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돌아왔습니다.
18일 아침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인천공항으로 갔습니다. 일년도 안 된 살림이 어찌나 늘었던지 짐을 열 개나 부치고 나니 시간이 꽤 지났더라고요. 함께 공항에 갔던 시부모님, 그리고 두 시누이들과 이별의 시간을 여유롭게 나눌 겨를도 없이 작별을 해야했습니다. 함께 살던 시간동안 잘못한 일만 떠올라 시부모님께는 차마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을만큼 죄송하기만 했고 결국 눈물바람을 한 번 하고서야 헤어졌습니다.
아침도 못 먹고 집에서 나섰던 터라 안으로 들어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남편과 함께 버거킹으로 갔고, 밥 아니면 힘을 못쓰는 저는 만원짜리 한장 들고 옆에 있는 한식집으로 갔는데 만원으로 사먹을 수 있는게 몇 가지 없더라고요. 한국방문의 마지막 끼니를 결국 순두부찌개로 결정하고 음식을 가져다 먹는데 왠지 밥알이 까끌거리며 잘 넘어가질 않더라고요. 그래도 마치 뭐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심각한 얼굴을 하고 밥 한공기를 묵묵히 거의 다 먹고 일어났지요.
인천에서 일본 나리따공항까지 거의 두시간(11시30분~1시20분), 잠을 설친 탓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리따공항에 내려서는 어디가서 쉴 데가 없나만 찾아다녔죠. 면세점을 돌면서 미처 못다한 선물 준비를 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간 곳 없이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놀이방 한켠에서 좀 처량하게 쭈그리고 누워서 한 시간 가량을 쉬었습니다. 겨우 약을 사서 먹고는 (일본 물건들에는 그 흔한 영어 표기도 찾기 힘들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오후 5시). 제일 싸다는 이코노미 석으로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비좁은 공간에서 열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륙 후 곧 저녁을 주기에 먹고 속을 진정시키는 약을 몇 알 먹었더니 약기운인지 피곤 탓인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중간에 간식도 잠 때문에 못 챙겨 먹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죠) 깊은 잠을 자고 났더니 머리는 많이 나아졌고, 비행기는 어느덧 태평양을 건너 미국대륙 가까이로 다가가 있었습니다. 다시 졸다 깨다 하면서 몇 시간을 더 날아 시카고 오헤어공항에 도착했습니다(미국시간 18일 오후 3시-한국시간 19일 오전 5시).
입국심사, 10개나 되는 짐들의 세관통과가 무사히 이루어져 예상보다 빨리 옮겨타는 비행기 탑승구까지 가긴 했는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예정보다 늦어져 이륙시간은 저녁 7시 50분으로 미뤄졌습니다. 탑승구 대기실에서 졸기도 하고, 아이들과 돌아다니기도 하고 (정작 두통도 없고 시간도 생겼는데 마땅히 선물을 살만한 괜찮은 상점이 없더라고요) 저녁도 사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비행기를 탔고 저녁 9시 15분(한국시간 19일 오전 11시15분)에야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짐이 여러개여서 혹시 제대로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많았는데 빠짐없이 도착한 것이 마지막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시간으로는 인천에서부터 미니애폴리스까지의 여행이 꼬박 24시간 가량이 걸린 셈이죠)
짐을 찾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저만치에서 아버지와 막내동생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일년만에 혹시 너무 늙어버리시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로 변하지 않으신 아버지가 왜 그리 고맙던지요. 동생은 못 보던 사이 얼굴이 좀 더 둥글어진 것 같았지만.... 차 두대에 짐을 싣고 친정집에 도착하니 10시 반이 다 되었고, 저녁을 먹고 왔다는 말에 어머니는 저녁을 다 해 놓았는데 못 먹인다고 도착하자마자 걱정이시고.... 어머니는 여전히 둥글둥글 맘좋은 아줌마 모습입니다. 살을 빼서 제가 한국에서 사오는 옷들을 다 빼앗아 입으시겠다고 큰소리를 치셨었는데 말입니다.
다리를 뻗고 잘 수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실감하며 미국에서의 첫밤을 잘 쉬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모님과 이야기도 하고, 우리 가족을 만나러 온 동생들, 올케들, 조카들을 만나니 이제 정말 미국에 왔구나하는 실감을 합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한 시를 넘기고 나니 슬슬 잠이 몰려옵니다. 한국에서는 새벽 3시 정도의 시간이니 눈꺼풀이 무거울만도 하지요.
여기는 제가 지난 20년 남짓을 살던 곳입니다. 한국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보다 더 긴 기간이었죠. 그러고보니 지난 일년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제게 마치 "한여름밤의 꿈"같기만 합니다. 그리운 얼굴들도 많이 만나고, 여름 장마, 가을 하늘, 겨울 추위, 봄 꽃을 모두 즐기고, 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고마운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모두의 열심히 사는 모습이 제게 많은 감동이 되고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저도 이곳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좋은 꿈을 꾸고나면 힘이 나듯이 말입니다. 물론 여기도 자주 들르고요. 다시 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처지가 되었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항상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자주 만나요!!!
첫댓글 한번 더 얼굴을 보아야겠다는 마음과, 혹시 네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싸워서 후자가 이겼다. 그래 놓고나니 아차, 실수였구나 하는 회한이 든다. 어쨌든, 이제 너의 삶터로 가서 좋은 꿈 이루길 빈다. 이곳에서나마 자주 만나자.
시간이 되면 친구들 같이 모여서 얼굴함 볼려고 했는데.........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서 ..돌아갔네...그래도 얼굴은 볼수 없어도 목소리라도 여기서 이렇게 얼굴볼수 있어서.......가끔 서로 안부 물어가면서.........^^
정아야 !!!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건강하고~ 잘 지내...^&^
숙자도 얼굴함보고싶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