궁에 가라. 그리고 가서 왕에게 일러라.
내가 15년 동안 너희의 목숨을 연장해 주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15년 목숨의 연장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게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사람들은 이거를 다 큰 복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 성경을 보면 실상 이것이 복이 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들었다 하는 소문이 주변에 있는 나라에 쫙 퍼졌습니다. 아마 주변 나라의 왕들이 굉장히 좋아했을 거예요.
히스기야가 죽고 죽게 생겼다 하니까 사실은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며칠 있다 들어보니까 다시 살아났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또 배가 아팠겠죠 그런데 멀리 바벨론 나라에서 왕이 사신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죽을 병에서 살아난 것을 경아들입니다. 하고 사신들이 와가지고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리면서 이렇게 축하해 주니까 히스기야 왕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가지고요. 그 사람들을 아주 융숭하게 대접을 잘해주고 또 히스기야 생각에 그럴 거예요.
바벨론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 먼 데 있는 나라하고는 원수지간으로 싸울 게 아니고 화친하고 지나는 게 좋겠다. 이래가지고 더 대접을 잘해줬을지 몰라요. 그래가지고 그 나라의 모든 보물 창고를 보여주고 왕의 보물이 있는 네탄고를 보여주고 다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게 많다, 우리가 이렇게 잘났다, 하면서 자랑을 했는데 사실 이 축하 사신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사실이 아닙니다.
이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이게 정말로 축하하려고 오는 게 아니죠. 다 이렇게 와가지고 정탐을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이 나라를 정탐하려고 왔는데, 이 사신들이 보니까 너무너무 진귀한 보물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 나라 왕에게 가서 고합니다. 유대나라에 가봤더니 요 조그만 나라가 너무너무 귀한 보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 쳐들어가서 이거 다 뺏어와야 되겠습니다. 결국 유대나라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게 결정적인 잘못이었습니다. 둘째 잘못은 뭐냐 히스기야의 아들 므나세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히스기아가 죽을 때에 이 아들이 12살이었고 12살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2살이라고 하는 건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았는데 그때 3년 지나가지고 낳은 아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죽을 병에서 살아나가지고 3년이 지났는데 또 귀한 아들을 하나 얻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그래가지고 히스기아는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가지고 이 아들을 자기 뒤를 이어서 왕이 되게 하고, 정말 금이야, 옥기야 하고 떠받들었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 므낫세라고 하는 왕이 유대나라의 역대 모든 왕들 가운데서 가장 악한 왕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므낫세의 죄로 말미암아 히스기야는 하나님 잘 섬긴 사람이었는데 므나세는 12살의 왕이 돼가지고 어린 아이가 훌륭한 대신들을 주변에 이렇게 모시고 있지 않고, 전부 자기한테 아첨 잘하는 이런 녀석들이나 주변에다가 포진을 시켜놓으니까, 이놈들이 결국은 왕을 우상숭배하게 만들고 악을 행하게 만들고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김정은이라는 놈이 새파란 나이에 왕으로 올랐어요 북한에서 그러니까 노인들은 다 처내고 노인이라고 그래봐야 다 악한 놈들이지 그 노인들 중에서 제대로 된 놈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이가 들면 조금 신중하죠 함부로 행동 못하게 조금 브레이크를 걸었을 텐데 ,김정은이에게 바른 말하는 사람들은 다 쳐죽여버리고, 결국 젊은 놈들, 자기한테 아첨 잘하는 놈들 말만 듣고, 이런 것들 따라가다가 북한은 날이 갈수록 저렇게 망쪼가 들어가지고, 백성들을 다 굶겨 죽이고 있고 저런 끝없는 여러 가지 재앙이 쏟아지고 이런 일들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 행하다가는 크게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아는 이 두 가지의 큰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나님이 죽어라 말씀하시면 너희의 수명이 다 됐다 너 그만큼 일했으면 됐다 너 나라를 위해서 그만큼 큰 일 했으니 하늘나라에 와서 큰 상급을 받고 천국에 와서 안식을 해라. 이렇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뒷일은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갔으면 그 뒷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다 처리하실 텐데 자기가 자기 뒷일까지 걱정을 하다 보니까 오히려 15년 생명의 연장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것이 이 두 가지의 큰 잘못으로 인해가지고 결국 나라를 무너뜨리게 되는 엄청난 불행을 가지고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어라 하실 때에는 아멘 하고 가면 됩니다. 이것이 양이 아니겠습니까? 이 핑계 핑계대고 또 살겠다고 그러지 말고 가면 되는 거예요.
셋째는 무엇이냐? 세례 요한은 억울하게 죽었다 그때 죽으면 안 되고 좀 더 오래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죽어야지만 그때 죽어야지만 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의 역사를 보면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해 주었습니까? 이렇게 사랑했는데 그 요나단도 더 오래오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니었어요. 요나단이 일찍 죽음으로 다윗이 왕위에 올라서 왕으로 다스리기가 그만큼 좋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우리의 생사가 다 결정이 됩니다. 요나단을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심으로 다윗의 왕권이 튼튼해지게 만드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심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사역이 드디어 새롭게 시작하고 달려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만약에 요한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이렇게 요한은 요한대로 일하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일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두 파가 갈라져가지고 지금까지도 계속될지 몰라요. 그런데 요한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그러면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수님께로 가라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으로 통합이 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이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선지자를 찾고 계십니다. 이 땅의 선지자들을 바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선지자 7천 명을 유대 땅에 남겨두셨던 것처럼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훌륭한 선지자들이 있겠습니까? 특별히 대한민국 땅에 하나님이 의인들을 많이 세워놓으셨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나날이 융성해 갑니다.
복음으로 통일되고 세계 만방의 빛을 바라는 그 시각이 지금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을 우리가 충만하게 받고 이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11월둘째주 [바람아 잔잔해져라]
마태복음 8장23절~27절
23절: 배에 오르심에 제자들이 따랐더니, 24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절: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 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절: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한밤중에 건너가는데 예수님은 종일 사역을 하시고 피곤하셔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데 그때 갑자기 큰 풍랑 일어나고 바람이 거칠게 불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지 않고 어떻게든지 이 바다를 잘 건너가려고 애썼다
이들은 이 바다에서 평생을 먹고 살아온 살아온 바다에 능숙한 어부들이다
예수님은 이 제자들이 이 풍랑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시려고 하셨다
어부들이던 이들은 풍랑에 죽을 까봐 결국 예수를 깨운다
우리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결국 주께서 바람아 잔잔해 져라 바다야 잔잔해져라 명하시고 곧 잔잔테 되는 것을 배에 탔던 제자들이 보게되었다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야 한다
평상시에 늘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주님께 기도를 많이 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체적으로 받으며 사는 사람은 큰 환난의 날에 넉넉하게 도움을 받고 주님과 가까이 할수 있다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기도하기를 힘쓰고 주님께서 잔잔하게 해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풍랑 이것도 주님이 잔잔케 하신다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어질 듯한 위험 속에서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더욱 주님 의지하고 기도에 힘써서 기도에 승리를 맛보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자!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주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신다 주님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해 주신다
주님이 나를 지켜 인도해 주신다 내 걸음걸음 주님이 인도하시고 주장하시고 복을 내려주신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하나님으로 더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송합니다. 주님 찬송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늘 감사하고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왕보다 앞서서 달려가자
열왕기상 18장 41절에서 46절
41 엘리아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놓고
43 그의 사관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바람과 구름이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더니 라고 나온다
왕 아합보다 앞에서서 달려갔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아합은 마차를 타고 가고 엘리야는 두발로 뛰어가는데 앞서서 간다
선지자는 왕보다 앞서서 달려가더리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앞서서 달려가야 한다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은지 3년 6개월이 흘렀다
황페해진 이 땅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단비를 내려주셨다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잘 살게 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 에게 임해서 엘리야가 왕보다도 앞서서 달려갔다
이보다 더 먼저 일어난 사건은 갈멜산 제단에서 일어난 일이다
바알선지자들과 대결을 하였다
바알 선지자들은 450명 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 모인곳에 엘리야는 850대 1로 전쟁을 한다
하나님꼐서 위로부터 불이내려서 이 제물을 다 태워버리셨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모든 사람앞에서 증명하게 된 계기였다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의 불을 받아라 먼저 성경의 불이 우리 제단에 임해야 한다
성령께서 불을 내려주셔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려라
불이 내려온 다음에 비가 내리기 전에 엘리야가 명령한다 바알의 선지자를 다 잡아라!
우리안에서 두 개의 법이 있다
사도바울도 이것을 깨달았다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대적하는 죄의 법이라는 의미에서 다른말로 죄의 법이고 마귀의 법이다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하낟
불이 한번 붙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자동적으로 불이 새역사를 이룬다
성령의 불이 없이 일을 하면 힘들다
우리는 날마다 주께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불을 받아 이 악하고 타락한 세상속을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해 나가야 한다
48. 라마 나욧 같은 교회
사무엘상 19:19-24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구약에세 제일 유명한 선지자를 보면 예레미야를 꼽을 수 있다
구약에서 유명한 선지자 하면 우리가 먼저는 모세를 알수 있고 사무엘, 예레미야를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구약성경의 핵심인물, 하나님의 사람들이였다
사사기와 사무엘상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다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은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시대에도 새로운 사무엘과 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일으키신다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우리도 다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우리 자녀들 가운데 위대한 인물이 나옵니다.바라보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교회 신자들 볼 것도 없어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믿거나 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 되겠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거죠. 우리 열심히 기도합시다.
첫째, 우리 자녀들이 훌륭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준다.
둘째는 내가 너희에게 의로운 도로 가르치기를 쉬지 아니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해서 쫓는다
다윗은 그러는 사울을 피해 사무엘을 찾아 라마 라는 곳에 이쓴ㄴ 나욧이라고 하는 작은 동네에 간다
사무엘은 다윗이 장차 왕이 될것이라고 예언한다
사울은 하나님에 대해서 귀로 듣기만 하고 그냥 그렇게만 배웠다
성령이 사울에게 도 임하셔서 사울이 자기입으로 다윗이 왕이 될것이다고 선포하게 된다
우리가 머릿속으로만 하나님을 배우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모세떼에는 하나님이 애굽땅에 열가지 큰 재앙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지막 재앙은 양의 피를 발라 놓은 이스라엘 집에는 재앙이 안 미치고 애굽땅에 전부 재앙이 임해서 다 죽어싿 하나니밍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홍해가 가로 놓였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을 건너가게 하셧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을 떠나라 해놓고 다시 추격해오는 애굽군대들을 홍해 물속에서 다 진멸해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는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을 건너가게 하셧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을 떠나라 해놓고 다시 추격해오는 애굽군대들을 홍해 물속에서 다 진멸해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는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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