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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사람들
박 태 원
5 - 2 = 3
순구가 잠을 깨었을 때 진수는 방에 없었다. 변소에라도 간 것이라면 응당 벽에 걸려 있어야 할 진수의 양복 저고리와 모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딜 또 횬자 나갔누. 순구는 자기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간 진수의 태도에 불만과 반감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순구와, 진수와, 같이 한방에서 지내 오면서도 근래는 서로 말을 주고받고 하는 일조차 드물었다. 서로 등을 치고 쾌활하게 웃고 하는 그러한 것은, 이제 와서는 오직 지난날의 회상 속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젊은 그들의 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온갖 좋은 것들을, 궁핍한 생활이 말끔 빼앗아간 듯싶었다. 순구는 저 모르게 가만한 한숨조차 토한다…… 생각난 듯이 베개 위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대체 지금 몇 점이나 되었누. 그러나 물론 시계와 같은 사치품은 그들 방에 없었다. 그래도 동편으로 난 유리창으로 이미 햇발이 찾아들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열한점은 넘은 게다. 시간의 관념과 함께 뱃속이 몹시도 쓰린 것을 느꼈을 때, 그는 마침 하품을 하느라고 벌렸던 입을 으으음 하는 가만한 웅얼거림과 함께 다물어 버렸다. 굶나, 오늘 또 굶나. 순구는 베개를 고쳐 베고 또 한번 선하품을 하고, 굶는 것은 할 수 없더라도 담배, 담배나 있었으면. 담배는 있었다. 순구는 부리나케 자리 속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어제 잘 자리에서 세어 보니, 그렇다. 다섯 개. 분명히 다섯 개. 그러나 그가 머리맡에서 담뱃갑을 찾아 들었을 때, 그 속에는 담배가 두 개밖에 들어 있지 않았었다. 웬일일까. 분명히 다섯 개여야만 할 텐데. 그러나 그 즉시 진수 생각을 하고, 순구는 입맛을 다시고 싶은 것을 참으며, 드윽 성냥을 그었다. 보로 다시 자리에 드러누워서 한 모금, 텅 빈 창자 속까지 스며든 듯싶은 담배 연기가 그에게 현기증을 주었다. 눈을 감고, 코로 입으로 가만히 연기를 토하고 났을 때, 순구의 망막 위에 갑자기 한 개의 산식이 떠올랐다. 5-2=3. 틀림없이 진수는 세 개다. 흥 하고 코웃음치고, 먼저 잠이 깬 놈은 담배 한 대 더 먹을 권리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 말을 자기 자신 확실히 듣고 싶기나 한 듯이 그는 일부러 입 밖에까지 내어 중얼거려 보았다. 자기가 자고 있는 사이에, 그 자고 있는 것을 기화로 삼아, 진수가 부당한 이득을 꾀하였나 하면, 순구에게는 그의 소행이 가증하게까지 생각되었다. 무얼 담배 한 개쯤을. 돌이켜 생각하려고도 하였으나, 문제는 결코 한 개의 담배에 있지 않다. 친구간의 의리라는 것, 공동생활의 도덕이라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그는 진수의 온갖 결점이며 약점을 찾아내려 들다가, 갑자기 그러한 자기의 심정이 딱하고 부끄럽고 그리고 천박하게까지 생각되어, 순구는 자리 속에서 팔을 뻗어 바른편 넓적다리를 부욱북 피가 나게 긁었다.
감정의 자독(自瀆)
사리 속에 그대로 누운 채 손을 내밀어 신문을 펴들고 우선 눈을 주는 것은 ‘삼행광고(三行廣告)’의 ‘고입란(雇入欄).’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그것도 이제는 한 개의 습관이다.
活版. 建築. 技術. ラデ. 旋盤. ミッ, 和服. 和服. 和服.
가로 쭉, 대강 윗자만 훑어 가다가 잠깐 시선을 멈춘 곳이,
運轉手 助手募集住込有給卽乘車 甲乙臨住込多電四谷一八四三 四谷大木戶停留橫 東京運轉手會 |
(운전수, 조수 모집. 유급. 즉시 승차. 갑을증(면허증) 입주해서 다니는 사람 많음. 전화 요쓰야 1843. 요쓰야 오키토 정류장 옆 동경운전수회.)
그러나 그 즉시 ‘운전수회’에 수수료로 이 원을 지불하고, 아무 운전수에게나 부림을 받고, 동경 시중을 밤낮으로 자동차를 달려야만 하고, 단칸방에 다섯씩 여섯씩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고, 자다가도 흔들어 깨우면 눈을 비비고 일어나야만 하고, 물론 신문 한 장 볼 시간이란 있을 턱 없고, 그리고 일급이 오십 전…… 그보다도 우선 자기의 약하디약한 체질이 단 하루라도 그 일에 견디어날 턱이 없다고, 언제든 하는 생각을 또 한번 하였을 때, 순구의 눈은 그 다음을 더듬고 있었다.
婦人. 婦人. 交換. 赤玉.
그리고 그 다음에,
業務容易家庭日用品飛程賣 外勤 れゐ生活安定保證 芝區新橋一ノ甘四 日東商會 |
(외근. 업무 용이. 가정 일용품 날개 돋친 듯 팔림. 생활안정 보증. 시바쿠 신바시 1의 24. 일동상회.)
순구는 잠깐 이곳에 눈을 멈추고, 생활, 안정, 보증, 그런 것을 일부러 입 밖에 내어 중얼거려 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스스로를 비웃는 웃음이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이 전황한 시대에 그런 고얀놈의 취직처가 신문의 삼행광고를 이용하여야만 사람을 구할 것도 아니겠고, 말하자면 보증금 얼마 들여놓고 빨랫비누나 개수통 팔러 다니는 것이겠고, 또 설혹 그것이 정말 좋은 자국이더라도 그러면 지금쯤은 벌써 구직자들이 뒤를 이어 그 집 문턱을 드나든 끝일 게고, 자기에게는 우선 신바시까지 갈 전찻값도 없고, 또 이렇게 굶고서야 물론 걸어갈 기운이란 있을 턱 없고…… 그래 그것도 단념을 하고 다음은 쭈욱 연대어,
女中. 女中. 女中. 女中. 女中. 女中. 女中.
‘조추(가정부)’에 순구가 그만 진력 이 났을 때 마지막으로,
酉已達 員募集甘歲迄大 至急無勸誘 配達 適苦學 麴町元園町 一ノ十 九市電麴町丁目下車加納新聞店 |
(배달원 모집. 20세까지. 매우 급함. 권유하지 않아도 됨. 고학생에 적당. 고지마치 모토소노초 1의 19. 시내전차 고지마치 3정목 하차. 가노신문점.)
그러나 순구는 손을 내밀어 한 개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신문의 다른 페이지를 펴들고 연재소설을 대어 읽었다. 신문배달부 모집은, 운전수 조수 모집보다 더 빈번하게 광고가 났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울한 직업이었고, 첫째 순구는 올에 스물넷. 그러니까 결국 순구는 오늘 하루 구직을 단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어 보는 소설을 세 개, 모조리 읽고, 그리고 다 탄 담배를 아깝게 마지막으로 한 모금 빤 다음, 몸을 뒤쳐 그것을 재떨이에다 비벼서 껐을 때, 순구는 갑자기 자기가 실상은 직업을 얻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지. 황망하게 그것을 부인하려고도 하였으나 그러나 순구는 자기가 구직 문제와 마주 대하여 섰을 때, 일찍이 정열을 가져 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아무리 싫어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신문의 삼행광고를 더듬는 그 태도에는, 그 심정에는 분명히 불순한 분자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전혀 순구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하여서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지도 몰랐다. 나는 결코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가 아니다. 일을 얻기 위하여 내 딴은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구하여도 내게 차례 올 일이란 하나도 없지 않으냐 하고, 단순히 그러한 구실을 얻기 위하여, 그래 순구는 삼행광고를 더듬어 보는 것인 듯싶었다. 까닭에 그가 자기 앞에 던져진 취직의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 때마다 그의 입술을 새어 나오는 한숨은 결코 절망의 것이 아니라, 일종 안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자신 응모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일자리에 대하여도 교묘한 이유를 생각해 내어 그 기회에서 자기 자신을 피하여 오고 피하여 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그것은 진실한 생활에서의 도피가 아닐 수 없다 ……이틀째의 굶음과 홍분과 감격과 그리고 스스로를 매질하는 마음과·…·어느 틈엔가 눈물이 두 줄 순구의 영양불량으로 여위고 핏기 없는 뺨 위를 흘러내리려고 한다.
그들의 부동산 목록
그로서 삼십 분. 홍분과, 감격과, 그리고 스스로를 매질하는 마음과, 그런 것들이 사라진 뒤, 순구에게는 다시 배고픔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온종일 이렇게 굶어야만 하나, 하고 암만을 되풀이한다더라도 변통성 없는 생각을 또 하려니까 제풀에 진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참말이지, 같은 굶기라도 옆에 진수나 있었으면…… 진수는 대체 어딜 그렇게 쏘다니누. 그러다가 순구는 번개같이 누구 친구집이라도 찾아간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진수는 요기를 하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저만 먹으면 남이야 굶든 말든 상관이 없단 말이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경련시켜 보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 순구에게는 견딜 수 없는 노롯이었다. 순구는 기운 없이 머리를 흔들고 그리고 거의 기계적으로 퀭한 눈을 들어 방 안을 살펴본다. 때묻은 학생복. 소매깃이 다 닳은 유카타(무명 홑옷). 세수 수건이 두 개. 얼금뱅이 책상. 원고지와 펜과 잉크와 만년필. 묵은 잡지가 네 권하고 책이 한 권. 재떨이와 낡은 마도로스 파이프와 이십오 전짜리 안전 면도. 오시이레(반침) 속을 들여다본다면, 그 속에 진수의 침구. 석 달 치 모아 놓은 신문더미. 빈 담뱃갑. 성냥갑. 뚫어진 양말이 몇 컬레. 이미 열흘째 사용한 일이 없는 ‘석유곤로.’ 밑바닥에 쌀 한 알 남지 않은 부대. 냄비. 공기. 주전자. 접시. 찻종. 젓가락. 간장병. 석유병. 그리고 나머지는 다카시야마에서 한 가지 십 전씩에 사온 들통. 도마. 식칼. 국자. 이집 문간에 놓인 게다와 밑바닥이 뚫어져 안으로 마분지를 대어 신는 구두가 한 켤레. 그리고 진수가 몸에 붙이고 나간 것들과, 현재 순구가 두르고 있는 물건들. 이상이 그들의 ‘부동산'의 전부인 듯싶었다. 인제 그만인가. 아니, 또 있었다.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는 다섯 장의 전당표…… 어제, 그들은 오늘보다 한 권의 책을 더 가지고 있었다. 진수가 그것을 들고 나가 담배 한 갑과 바꾸어 왔다. 부하린의 『유물사관』에 대하여 서점에서는 그들에게 십 전밖에 지불하지 않았다. 그 십 전을 가지고는 둘이서 배를 채울 길이 없었다. 이마가와야키라도 사서 먹는다면…… 그러나 그 전날 밤 저녁밥을 마침 찾아온 윤필이 덕에 먹을 수 있었던 어젯날의 그들은, 밥 생각보다도 담배 생각이 좀더 간절하였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십 전이 오늘 또 있었으면 하고도 생각하여 보는 순구였으나 책상 위에 남아 있는 이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이, 『A study in Practical English』. 정가는 어엿하게 일 원이라고 매겨 있어도 진수가 한 달 전에 헌책사에서 십 전에 구한 것. 네 권 있는 잡지래야 야시에서 이 전 삼 전에 사온 것들뿐…… 순구는 선하품만 하다가 문득 윤필이를 생각하고 태식이를 생각하고 참 이런 때 태식이나 왔으면 하였다.
굴 욕
그저께 저녁때 찾아온 윤필이더러 언제 태식이 봤냐고 물으니까, 바로 오는 길에 성선(省線) 속에서 만나, 그러지 않아도 같이 오려고 그랬더니 만날 사람이 있어 오늘은 안 되고, 내일이나 모레쯤, 틈 봐서 가보죠. 그리고, 오카치마치(御徒町)에서 내리더라고. 그러니까, 내일이나 모레쯤 어쩌면 올 걸세. 그러던 윤필이의 말이 배가 고프니까 역시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식이는 정말 와줄까. 몸을 뒤쳐요 위에 배를 깔고, 머리맡에다 신문 한 장을 펴놓고, 그리고 순구는 재떨이 속의 탄지를 하나 집어 든다. 틈 봐서 와보죠 했다니까 꼭 올 까닭도 없을 게고·…·순구는 왼손으로 탄지 입 닿은 데를 쥐고 바른 손의 엄지와 검지로 담배 끝 까맣게 탄 것을 비벼 떨고…… 와야, 단 얼마라도 내게 착취를 당하고야 말 것이요, 또 그것은 저도 잘 알고 있는 터이요, 제가 무슨 ‘보살심’으로…… 담배 만 종이를 벗기어 알맹이를 신문지 위에다 털고 순구는 또 새로이 탄지 하나를 집어 든다. 그러니 태식이는 올 듯도 싶지 않고, 그러나 태식이라도 와주지 않으면, 오늘 하투는 염려 없이 굶었고…… 탄지의 알맹이를 또 신문지 위에 털고, 그리고 하나 또 하나, 똑같은 동작이 일곱 번 거듭된 뒤, 재떨이 속에 집어 들 탄지가 없다. 상반신을 베개 위로 치켜올리고 손을 내밀어 마도로스 파이프를 집어 들고, 왼손의 엄지와 검지와 장가락과 세 손가락으로 탄지 털어 모은 부스러기 담배를 골통에다 주워 담으며, 그래도 순구는, 올 틋도 싶지 않은 태식이를, 어서 부디 와지라 하고 빌었다. 순구는 성냥을 집어 들다 말고 문득 귀를 기울여 본다. 층계를 올라오는 발소리를 들은 까닭이다. 태식이나 아닐까. 그러나 쿵쿵거리며 올라오던 발소리가 장지 밖에 와 뚝 그쳤을 때, 순구는 얼굴을 최대한도로 찡그리고 파이프와 성냥갑을 머리맡에 소리 없이 놓고, 그리고 손과 머리를 이불 속으로 넣었다. 빌어먹을년이 왜 또 올라와. 또 방값 재촉이냐. 제가 언제 방을 한번 치워 주기를 하나, 편지나 신문 왔대야 갖다 주기를 하나, 사실 방값이라도 재촉하기 위하여서밖에 주인 여편네가 그들 방에 볼일은 없었다. 사이상 하고 주인 여편네는 불렀다. 잡아 흔들어 깨우기라도 하기 전엔 대답을 말리라. 순구는, 순간에, 결심을 하면서, 도대체 이 빌어먹을년이 왜 하필 나 혼자 있는 때를 골라 이 성환가, 진수는 어째 또 그렇게 공교롭게 나가 버렸누. 그 중에서 더욱이 진수는 이러한 경우를 예측하고 몸을 피한 듯싶어, 순구는 의식하고 이불 속에서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본다. 또, 사이상, 하고 계집은 불렀다. 순구는 이제 저 계집이 한두 번을 더 불러 설혹 자기가 정말 자고 있었더라도 대답을 안 하여서는 부자연하게 될, 그러한 경우를 생각하고, 그때는 대체 어떻게 허누 하고 마음을 태웠다. 마침내 드드드득 하고 장지가 옅리고 그리고 다음에 계집의 ‘아라 마―’ 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순구는 사태가 절박하였다 생각하며, 그러한 순간에도 남보이기에 부끄럽도록이나 살풍경한 방 안을 생각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무엇보다도 윤필이가 작년 여름에 구즈야(고물장수)에게 내어주려다, 오십 전이란 평가를 받고, 그럼 그만두라는 것을, 내게나 기부하게. 그래 얻어 가진 다 낡은 이부자리 속에가 오정이 훨씬 넘었을 이 시각에 몸을 웅숭그리고 누워 있는 꼴이란 순구 자신이 생각하여 보더라도 불결한 풍경임에 틀림없었다. 더구나 이러고 누워 있는 것이, 일어나더라도 밥 한 술 생길 도리가 없어서의 일이라 덧불이어 생각하니, 현재 이 꼴을 보고 있는 것이 방값 달라러 왔을 주인 여편네라, 순구는 자리 속에서 얼마든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다. 계집은 방 안으로 들어와 순구의 발치를 돌아서 아마 추측에는 도코노마로 가는 모양이다. 조금 있다, 무엇인지 유지장이라도 둘둘 마는 듯싶은 소리가 그편에서 들렸다. 하, 하, 족자로구나. 순구는 직각하였다. 그 족자라는 것은, 낚싯대를 어깨에 멘 늙은이가 종자를 데리고 다리를 지나는데, 산에 들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러한 평범한 종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이 방을 얻어 들기 전부터 그곳에 가 결려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을 주인 여편네는 그들이 떠나오던 날 이것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어떻게 되는 아무개한테 선사로 받은 것으로, 이러한 것 잘 아는 누구 말을 들으면, 지금 막 들고 나가더라도 암만은 받느니 어쩌니 하고 한바탕 수다를 떤 다음에, 그대로 여기 걸어 두죠. 나지도 않는 샘색을 내려 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을 왜 또 지금 떼어 가는 것인지 더구나 남 자는데 굳이 들어와 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하고, 계집의 무례한 행동을 괘씸하게 여겨 보려고도 하였으나, 그래도 그렇게 근심하던 방값 재촉이 아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순구에게는 다행하였다. 장지가 다시 드드드득 하고 닫히어지는 동안 순구는 태산 명동서일필. 입안말로 중얼거려 보고 층계가 또 한번 쿵쿵쿵쿵 울린 다음에야 생각난 듯이 이불을 젖히고 머리를 완전히 밖에 내어놓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여서 그런지, 가뜩이나 한 방 안이 좀더 쓸쓸하여진 듯싶었다. 무얼 그까짓 것 있으나 없으나…… 혼자 속으로 중얼
거려 보다가, 그러나 그년이 그건 왜 또 갑자기 떼가누. 그리고 그 즉시 순구는 눈을 무섭게 부룹떴다. 혹은 내가 그까짓 것 가지고 어쩌기라도 할까 봐. 그러한 추측이 선 까닭이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있나. 저엉 궁하면 별별 짓을 다 하는 것이니 혹은 제 방에 걸린 족자 같은 것 팔아먹기라도 한다면 하고 그따위 생각을 제 마음대로 하고, 아주 생각난 김에, 그래 그년이 그렇게 뛰어 올라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순구는 그곳에 무한한 굴욕을 느끼고 얼굴을 붉히고 습을 험하게 쉬어 보고, 하였다. 그래 그년이 그럴 수가 있나. 순구는 제 감정을 괴장시켜 자리 위에가 벌떡 일어나 앉아 보았다. 그래 그년이, 그년이…… 그러나 그는 힘없이 다시 자리에 누워, 몸을 뒤쳐 배를 깔고 그리고 마도로스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설혹 그렇더라도 내가 어쩔 테란 말인고. 그뿐 아니라 이 굴욕은 나에게만이 아니라 진수에게도 마땅히 분담될 게다. 그리고 뜻모르게 입을 비쭉해 보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역시 그에게 외로운 표정을 지어 준다…….
5–2=2+1
쓰카 공원(大塚公園), 그 우울한 벤치에가, 오늘도 진수는 앉아 있었다. 나뭇잎새 우거진 이 아늑한 자리에서는 공원 한복판의 빈 터전과 그 터전 건너편의 분수탑이 보인다. 때때로 찾아드는 향기로운 바람이 결코 넓지 못한 공원에서 그만큼 묘한 자리를 구하기는 힘들 게다. 그러나 진수는 제 자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공원 마당에서 아이들이 공을 치고 뜀박질을 하고 줄넘기를 하였다. 모두 어제도 그적게도 그가 이곳에서 보던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놀이는, 사랑스럽고 또 성(聖)스러웠다. 아이들을, 아이들의 놀이를, 사람이 마음 주어 볼 때 그것은 돈 생각 밥 생각을 잊게 한다. 진수는 이 뛰노는 아이들의 기쁨을 탐냈다. 나에게도 저 시절이 있었던 게니. 생각이 지나간 어린 시절에 미치려 할 때, 그러나 ‘골든 배트(담배의 한 종류)’ 연기가 그의 코를 찌르고 그리고 시루시반텐(글자가 찍힌 작업복) 입은 노동자가 그의 앞을 지나 저편 벤치로 갔다. 진수는 거의 기계적으로 주머니에다 손을 넣으려다 말고 쓸쓸하게 웃었다. 주인집에서 나올 때 그의 주머니 안에 있던 두 개의 담배는 이미 두 시간 전에 없어졌다. 진수는 오시이레 속 신문더미 밑에다 감추어 두고 나온 한 개의 담배를 생각한다. 그걸 마저 가지고 나올 걸 그랬나, 역시 그곳에 두어 두길 잘했나…… 아침에 그는 옷을 주워 입고 모자를 들쓰고 그리고 방을 나와 층계를 내려가다가 문득 담배 생각을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다섯 개. 두 개와 세 개. 세 개와 두 개. 그전과 같으면, 그는 서슴지 않고 세 개를 덥석 집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을 게다, 나중에라도 그 불공평한 배당에 대하여 순구가 항의를 한다면, 진수는 거리낌없이, 누가 늦게 일어나랬나. 그리고 두 사람은 허허 하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예전 얘기다. 궁핍한 생활은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빼앗고, 이야기를 빼앗긴 그들의 사이는 나날이 멀어 가는 듯싶었다. 진수는, 그래, 다섯 개 담배 중의 세 개를 제 자신 차지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차라리 순구에게 그 두 전을 줄지언정·…· 그러나 담배는 다섯 개였고, 그리고 그것을 그들은 오늘 하루 온종일을 별러 먹어야만 하였다. 마침내, 진수는, 한 개의 담배를 오시이레 속에 감추고, 그리고 그 조그마한 유희에 제 차신 갓난애 같은 기쁨을 맛보았으나, 순구의 자고 있는 양이 다시 한번 그의 눈에 띄었을 때, 그 핏기 없는 조그만 얼굴은 진수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주었다……순구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꾸. 그저 그대로 이불을 들쓰고 누워 있겠지. 진수는 그러한 순구의 모양을 상상하여 볼 따름으로 우울하여진다. 언제나 아침에 진수가 잠을 깰 때면, 햇발은 아직 그들의 방을 엿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제 방에서 나와, 채 일들을 하지 않는 그 시각에, 골목 건너 서너째 집에서 라디오 체조의 단조로운 흐령 소리와 꿈꾸는 듯한 피아노 반주가 들려 온다. 베개에다 머리를 푹 파묻고 마음 고요히 그 소리를 들을 때, 그것은 역시 진수에게 맑고, 또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아침의 기쁨이다. 그러나 그가 몸을 뒤쳐 그곳에 잠자는 순구를 발견할 때, 그의 마음은 어둡고, 또 답답하였다. 아마 몹시 언짢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게지. 베개 아래 모로 떨어진 채 잔뜩 찌푸려진 그 굶주린 조그만 얼굴은, 그것 하나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진수는 불결한 데서나같이 그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고, 그리고 못마땅하여하는 으으음 소리를 내었다. 그 불쾌한 얼굴은 왜 나의 눈앞에 있나. 왜 나로 하여금 잊었던 얼굴을 생각해 내게 하나. 설혹 한 이레를 굶었다손 치더라도, 이 하루 아침이 내게 주는 감격을, 그 짧은 동안의 감격을, 그것은 대체 무슨 권리를 가져 그렇게도 쉽사리 빼앗아 가나…… 진수는 그곳에 분노조차 느끼며, 다시 한번 순구의 얼굴을 돌아본다. 주근깨가 약간 있는, 그 창백한 조그만 얼굴은 그의 꿈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번에는 그의 입가에 몽릉한 웃음을 띠고 있다. 그것은, 본래는, 미소이었을 게다. 그러나 영양불량의 얼굴 위에 그것은, 몹시 천한 느낌을 주었다…… 이제 그 얼굴을 가져 순구는 암만이든 자겠지. 그러나 진수는 그 우울한 위치에 자기를 둘 수는 없다. 그는 신문을 뒤적거리다 말고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그리고 그자고 있는 사람의 불결한 육체며 의복이며 침구며, 그런 것들을 증오와 모멸을 가져 노려보고 다음에 돌아서 그 방을 나왔다. 그러나 거리에 나와 그는 갈 곳을 갖지 못한다…….
밥을 찾아서
공원 나무숲에 새들이 날아픈다. 재재거린다. 황혼은 그 위에 내리고 어느 틈엔가, 아이들은 이곳에 없다. 공원을 지키는 검은 쓰메에리 입은 사람이 세 명 마당에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한다. 아마 이 근처에 사는 게지, 영어독본을 들고 맨머리 바람으로 들어온 중학생은 분수탑 뒤로 들어가더니 다시 나오지 않는다. 진수는 노동자 편을 보았다. 벤치, 그 딱딱한 나뭇조각 위에가 그는 다리를 요렇게 오그리고 한 팔을 요렇게 고이고 그리고 아직도 고단한 잠은 깊다. 진수는 그의 볕에 그을린 얼굴의, 짧게 깎은 구레나룻을 보며 그도 오늘 한나절을 이곳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고나, 하였다. 혹은 그도 진수나 마찬가지로 주머니 속에 한푼의 돈도 없을지 모른다. 혹은 진수보다 더하게 오늘 밤 잘 곳을 갖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혹은 진수보다도 더 생활에 자신을 갖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수는 힘없이 머리를 숙였다. 그는 며칠을 굶더라도 역시 그 이튿날에 희망을 걸 게다. 노동을 할 수 있는 몸, 노동에 견디어나는 몸, 그 한몸을 가져 그는 또 거리로 나서 일을 구할 게다. 그러나 진수는…… 진수는 막연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엇에 그는 희망을 걸 수 있었나. 아무것에도― 진수는 쉬이 어떻게든 하여야 할 것을 알았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아무런 방도를 못 가질 때 그는 현실을 잊으려고만 노력하여 오지 않았나. 이제, 순구는 주인집 이층에서, 진수는 여기 이 공원 벤치에서, 딱하고, 또 불결한 죽음을 지을 게다. 홍 하고, 코웃음도 안 나왔다. 진수는 갑
자기 자기의 모든 행운이, 모든 방도가, 순구와 같이 살림을 함으로써 깨어진 것같이 생각하고 싶었다. 그 생각이 천박하고 또 가증한 것을 그는 안다. 그러나 순구의 그 조그만 얼굴, 텁수룩한 머리, 결핵 체전에 보이는 창백하고 투명한 피부, 가늘고 또 긴 손가락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에 목구멍에서 내는 소리와 때로 반감을 가져 그를 쳐다보는 그 퀭한 두 눈……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여 볼 때 진수는 아무래도 그와 이제 더 같이 지내지 못할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반짝, 하고 불이 들어왔다. 이제 확실히 밤이다.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은 따뜻한 저녁을 먹고 그리고 유카타 바람으로 이곳을 찾아올 게다. 입에들 남배를 물고…… 진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저 잠자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자기의 초라한 행색을 보일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다. 진수는 기운 없는 뱃속에다 줄 힘도 없이, 허청허청한 다리를 이끌어 공원을 나왔다. 어디로 가나. 물론 주인집으로밖에 갈 곳을 그는 갖지 못한다. 혹 누가 그 동안에 찾아오지나 않았을까. 그러나 온대야 윤필이나 태식이, 둘이 다 순구의 친구였다. 진수는 순구의 그 우울한 얼굴을 또 한번 생각하고 주인집으로 돌아갈 용기조차 잃었다. 그는 이제 단 한 걸음도 더 못 걸을 것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무턱대고 앞으로 갔다. 자기가 어딜 무엇 하러 가는 것인지를 그는 몰랐다. 몰라도 그대로 그는 걸었다. 뱃속에서 가끔 들리는 쭈룩 소리가 딱하고 또 천하였다. 몽롱한 두 눈 앞에 무턱대고 음식점만이 어른거리니. 혹, 소바(국수)집 앞을 지날 때 그 안에서 연해 고명 냄새가 풍겨나와도 진수는 침을 삼킬 기운조차 없어진 듯싶었다. 두 시간 지나, 어디로 어떻게 왔는지, 그는 에이타이바시(스미다 강 하류의 철교) 위에 았었다.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굽어볼 때, 물은 탁하고 또 험하다. 잇센조키(스미다 강을 왕래하는 통통배)가 뽕뽕 하고 소리를 내며 다리 밑을 지난다. 진수는 그 안에 응당 자리를 잡고 있을 잡지장수의 그 주름투성이 얼굴과 생쥐 같은 두 눈을 생각하였다. 그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사들이는 것인지 그달 치 잡지를 오륙 종, 정가로 따지자면, 삼 원이 훨씬 님는 것을 장강일석(長講―席) 후에 한 묶음 오십 전씩에 팔았다. ……그러나 대체 나는 여길 왜 온 겔꾸. 빠져 죽기라도 하려고 강을 찾아 나왔던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진수의 취미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 진수는, 이십 리 길을 터덜거리고 걸어온 자기 다리의 뜻을 알아내고, 그리고 잠깐 망설거린다. 그러나 이제 이대로 돌쳐서서 온 길을 되걸어 주인집까지 가야 할 생각을 하였을 때, 진수는 다리를 건너갔다. 후카가와 몬젠나카초(深川 門前仲町). 진수는 그가 학교 다닐 적의 유일한 일본 친구를 찾았다. 그러나 겐칸(현관)에 나온 조그만 계집애는 그가 외출하고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아마 곧 돌아올 겝니다. 들어오셔서 좀 기다려 보시지요.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순간에, 자기의 구멍 뚫린 구두가 저 귀여운 소녀의 손으로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일 것을 생각하고 주저하였다. 그리고 생각이 그의 땀과 때에 전 양말의, 그 빛깔과 그 냄새에 미쳤을 때, 그는 그만 소녀의 충고를 쫓기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한 시간 가량 있다 또 오죠. 그리고 덧붙이어, 마침 이 근처에 들를 데도 있고 하니…… 진수는 골목을 나오며 대체 내가 이 근처에서 들를 데란 어딘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이틀씩 굶었으면서도 되도록 차려 보려는 체면. 이것을 가로되 소시민성(小市民性)인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털버덕 주저앉고 싶은 것을 느끼며 그래도 그는 큰길로 나와 전차 선로를 힁단하여, 또 이 근처 공원을 찾아간다.
한 개의 담배
자정이 넘어, 진수는 굶주림과 실망과 피로를 가지고 돌아왔다. 교시도(격자문)를 열고 닫고, 주인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그리고 열세 단의 급한 층계를 올라가 방문을 열고 섰을 때, 그는 문기둥 붙잡은 손을 떼는 순간, 그곳에 썩은 나무와 같이 쓰러져 버릴 것 같은 환각을 느꼈다. 그는 아아 나는 이제 돌아왔다 하고, 까닭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불결한 침구 속에 그대로 몸을 뉘고, 그리고 묵은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는 순구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려고도 안 했다. 아아하아. 진수는 갑자기 순구에게 달려들어 그를 멱살 잡아 일으켜 가지고, 그리고 자기의 온갖 격럴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 놓고 싶었다. 그는, 그러나 그곳에 이옥히 서 있었을 따름으로, 순구의 발치를 돌아 제자리로 가서 모자를 도코노마 위에다 팽개치고, 그리고 맨바닥에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이제 완전히 제자리로 왔고, 그리고 밥과 희망을 갖지 않아도 하여튼 자리에 쓰러져 쉴 수 있었다. 그는 잠깐 순구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오늘 아무도 안 왔었나. 숨찬 어조로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잠깐 있다, 순구는 매우 힘들어 보이게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진수는 꿀떡 침을 삼키고 그러나 또다시 주인이 방값 재촉 않던가. 역시 대답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머리도 흔들리지 않았다. 진수는 목구멍을 넘어오는 울홧덩어리를 쓰디쓴 침과 함께 꿀떡 삼켜 버리고, 그리고 아무 뜻 없이 창 밖을 내다보았다. 진수는 말이 듣고 싶었다. 종일을, 온종일을, 말에 굶었던 그는 그렇게 피로하였으면서도 말이 하고 싶었고, 또 말이 듣고 싶었다. 흐으응. 진수는 역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기를 기다리어 살며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순구의 팽한 눈을 자기 뺨에 느꼈다. 혹은 자기가 그 동안 밖에 나가 어떻게 한 끼라도 요기를 할 수가 있었던 줄 순구는 알고 있는 겐가. 흥…… 진수는 자기가 한 시간 뒤, 다시 친구의 집을 들러 그 소녀의 아직도 안 들어오셨에요 하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실망과, 이제 다시 이십 리 길을 터덜터털 걸어가야만 하나 하는 뻔한 사실에 새삼스러이 생각이 미쳤을 때의 그 울 것 같은 감정을 또 한번 되씹어 보며, 주먹을 들어 순구를 이 자리에 때려뉘고, 그리고 한바탕을 소리를 내어 울고 싶은 격정을 느꼈다. 아아, 이 불결한, 이 우울한 물건은 왜 나의 눈 앞에 있나. 내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에 그는 왜 그의 불결한 이부자리와 함께 이 방에서 도망질치지 않았나. 이 구차한 내가 양복을 잡히고, 외투를 잡히고, 가방을 잡히고, 책이며 잡지며를 팔아서 두 사람의 양식거리를 마련하는 동안, 아무 일도 한 일이 없이 펀둥펀둥 지내 온 너는 좀더 나의 비위를 맞추어 주어도 좋을 게 아니냐. 네가 무슨 권리를 가져, 내 물음에 대답을 않고, 그리고 내 앞에 그런 떠름한 얼굴을 하느냐…… 진수는 무한한 증오를 그곳에 가졌다. 그러나 자기가 이렇게 굶주림과 실망과 피로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이 방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할 순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고 돌이켜 생각하여 보았을 때, 차츰차츰 그의 흥분은 식어지고 그리고 그곳에 사람과 사람, 친구와 친구 사이의 인간 본래의 애정을 그는 느끼려고조차 하였다. 그러나 순구는…… 아아. 가만히 한숨짓고, 그대로 맨바닥에 가 누우려다, 진수는, 문득 다시 일어나, 오시이레 문을 열었다. 한 개의 담배. 감추어 두었던 보배나 다시 꺼내듯이 그는 그걸 소중하게 들고 자리로 왔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두 손으로 용하게 꼭 절반을 내어 가지고, 그 한 토막을 순구 앞에 내밀며 자아 담배나 태우세. 그렇게 말하였을 때, 그의 말과 또 그의 담배 든 손끝은 이상한 감격으로 떨렸다.
(『성탄제』, 을유문화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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