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유혜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판사 서평>
고전의 가치는 기억이 아니라 실천이거늘.
몸이 없는 등불은 새 옷을 걱정하지 않고 진주를 물었다. 혹여나 흑진주에 눈멀어 고운 빛들, 홧병에 꽂혀 난다는 듯. 기우는 성기들.
하늘 아래 두 머리를 쳐드는 살림은 꼿꼿이 세우듯 틔우는 밤눈의 씨눈들인가. 한데 버리지 못해 바쁜 우상을 좇다, 쫓다가. 다시금 수신을 생각한다.
빠질 목 없이 온몸을 꺾는 바닥까지 오르고팠을까. 오래된 나무를 살린다 버려진 구름 솜을 터, 쳐들기 바쁘게 ‘정성 팔이’에 구름은…… 죽어서도 뜬다.
떠날 줄 모르는 구름에 푸름이 얹힌 하늘이라 쓸까.
바로 내가. 기꺼이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치를 불러온다거나, 무딘 감성에 오르는 행상을 고심해 죽어서도 떠 넣을 입에는 죽음의 공식이 상을 엎고. 숨어서 참은 만큼 들어줄 청소가 천해 보인다. 일용할 시간이라는 제명에 주제넘던 왕 따와 장시를 낳고. 건강 미인의 가벼운 쉼같이 늘일 단시를 뽑아 선 화살촉은 기회마다 남녀노소를 넘어선다. 출구를 잃은 해약처럼 연해빠진 정전생[生].
활이 불을 덮치는 시대에 나는. 침침함을 바느질하며 별 하나 따라갈 수 없었다. 일상화된 누군가의 보편을 따라가 모사하듯 아주 잠깐씩의 나를. 가끔은. 같아지기도 하는 인정의 불빛이라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힘든 시기를 지나온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로 몰아오기도 했다. 수면 잠옷 속이 더 궁금한, 지도 위로 꽂힌 노파심에 승천이라는데.
(잘 들어가세요)
모자 속에. 옷장 속에. 뒷짐 진 쉼표 정도는 못 본 셈칠 테니. 더는 사랑이 자라날 수 없는 자리에 이미, 사랑은 가려져 있던 더께를 벗겨내는데. 일어나는 분노를 뭉쳐서, 모아서, 한소리마저 사라지기를. 똥도 나오고. 피곤까지 사라져 딱 딱 치고. 또 꼭 맞는 유모를 좇고 싶었다. 별 보이는 기적을 삼키면서. 불안해도 시, 쓸 수 있는 편에서. 봄맞이 대천사에 업혀 허물을 봐주듯.
본질을 못 보는 책 밖에서. 흐려 울지만 말아…… 문득문득, 거울 보는 때,
―ㅁㅐ자, 유 혜 연
<작가 소개>
계명대학교 문예창작대학과 졸업하고 2013년 예술세계(겨울호)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안眼을 보는 나무』가 있다. 현재 고저 읽기에 몰두하고 있으며 프리랜스 작가로 활동 중이다.
<목차>
제1부
01 · 자비
03 · 녹음 중
05 · 여운
06 · 창
07 · 날[生]
09 · 날 2
10 · 은유의 세계
11 · 뿌리
12 · 핸드드립
13 · 공명
15 · 고백 1
16 · 긴 잠을 걷다
17 · 부화
18 · 피서
19 · 그늘 눈
21 · 이별
22 · 기능성 입맞춤
23 · 살 색까지 잇몸분투
24 · 맹신
25 · 사람끼리 울면서
27 · 바람에게
28 · 제때
29 · 구명
30 · 운명
31 · 주름잡는다는 거
33 · 너무 미안합니다
34 · 대충이라는 벌레
36 · 먼 웃음 가까이
37 · 독
제2부
39 · 봄, 일상의 유적
40 · 난생의 기억
41 · 겨울 눈
42 · 외면하는 위로
보들레르에게
43 · 안테나
45 · 해동 열전
47 · 흐르는 강
48 · 말아
50 · 얼굴
51 · 산책
52 · 티 타임
54 · 거처
55 · 얼음 꽃
56· 우상
57 · 자가 부정식
58 · 글 선생
59 · 사이 꽃
60 · 마저라는 거리
61 · 꿈의 도르래
63 · 손님 1
64 · 불성에게
65 · 새의 장송곡
66 · 도시 구름마
67 · 분가
68 · 투지
70 · 불안의 여백
71 · 문어체로 사는 길
72 · 비 오는 날
73 · 일기 2
<작품 소개>
꾸기만 하면 꿈 생각만 매워지는가 푸른 잎사귀들을 소스라치게 울어대는데 햇살 나락들이 눈에 밟히듯 씨눈들
곪아 터지게 비비며 애달피 비틀어 쥐는 자장 속에서 한사코 바람 맞으며
미친다
열꽃 한 점 키워낼 텃밭을 기다리고만 있는 걸까 수천 권 빼곡히 채운 서재만 부풀어 오를까 가리워진 책들은 한 올 한 올의
털이야, 털들을 읽어내려 봐 가만가만 꺼내 보는 도서관이 비 오는 날
온통 수증기로 뒤덮은 밀실이야 나무 가지를 뻗어 올리고 있으면서 못 다 쓴 하루를 불안해 말자
일찍이 그만하자 닫아두려 해
책을 덮어도
책 속에서 미아가 되어보는데
아랫목에 덧댄 유리 거울은 눈을 가리고 있잖아 책꽂이는
최후의 날을 몰라 모를 거야 힘 풀리는 다리를 가지런히 놓아 보내더라도
더 조금 더 깊숙이 보고만 싶은 음부를 할퀴고 말 거야 면도기는 물 건너갔더나 목마른 선율에 아쉬워 흐르는 눈물은 없어
면도기를 뺏고 털 심어야지, 그 사이
나는 손가락 끝마디를 꾸욱 꾹 찔리는 듯 지압봉을 휘두를게
‘피’와 ‘살’과 ‘털’ 간의 유착관계
키울 수밖에 없는 것들을 맞히며 돋아나는 줄 아는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골 패인 골자들에
털들의 반란을 목도한다는 데
아직 품안에 새김질 바람만 안아
혈점에 기대듯 쓰지 생생하다마다 약 오르기 전이야 비뚤어지게 쓴 내로
왕따는 장시를 낳고 불을 피워 떡을 싼다 길고 하얀 떡가래가 쪼개지면서 으깨지고 그을러 타고 없어지지 않을 만큼
주인공은 주인공만 키운다 재를 쌓다 쌓다가
재회로 넘치는 재탕 속에서 남아도는 기운은 위로가 되지 못 한다
<녹음 중>
달밤이나 꼭두새벽이나 진혼곡이 울리는
귀로
까맣게 익어가는 줄이야 꿈만 같았는데요
대낮의 절하는 뱃사공처럼 긴 긴 밤을 여느라 입으로만 빗발쳐 물기를 머금고
낮게 낮게 말라가는 몸으로 무법천지 빛들 속에서 한 줄기 혹은 한 조각 숨처럼 손톱을 뜯긴 순간의 석순처럼 온몸의 살거름들 활기를 짜 내는데요
실패를 풀어 막 가버린 욕심이 지키지 못할 약속에 손가락을 팔았다네요
끝끝내 얼굴을 벗어나지 못 하는 입들은 결대로 잎이라는 잎 다, 피읖[ㅍ] 받침에 대고 겹겹이 울었다네요
배기지 않는 활자를 들먹이면서 입성할 줄이야
슬픈 밤이 어찌 어찌 웃을 수 있겠어요 불현듯 절절해 오는 꿈자리가 눈을 뜨면
맹견의 맹견을 견주라는 듯이 아무 말 않고도 이를 갈아댔어요 발톱을 세우고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그림 폭에 숨을 놓을 듯이 말예요 소름처럼 해몽도 될 수 없는 운명 같은 일진에 낮술은 언제까지랄까요 유달리 반질해 놓친 그녀의
보름달은 휩쓸리고 싶은 걸까요 무딘 날에 반 박자 늦게 서러운 울먹임을 어쩌겠어요 주저하며 소스라치며 목 말라 있는 ‘해탈의 도’랄까 접었다 풀지도 못 해
하염없이 그리움에 마려운 벽오동, 찬 물 속에서 발을 낸다는 게
<은유의 세계>
술에는 안주하면서 다 지워졌다
한 술을 보냈다
술 앞에 맞장 뜨던 살림이 휘청거릴 때
안주를 씹으며 보다 좋은 맛, 탐방하고픈 멋스러움에
따르는 쪽이야 늘 자신이었다
안주를 들어내기도 했다
끝장을 보자 안주 걱정에
안주로 돌아선 고심이 세심함의 흔적인지 미처 모르고 있을 때
들어가세요, 하면 가만히 다른 삶을 만나
살아지는 줄만 알았다 자기고백 이후로
긴 잠을 걷는 풍경이
밀쳤던 낮은 주발의 웅얼거림을 부식거리로
목을 조였다
달은 자야 한다고…… 달 자,
오는 잠도 흔들려
돌아가는 나무 소리 목메듯 부푸는 환풍기를 정면으로 강아지 얼굴이
불어 오다 그새를 못 놓아 준다
못내 고백하는 마음 못 이긴 척, 뒷문 열어두고 잠든 사이
먹성 좋은 언젠가의
시인이기 전에는
받아 주었을,
<긴 잠을 걷다>
늦는 그늘 눈앞에 향초가 탄다
혼사 길이 타 들어가나 마지막
한 점까지 모조리 먹어치우자 주문하는 사랑이
추억을 따돌린다 그리움을
향유하는 그을음이 노곤해지는 건
눈물 짙은 그리움 속에 추억이 너무 가 버린 탓일까
눈 카메라야 물리고도 모른다 평생 짝꿍, 하고 읽힌다
‘혼밥’에 대한 찬사일지도
그대를 숨어 본다
하고픈 말도 참아서 해 줘야지
도를 튼 시작 편력에 연원을 알 수 없는 괴물의 괴짜들이
난다 찢기듯 감기는 눈으로 고쳐 보지도 못하는 고집이야
버려야 하는데, 마취 깨고 들어와
티끌만한 보석을 할퀴면서도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발등에 새긴다
갑갑한 자궁 걱정
답답이 쾌차하시게
수정 완료에서
울림 완료까지 선뜻 빌려보면서
식은 밥에 대한 묵념처럼 태어난다는 게
버리지 못하는 죽음이 선하다
아찔하기로
살아서 죽어나는 미완성 골짜기 만한가
맥 빠지게 교란시킬 수 없는 단잠마저 뒤 뒤 하고 사다리를 놓는다는 게
입을 벌린 채 머물지도 않는 시인의 나무는
나무를 위한 시인의 일로 몰리는가
살아 디는 나무야 걸음걸음 꼬인 다리가 꼬는 다리에 오른다
운화 타고 하늘 빛 떠받들 듯이 의도한 짐도, 잠도 없이
지고 말 일이런가 덤이라는 생에
또 생각에 물리고 몰려서야 풀어지는 날림체런가
환기하는
꽃 그림자만이 홀연해질 수도
<그늘 눈>
거기, 눈 온대도
여기는 얼어붙지 않는다
눈이 눈을 향해
누고, 눈은 스스로를 묻지도 못하면서 눈 녹듯 스러지고도 싶은가보다
설익음에 중탕하는 찜통을 들어낸다
뜨겁게 사랑하는 쪽은 항상 나와 가까운 걱정들의 결정체였다
눈꽃들로 다닥다닥 붙어 한참이나 눈 오는데
입에서는 불이 나고 눈물이 뜨거이 불똥으로 떨어지지 못해
거듭 내뱉는 숨결조차 흐지부지
되는 눈은 따로 있다고 힘 모아 눈꽃 사이 사이 심을 박고 술을 달아 두었지만
녹아 없어지듯 차가운 미소를 태우며 물러나고 싶다 얼버무리는 눈밭 가득
짠 내인가 단 내인가 눈은 있기도 전에 와
내 속으로 쌓이기만 하는가
저 눈 참 누구와 눈 맞을 준비를 하려나 스스로는 닫지도 못하고
열리는 기척인가 소복소복 한랭전선을 지나며 눈길에 눈결로 지장을 찍는다
도망하듯 떠날 것처럼 안녕, 하면 녹아들 것처럼 신을 찾아
머무르던 지문은 깨어난다
물빛이 얼어가는 한바탕 눈 속에 멀리를 내다보는
걸음마를 맞추고 책을 읽는
<얼음 꽃>
분류 :문학>시/에세이>시
제목 : 긴 잠을 걷다
지은이 : 유혜연
출판사 : 한비출판사
출판일 : 2018년 12월 28일
페이지 : 144
값 : 10,000
ISBN : 9791186459881
9788993214147(세트)
재제 : 길이_210 넓이_130 두께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