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드라마의 왕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가 방영된다. 요일 별로, 시간대 별로 매우 다양한 드라마가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한국 여성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대중 매체에 나타나는 한국인을, 드라마 속의 여성으로 국한시켜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한국인의 자화상을 얻고자 한다.
과거와 비교하여 한국 드라마 속에서의 여성의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원 톱 여배우 드라마가 나오는가 하면, 남자 주인공은 조연으로만 나오는 드라마도 종종 눈에 띈다. 이것은 여성 드라마 작가의 지위가 향상함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권익을 부르짖는 사회의 변화에도 발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우선 여성의 자유와 성공을 그린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다. 여성의 성공을 그린 드라마의 시발점은 1993년 작 <아들과 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아들과 딸>에는 남아선호사상에 희생되어 여성을 억압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김희애의 캐릭터는 여성의 자유와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다. <아들과 딸>은 아들만을 사랑하는 어머니 아래서, 자신의 꿈과 야망을 위해 노력하며 끝내 성공을 이루는 여성을 등장시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한국 여성의 진취적인 자화상을 그려내었다. 1999년 작 <국희>는 여성 경영인을 그린 드라마이다.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경영인으로서 성공을 거두는 김혜수의 캐릭터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나타낸다. 여성을, 남편을 내조하고 자식을 키우는 현모양처로만 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오던 풍조에서 <국희>는 최초로 여성 경영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성공을 이야기한 드라마이다. <아들과 딸>의 후남(김희애 役)이나 <국희>의 국희(김혜수 役)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핸디캡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아를 쟁취하고, 남성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현대 사회에 권장될 만한 매우 바람직한 여성상이다.
두 번째로 남성에 정면 대결하는 용감하고 위협적인 여성 캐릭터도 등장하였다. 1994년 작 <아들의 여자>에서 채시라의 캐릭터는, 남성에게 억압받고 지배받으며, 남성의 전유물로만 그려지던 이전의 한국 여성 캐릭터에 도전장을 내민 매우 급진적인 캐릭터이다. 그러나 그 캐릭터가 남성을 위협하고 곤경에 빠뜨리는 팜므파탈적 성격을 내포하기는 하나, 남성에 대한 도전장이 단지 사랑 때문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아들의 여자>보다 한 걸음 발전한 드라마는 1999년 작 <청춘의 덫>이다. 남성에게 순종하고, 사랑에서 소극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여성이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복수하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청춘의 덫>의 심은하의 캐릭터는 적극적인 여성을 상징한다. <아들의 여자>나 <청춘의 덫>은 모두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를 하고 곤경에 빠뜨리는 도발적인 팜므파탈을 여 주인공으로 내세운 혁신적인 드라마인데, 이것은 남성에게 항상 죄의식을 느끼며 순종만 하는 게 현대 사회에 요구되는 여성의 능사가 아님을 명확히 표현하였다.
세 번째로 드라마 속에서 조연 신세를 면치 못 하던 아줌마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급상승한 점을 들 수 있다. 아줌마 캐릭터를 주연으로 내세운 드라마의 시초는 <육남매>이다. 비록 <육남매>는 자식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전통적인 어머니 상을 그린 드라마이지만, 여느 드라마처럼 자식들이 주인공이고 어머니는 조연이 아니라,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정면에 내세워 중년 여성의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 <아줌마>는 그야말로 아줌마의 위상을 높인 드라마이다. 남편과 자식에게 항상 무시 받고 홀대받는 아줌마에서, 그들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삶을 가꾸어 나가는 원미경의 캐릭터는 그 당시 중년 여성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회상을 반영하는 드라마에서 아줌마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의 위상이 높아졌으며, 사회를 움직이고, 더 나아가 권력을 휘두르는 자도 점점 아줌마로 변해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또한 아줌마는 매우 건강하고 솔직하며 강인하게 묘사되는데, 이것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라고 하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가 사라져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30대 미혼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드라마가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2004년 작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드라마는 30대 미혼 여성의 일과 사랑, 삶을 재치 있게 그려내며, 여자 주연-남자 조연 드라마의 문을 열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이렇다할 남자 주인공이 나오지 않고, 성격이 각기 다른 30대 미혼 여성 세 명이 나와 그들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드라마이다. 소위 말해 ‘노처녀’는 살기 힘든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인생을 독립적으로 개척하는 세 여성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30대 미혼 여성의 캐릭터가 주로 부정적이고 불우하게 그려졌다면,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매우 밝고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노처녀 캐릭터를 창출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노처녀’는 ‘결혼도 못 하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에 선 인물로 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30대 미혼 여성은 더 이상 ‘결혼하려고 안간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20대에 갈고 닦은 경력으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희망적인 사람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남자에게 버림받고 울기만 하는 비련의 여 주인공이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현재, 확실히 한국 드라마 속 여성은 점점 독립적이고 진취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여성의 권익 신장과 더불어 남자 주인공의 파트너가 아닌, 여성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상을 잘 반영한 대중 매체는 바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서 여성의 권익과 삶이 점점 독립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도 그렇게 할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남성으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쟁취하는 여성 캐릭터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할수록 사회는 건강하고 균형적으로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