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 선지식 19차. 3, 북간도에 윤동주의 참회록
북간도에 윤동주의 참회록
윤동주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참회록을 쓴 이유를 말하고
일본 식민지 시대를 기억하며
조선 망국의 한을 시로서
노래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일본 감옥에서 시를 발표했다
북간도라는 지역에 사는 가족
윤동주의 가문은 빈민의 가문
그러한 가문은 아니라는 것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면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윤동주는 명동 학교 평양 숭실중 학
한양 연희전문을 졸업 근대학문을
할 수 있었기에 가난한 삶에
지친 삶이 아니었다.
나라를 빼앗긴 삶의 윤동주는
그 시대를 느껴 보지는 않는 삶
숭실중학교에서 미국 선교사의 교육
미국 선교사 교육정책에 순응했다.
윤동주는 성실 중학 시절에 공상이라는 시
연희전문학교 시절 소년지에 시를 발표
1941년에 19편을 골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본의 감시 때문에 간행하지 못했다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하는 준비
일본에 유학하기 위하여 창씨개명
오늘날에 말하고 있는 일은 윤동주는
제 뜻과 관련이 없는 창씨개명
그러한 기록을 보면서 울고 싶구나!
윤동주의 사후에 소생은 바로
정지용 시인이 있었기에 회복
윤동주의 일본식 성명 강요가 무용지물
그러나 윤동주의 일본 이름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인데
일본 식민지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름을 일본 이름으로 개명했는지 아는가?
아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찬양했던 시인들에게도
1990년에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증
독립장을 수여했다는 일
그러면 일본에 저항하다가 치안유지법
그 법으로 죽은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아직도 아무런 혜택도 없다면
그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말하자
종로문화재단에서 윤동주 문학과의 건립되고
그 문학관에서는 어린이들도 관람하는데
어린이들에게도 윤동주 시인의 시를
어린이들이 어떠한 역사를 말하라
윤동주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진실로 참회록을 말함인가?
참회록을 발표함에 일본 이름이
다시 윤동주라는 이름으로
나는 북간도 지역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고택
북간도에 가서 윤동주의 명동 학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일본 식민지 시대에 죽은
북간도 민중들이 무덤을 방문했다.
북간도에서 죽은 독립운동가들
그들의 무덤은 너무도 쓸쓸하다.
그들을 위하여 염불했다
부디 용서하시기를 간절히
목탁을 울리면서 참회록을
윤동주의 참회록이 아니었다.
북간도의 땅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조선 독립을
외치면서 북간도 땅을 말을 몰고 달리었는데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일본이 조선에서 철수해야 함에도 불구기는 하고도
일본 대신에 조선이 마군이 진주하였다.
북간도에도 해방이라는 이름이 있었을 것인데
북간도는 바로 일본에 의하여 청나라로 1909년
일본과 청나라 간 북간도 협약으로
아 어이하여 우리는 북간도 땅을
일본이 조선의 국토를 장악하도록
임진왜란 시기에 나라를 지킨 승군들을 멸시한
그 멸시한 유생들이 있었기에 나라를 빼앗겼다.
유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라
어서 말하라 유생들과 불교를 억압하고
불교를 이 땅에서 몰아낸다고 하여
유생들이 영원히 권력을 유지할 줄 알았지!
보라 윤동주의 창씨개명을 인정하고 있어
아무리 참회의 시를 쓴다고 해도
북간도에 봄은 오지 않는다.
2023년 1월 5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