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유아이사(伯仁 由我而死)
내가 백인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백인이 나 때문에 죽었다.”라는 말이다.
진나라 원제 때의 승상은 왕도였는데 왕도의 사촌형인 왕돈이 진동대장군이라는 지위에서 군권을 장악하여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자 황제는 두 사람을 의심하였다. 이에 왕돈이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향해 진격해왔다. 그 기세에 눌려 황제는 화해를 청했고, 왕돈은 자신과 반목하고 있던 자들을 죽인 다음 철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왕돈이 왕도에게 백인이라는 사람에 대해 “그는 우리의 친구인가, 적인가?”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왕도가 얼른 답변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왕돈은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 후 왕도는 황제가 자신을 의심할 때 백인이 변호의 말을 해주어 자기 목숨이 살아남았음을 알게 되었다. 왕도는 크게 통곡하면서 울부짖었다. 비록 내가 직접 백인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나 때문에 죽었도다! 자기가 말 한 마디만 잘했다면 그가 죽었겠는가?
내가 왜 이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아픈가?
2013년 10월에 모스크바에 가려고 비행기표와 선물까지 다 준비했고 교회에도 광고까지 다 했는데, 시애틀 러시아 영사관에서 내가 가면 종교활동을 할 것인데 그러려면 종교비자를 신청해야 한다면서 비자를 내주지 않아서 상당히 섭섭하였다. 그때에 아들이 차라리 자기 집으로 와서 며칠 쉬다가 가라고 해서 뉴욕 주의 코닝(Corning)으로 갔다.
2014년부터는 한국과 러시아 간에 서로 비자를 면제해주기로 한 협약이 발효되어 나는 두 달 후인 2013년 12월 31일에 시애틀을 떠나 2014년 1월 1일에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한국여권으로 무비자 입국 제1호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CNN이 보도했다고 한다.
며칠 있다가 29일에 서울로 갔다.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ITH(이타카) → EWA(뉴왁) → NRT(나리타) → ICN(인천)에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더 늦게 밤 9:44에 도착했다.
큰형님이 공항 핔업을 나오셨는데, 다른 출구에서 기다리시는 통에 또 좀 늦었다. 나에게 전화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 전화기를 빌려서 연락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많이 늦었지만 한산한 고속도로를 지나서 삼송리에 있는 막내동생 집에 가까이 왔는데, 형님이 길을 잃어서 GPS를 켜고 따라가다가도 같은 길을 세 번이나 돌고 돌다가 겨우 집을 찾아오게 되었다. 고속도로에서 보니 형님이 전처럼 과속하지 않고 얌전하게 운전을 한다. 조금 이상하게 느꼈지만 나이가 많아지니까 더 조심하는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
집에 오니 11시 30분쯤 되었다. 형님은 그냥 돌아가고 나는 짐을 내려놓고, 잠을 잘 잤는데, 이튿날(31일) 새벽에 마침 서울에 나와 있던 큰조카 나종옥 목사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형님이 나를 여기에 내려놓고 집에 가다가 집에 거의 다 와서 지하도로 내려가는 길과 그냥 곧장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지하도 쪽으로 조금 들어갔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려서 올라왔는데 그 비탈진 곳에서 차가 뒤집히는 큰 사고를 냈다고 한다.
형님은 실신하고 말았는데, 마침 지나가던 차가 보고서 119에 연락을 해서 구급차가 와서 병원으로 실어갔다고 한다. 차는 완전히 폐차를 하게 되었고, 형님은 큰 부상은 없고 가슴이 많이 답답했으나 이제는 조금 좋아졌다고 한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그 후로 형님은 건강도 더 나빠지셨고, 차가 없기도 했지만 모두가 운전을 하지 말라고 해서 운전도 못하고 사셨다.
만일 그때에 그 사고로 인해 형님이 운명하셨다면 어땠을까? 나는 혼자 미국에 살고 있으니, 자주 찾아와서 복음도 전하고 형제들도 만나려고 했는데, 좋은 의도가 오히려 불행을 불러온다면 차라리 안 오느니만 못하지 않은가!
형님의 부음(訃音)을 듣고 내가 “백인이 유아이사”라는 고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만일 그날 그 사고가 없었다면 형님은 훨씬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실 수 있으셨을 텐데 ⋯”라는 죄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마음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기쁨을 주려고 했지만, 결과는 슬픔과 아픔을 주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되돌아보면 이제까지의 나의 삶이 이런 민폐인생(民弊人生)이 아니었던가? 사람마다 자기가 잘한 것을 자랑하기에 바쁘지만, 실은 자기로 인해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고, 심지어 목숨을 잃게 된 일도 얼마나 많겠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이 민폐인생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더욱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경직 목사님은 우리 인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씨를 뿌리는 삶이라고 하시면서 좋은 씨를 많이 뿌리라고 하셨다. 김형석 교수는 남에게 유익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시는데, 나를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가!
주님 앞에 갈 날이 많지 않은 우리 인생들, 속히 깨닫고 주님을 더욱 잘 섬기면서 민폐인생이 되지 않고, 모두에게 유익과 생명을 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