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정맥류 / 고영조
아내는 하지정맥류下肢靜脈瘤를 앓고 있다 푸른 지렁이들이 종아리를 퍼렇게 감고 있다 그는 너무 오래 서 있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풀썩 주저앉지 않으려고 바위틈에 뿌리를 깊게 박고 서 있었다 너무 오래 서 있었다고 몸이 일러준 것이다 일전에 갔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도 둥근 몸이 군데군데 깨어져 있었다 그도 무거운 지붕을 이고 너무 오래 서 있었다 한 손에 약병을 들고 계신 약사여래께서도 그러하셨다 치맛자락으로 푸른 종아리를 감추시던 어머니도 그러하셨다 떠나신지 30년이 지났어도 커다란 함지박을 이고 아직도 대문간에 서 계셨다 어머니는 언제나 서 계셨다 푸른 지렁이들이 종아리를 퍼렇게 감을 때까지 그들은 너무 오래 서 있었다.
시집<새로난 길> 2010. 현대시시인선
고영조 시인
경남 창원 출생
1972년「어떤 냄새의 서설」을 현대시학에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
1986년「강에서」「이주 일기」「그해 봄날」「떠도는 섬」등 13편으로 제1회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에 당선
시집「귀현리」「없어졌다」「감자를 굽고 싶다」「고요한 숲」「언덕 저쪽에 집이 있다」」「새로난 길」등.
성산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창원 오페라단장, 경남 오페라 단장 역임
1996년 제6회 편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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