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1. 주일예배설교
민수기 10장 10절
명절의 신앙적 의미
■ 새 달력을 받으면 많은 분이 공통으로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혹시 눈치채셨나요? 빨간 날, 공휴일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대체 휴일이 안되는 성탄절이나 석가탄신일이 주일인 경우, 깊은 탄식을 합니다. 이세빛 선생은 성탄절이 주일이거나 토요일인 경우, 올해는 예수님이 잘못 오셨다며 저한테 뭐라고 합니다. 거참~~
그런데 기념일이나 명절이 빨간 날인 것은 맞지만, 기념일과 명절의 의도가 쉬는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의 의도는 ‘기념-기억’(reminder)과 ‘축제-잔치’(festival)입니다. 이는 성경이 진작부터 가르치신 바이고, 오늘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은 애굽을 탈출하는 시점부터 공동체 규칙과 제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성경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전에도 규칙은 있었습니다. 이는 여느 작은 부족공동체라도 자신만의 규칙은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공동체가 작은 규모는 아니었으니 나름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규칙과 제도가 보다 구체적이게 된 것은 출애굽 이후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규모가 대규모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다 체계적 규칙과 제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 이후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를 출애굽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중 하나입니다.
본문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에 새로운 규칙이 하달되는 장면입니다.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렇게 “희락의 날과 절기와 초하루”에 대한 규칙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대규모의 공동체가 된 이후 필요에 의해 생긴 규칙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주제가 규칙의 기원은 아닙니다. 규칙 중에 하나인 ‘기념일’과 ‘명절’의 의미에 대해서입니다. 더욱이 이 기념일과 명절의 규칙이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내리신 규칙이니 이것의 신앙적 의미를 살피려는 것이 오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명절 연휴이니, ‘명절’을 키워드로 삼아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 그렇다면 <명절의 신앙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10절을 다시 읽죠.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본문에서 말씀하는 “희락의 날”, “절기”, “초하루”는 오늘의 키워드인 <명절>을 말합니다. 이 명절에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명절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기는 날이기보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은 감사의 근원이자 이유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 기억의 행위가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의 형식이지만, 오늘날은 예배입니다. 그래서 명절은 지금까지 살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때 우리를 기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그러나 이것을 조건적인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행위와 상관없이 우리를 늘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단, 민수기 10장 10절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너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기억하는 행위로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명절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명절은 하나님을 ‘기념-기억’(reminder)하는 날입니다.
■ 그런데 명절이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절기라는 의미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기 내 삶의 자리에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10절 끝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존재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기에 현존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계시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명절은 ‘하나님이 여기 내 삶의 자리에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삶은 명절을 통해 위로와 용기와 희망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명절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닙니다. ‘축제-잔치’(festival)입니다.
그런데 축제-잔치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잔치의 이유와 목적을 놓치지 않고 흥겨워하면 규모에 상관없이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잔뜩 차려져 있고, 시끌벅적해야 잔치라고 생각하는 이해가 있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기 내 삶의 자리에 계신다’는 신앙고백이면, 잔칫상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상다리 휘어져야 명절 잘 지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잘 차려진 상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적 명절은 ‘신앙고백’이 우선이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 제대로 신앙고백을 하면, 다음 명절 때까지 유효한 것일까요? 이렇게 유효함의 시효를 따지는 것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예배와 신앙고백을 받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24시간, 365일을 주님을 고백하며 살기 원하십니다. 사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살기’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의 의미가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고, ‘주님을 신앙고백하는 것’이라면, 기억과 고백은 연결성인 것입니다. 기억은 과거이고, 고백은 현재라고 볼 때, 기억과 고백은 연결성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연결성에 의해, ‘주님과 함께 살기’는 명절만 해당하는 것도, 명절에만 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됩니다. 명절을 포함해 모든 날의 최고의 신앙고백으로서의 ‘주님과 함께 살기’가 되어야 합니다.
■ 명절에는 덕담이 오고 가고, 선물도 오고 갑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덕담에 신앙적 덕담이 오고 가면 좋겠습니다.
과연 신앙적 덕담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자는 덕담입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지켜주시는 그 은혜,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는 그 은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건너게 하시는 그 은혜 등을 기억하자는 덕담입니다.
이렇게 신앙적 덕담을 나눔으로 서로의 신앙에 도움과 도전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명절인가요!
■ 바라기는 금번 명절부터 우리의 명절 보냄이 이러한 신앙고백적 행위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10절의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를 온전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