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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사랑하는 영혼들아!
사랑하는 영혼들아! 나의 성심을 바라보아라...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너희 정원에서
찬란히 피어나기를
너희들이 진정 원한다면
너희들의 정원 관리를 나에게 맡기고
내가 그 땅을 일구고 가꾸게 하여다오.
내가 원하는 꽃과 과일이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는 뿌리
너희가 뽑아내려고 해도
힘이 없어 뽑지 못하는 그 뿌리를
내가 직접 뽑아주마.
나는 너희 취향과 취미에 맞고
너희 성향에 적합하다고 여기고 있는
잡초들을 뽑아 버리고
사랑과 인내, 그리고 희생의 꽃과 열매가
너희 정원에서 자라게 하겠다.
열성과 순명 그리고 극기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일은
내가 원하는 꽃과 과일 나무를 자라게 하고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임을 명심하여라.
이 꽃과 과일은 너희에게 광명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요세피나 수녀의 성심의 메시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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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예수성심의 영성과 공경(恭敬), 위로(慰勞)
글 :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군사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요한 19,3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골고타 산에서 임종하신 후, 어떻게 당신의 가슴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는가를 증언해주는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당신의 가슴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그분의 사람이 되심, 수난, 죽음, 성체성사를 통해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1). 예수성심 공경의 의미, 목적
교회의 전통 안에서 교부들은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 (요한 19,34)은 우리의 인간과 세상을 살리는 구원(救援)의 생수(生水)로 보았는데, 이 예수님의 마음을 초자연적 은총의 근원)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성심의 공경의 목적은 우리 인간의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예수성심과 합하여 사랑으로 보답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5),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마태 22,37-38; 마르 12,29-30)는 첫째 계명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성심 공경은 우리 인간을 위해 당신의 삶과 생명을 내어주신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가슴의 피와 물을 쏟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리 자신들을 예수성심께 봉헌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뜻을 우리의 믿음, 소망, 신뢰, 충성, 사랑으로 따를 수 있을 때, 또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입게 되지요... 우리는 예수성심공경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끝없는 사랑, 십자가의 사랑, 구원의 사랑에 응답하면서 사랑의 기도, 희생, 보속, 실천 등으로 살고 보답하고자 하려는 것입니다.
2). 예수성심 공경의 역사적 배경, 유래
요한복음(7,37-39, 19,33-37)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늑방 옆구리에서 구원의 생명수가 계속하여 온 세상으로 흘러내릴 것을 약속합니다. 교부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흘러내리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생명수를, 성령과 함께 예수성심을 초자연적 은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도 아담의 늑방 옆구리에서 하와인 이브가 나올 수 있었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늑방 옆구리에서 교회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중세기에(1100-1350)는 예수의 심장(마음)을 은총의 샘으로 보는 교부들의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공경대상으로 삼는 경향으로 커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예수성심 공경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널리 보급하게 된 것은, 프랑스 방문회의 수녀인 마리아말가리다알라콕에게 내리신 예수성심의 메시지 덕분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말가리다 수녀에게 1673년부터 1675년까지 만 2년 동안 70회나 발현하시어 메시지를 주시었습니다.
<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 수녀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
(1). 예수성심은 무한한 사랑의 원천이며 모든 이가 사랑으로 동화되기를 바라신다.
(2). 예수성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랑은 또한 인간의 보답하는 사랑을 바라고 갈망하신다.
(3). 세상의 죄와 악을 배상(賠償)하는 탁월한 방법으로 영성체와 성시간을 바치어라.
(4). 성체성혈대축일 후 다음 금요일을 예수성심대축일로 제정하고, 성시간과 영성체를 하라.
드디어 1856년에 교황 비오 9세는 예수성심축일을 정하였고, 1899년 교황 레오 13세는 전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할 것을 선포했으며, 그 후 비오 10세는 해마다 예수성심께의 봉헌을 갱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1888년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백주교에 의하여, 한국교회를 예수성심께 봉헌합니다. 한편,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 수녀에게 1675년 6월 16일에서 20일 사이에 발현하신 네 번째 내용에 따라서, 교회는 성체성혈 후 다음 금요일은 예수성심대축일로 정하였는데, 이는 예수성심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후, 예수성심대축일을 교회축일로 설정한지 만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56년에 비오 12세는, 예수성심 공경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 회칙인 “물을 퍼낼지어다.”(Haurietis Aauas)를 반포하면서 예수성심공경은 더욱 권장되어 갔습니다.
3). 예수성심의 메시지
“나는 사랑이다. 내 성심은 그침 없이 타는 불을 제어하지 못한다. 나는 영혼을 위하여 살고 영혼을 사랑한다.” (예수성심의 메시지)
위의 메시지는 예수께서 친히 요세파(Josef Menendez) 수녀에게 들려주신 말씀인데, 교황 비오 12세는 요세파 수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예수 성심께서는 당신의 극히 겸손한 종 요세파 수녀에게 은총으로 감오(感悟)시켜 주신 예수성심 메시지의 이 책을 펴내 널리 알리게 된 것을 기뻐하실 줄로 의심치 않습니다. 이 책이 많은 영혼에게 유익을 주고, 누구나 가련한 죄인인 우리 모든 이가 천주성심인 예수성심께 신뢰를 더욱 가지게 될 것입니다.”
4). 예수성심께 공경과 위로인 성시간, 영성체 등의 신심행사
1674년 7월 2일(?)의 발현에서 예수께서는 마리아 말가리다 성녀에게 살아 움직이는 당신의 예수성심을 보이시면서 보속의 방법으로 자주 영성체 (특히 매달 첫 금요일)하고 성시간의 기도를 바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첫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내가 겪은 극심한 슬픔에 (성 목요일) 너를 참여시키겠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나와서, 성부의 의노(義怒)를 풀어드리고 죄인들의 구원(救援)을 위하여 보속(補贖)하며 성시간을 가져라. ”
우리 모두는 압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은 얼마나 많이 죄(罪)와 악(惡)에 기울어지고, 생명경시 풍조(風調)가 만연되어 있으며, 물질숭배, 물질만능 사조(思潮)가 퍼져 있다는 것을... 이 세상 곳곳에,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의 마음속에도 ...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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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15. 6. 7
마르코 14,12~16. 22~26
♠ 복음 연구
* 12절 : 최후의 만찬이 유대인들의 파스카 식사로 그려진다. 이 식사가 순례자들의 식사로서, 이집트탈출과 모세를 통한 시나이 계약이라는 과거를 재현하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의 미래를 실현하는 축제의 이중적 의미 속에서 거행되었다.
* 13절 : 일반적으로 물을 긷는 것은 여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남자는 이미 약정된 어떤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 14~16절 : ‘내방’은 나에게 속한 방 또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서 ‘내가 필요로 하는 방’ 을 뜻한다.
* 22절 : ‘이는 내 몸이다’ 는 빵이 부수어지듯 내 몸도 부수어질 것이다. 만찬의 빠스카 분위기와 제사의 의미에 주목해야한다.
* 23~24절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옛날 시나이산에서 희생의 제물의 피로 체결된 계약을 성취하신다. ‘많은 사람’이란 히브리어 등 셈족어의 표현에 따르면 인류전체를 위한 보편적 가치를 공포한다.
* 25절 : ‘하느님 나라’ 는 여기에서 메시아시대에서 벌어지는 잔치의 표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 26절 : 유다인들은 파스카 식사를 마치면서 시편 114편 또는 시편 115-118편을 감사의 마음으로 불렀다.
♠ 복음 요약 : 빵은 ‘예수 자신’이고, 제자들에게 쪼개어 나눠주는 것은 ‘당신을 송두리째 내어 준다’는 상징적 행위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계약의 피는 옛날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희생의 피를 뿌리면서 하느님과 백성이 맺은 ‘계약을 선포하는 때’를 상기한다. 이것은 제자들과의 식사가 지상에서 마지막이 될 것임을 예고하시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롭게 시작될 기쁨과 승리의 천상적 잔치를 보증하신다..
♠ 대화 방향 : 나의 시간, 능력, 소유, 젊음, 생명들이 내 삶의 자리에서 봉헌할 빵과 포도주입니다.
☞ 나는 지금 그것들을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나누고 있습니까?
♠ 참고 문헌 : ▪ 200주년 성서주해서 ▪ 청년성서모임 묵상지 보득솔
▪ 소공동체를 위한 복음 해설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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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일
2015. 6. 14
마르코 4, 26 ~ 34
♠ 복음 연구
* 26~29절 :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로 설명하셨다.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리면 땅은 저절로 열매를 맺는데, 처음에는 줄기를 내고 이삭을 패며 이삭에 가득 찬 곡식을 맺는다. 그는 씨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모른다. 씨 대신 땅이 농부의 개입과는 무관하게 자체의 결실력에 따라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 씨의 발아, 성장과 결실은 하느님이 섭리하시는 자연법칙에 따른다. 농부의 추수행위는 당신의 나라를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하느님의 결정적 구원을 상징한다. 추수행위는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의 정점이다. 이 비유의 핵심은 추수 때가 확실하게, 어떠한 인간적 영향과도 무관하게 반드시 온다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왕권도 이와 같이 반드시 낙관적 전망을 가능하게 하고 세말의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데 있다.
* 30~32절 : 예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다. 겨자씨가 모든 씨앗들 중에서 가장 작은 씨라는 것은 팔레스티나에 산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었다. 파종된 겨자씨는 발아해 올라와서 성장하여 모든 식물들 중에서 가장 크게 되고 큰 가지를 낸다. 겨자씨 비유의 핵심은 제일 작은 것과 제일 큰 것, 하느님 나라의 시작과 끝 사이의 대조에 있다. 또 겨자씨의 성장은 이 나라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셨을 때는 이 나라가 미약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 나라는 확장되고 결국에는 완성에 다다른다.
* 33~34절 :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누구이시며 어떻게 당신의 주권을 펼치시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비유라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본뜻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드러나고 믿음의 빛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설명을 듣는 특혜를 받았지만 무조건 그분께 충실하다는 보장은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분을 배신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신앙의 눈을 뜨게 하려고 애를 쓰시고 그들을 구원에서 제외하지 않으셨다.
♠ 복음 요약 :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 두 가지이다. 씨앗을 땅에 심에 놓으면 결국 엄청난 수확을 얻는다. 씨앗이 품고 있는 내적 생명력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으로 이 세상에 이미 왔다. 시작된 하느님 나라는 성장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내적 힘의 위력이 점점 강력히 작용하여 종말에는 엄청난 결실을 낼 것이다. 좁쌀보다 작은 겨자씨지만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만큼 아주 큰 나무가 된다. 보잘 것 없는 시작 안에 이미 엄청난 성취가 깃들어 있는 것이 하느님 나라이다. 보장된 미래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인 이들에게 희망과 격려가 된다.
♠ 대화 방향 : ① 생명과 성장의 신비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아무도 심거나 물을 주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도 자라게 하실 수 없다. 하느님 나라를 내 생활 안에 꽃피우기 위해 내가 할 바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② 나에게 심어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 은 잘 자라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마르코 복음 해설 (성바오로 출판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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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일
2015. 6. 21
마르코 4, 35 ~ 41
♠ 복음 연구
* 35~37절 : 하루 종일 군중들을 치유해주시고 가르치신 주님께서는 몹시 피곤하셨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배에 타고 예수님을 모시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신다.
* 38절 : 그런데 갑자기 거센 돌풍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 안에 물이 들이 닥친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무리 호숫가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들인 제자들이 있었을지라도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배 안에 가득 물이 찰 정도로 상황이 급변하였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미동도 하지 아니하시고 주무시고 계신다. 그들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예수님을 깨운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 39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대답하시기보다는 먼저 제자들의 걱정을 덜어 주신다. 먼저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돌풍이 멈추고 아주 고요해졌다. 제자들의 걱정을 먼저 해결해 주셨다.
* 40절 : 그리고 나서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겁내지 말고 믿음을 가져 라고 격려하신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라고 하신 말씀을 상상해 보면 화를 내시거나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에 못마땅해 하시는 표정이 아니다. 자애로운 표정으로 “너희 옆에는 항상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아들인 나의 말을 들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용기를 내어라.” 하고 격려하셨을 것이다.
* 41절 : 제자들은 아직도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알지 못하고 “대체 이 분이 누구시길래, 바람과 호수까지도 복종하는가?” 하고 의아해할 뿐이었다.
♠ 복음 요약 :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사실 주무시는 것 같지만 주무시면서도 제자들의 모든 상황을 보고 계셨다. 그리고 먼저 제자들의 상황을 정리해주셨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우리의 모든 상황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우리의 믿음에 걸림돌이 될 때 우리의 처지를 먼저 정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을 이렇게 묵상할 수 있다.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너보다 너를 더 잘 알고 있다. 그냥 내 안에서 행복하기 바란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어떤 능력이나, 어떤 선한 행위나, 신앙,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너희는 굳건하여라. 나는 변함이 없다.”
♠ 대화 방향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상본이 있다. 대학생 시절 친구 방에 붙어 있는 상본이다. 파도 속에서 배의 키를 잡고 있는 걱정 없는 청년의 모습, 그런데 그 청년의 옆에서 청년의 어깨를 잡고 계시는 주님께서 서 계시는 상본 이다. 또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상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스텔라마리이다. 어두운 밤 바다 속을 항해할 때 우리의 앞길을 등대처럼 밝혀 주시는 성모님의 빛이다. 파도와 바람을 멈추시는 주님을 체험한 간증을 나눠보면서 서로의 믿음에 믿음을 더해보자...
♠ 참고 문헌 : ▪ 기도하는 어머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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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일
2015. 6. 28
마르코 5, 21 ~ 43
♠ 복음 연구
☞ 개괄적 이해 : 두 건의 치유사건이 한데 결합된 치유사화다. 야이로 회당장의 딸을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게 하는 기적을 서술하는 중간에 하혈하는 여인이 끼어들었다. 마르코는 이런 ‘끼어넣기’ 기법을 자주 사용하여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고, 극적효과를 내었다.(참고 3.20) 예수님이 배를 타고 도달한 곳은 서쪽 가파르나움 근교로 추정되며 회당장과 완전수인 ‘12’를 보아 유다인의 땅임을 알 수 있다. 자연의 풍랑과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난치병과 죽음까지 관장하신다. 죽은 이를 살리는 기적은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답변하는 데 중요한 행적이었고 (마태11.5 참조), 하혈하는 여인의 치유에서는 믿음이 강조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회당장의 딸은 유다민족을 상징하고 하혈하는 여인은 타민족들의 교회를 상징한다고 풀이하여 유다민족과 다른 민족들을 함께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치유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
* 21~24절 : 예상치 못한 만남 -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많은 사람들이 호숫가로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존경을 표하며, 어린 딸의 치유를 호소하였다. 회당은 지역 유다인들이 모여 회의 뿐 만 아니라, 기도와 예배, 성경 공부를 하던 곳으로 회당장(아르콘) 한 명을 두어 회합을 담당하고 건물 관리와 보수 및 제정을 담당하는 자로, 지금 야이로는 죽어가는 딸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얹으시면” (6.18: 2열왕 4.34) 살아날 것이라고 애원하였 다. 손을 얹는 행위는 축복이나 안수, 희생, 제의 등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영육간의 건강과 온전함을 건네주는 동작을 뜻한다. (헤링턴) 예수님은 딸을 염려하는 간절한 아버지의 진정과 믿음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허락하여 그를 따라 나서고 군중도 함께 했다.
* 25~34절 : 숨겨진 힘 - 예수님께서는 인파에 휩싸여 밀려가듯 가고 있었다. 군중 가운데 하혈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여자가 정기적이든 비정기적이든 피를 흘리면 부정한 상태가 되고, 그와 접촉하는 자도 부정해진다.(레위 15.19-30 참조) 그 여인이 살아온 인생 여정은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여인들을 대표한다. 무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계속 고생하던 그녀는 수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가산을 탕진했지만 점점 악화되고, 사회에서 불결한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왔다. 마태오와 루카는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마르코는 여자의 처지를 상세하게 기술하여 그가 죽음의 경지에 이른 상태로 보여진다. 어떤 도움이 절실했던 여인은 부정한 상태인데도 사생결단하고 군중을 밀치고 “내가 저 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해도 구원을 받겠지” (28) 되뇌이면서 예수님의 “뒤”로 다가갔다. “뒤”에 서는 것은 본래 제자의 위치다. 야이로 처럼 앞에 나설 처지가 아니었다. 거룩하고 특별한 것에 손을 대면 힘을 받아 치유된다는 생각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널리 퍼져있는 사조였다. 마침내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 곧 출혈이 멈추었다. 즉시 느낄 정도로 치유의 증거는 확실했다.(29) 그러나 여인은 군중 속에 끼어 있는 이들에게 불결함이 전염되지 않을까 염려한다.(레위15.27) 그래서 발각당한 여인은 두려움에 떤다. 동시에 예수님은 당신에게서 ‘힘이(dynamis) 나간 것을’ 즉시 아신다. 예수님께서는 밀치고 당기는 군중 가운데 그런 여자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신다.(4.1)“ 예수님은 그 사실을 공표하고 싶으신 것이다. 누구인지 살펴보시는 예수님께 그 여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한다. 이제 그럴 리가 없다고 빈정대던 제자들이 머쓱해진다. 예수님이 그렇게 함으로써 숨겨진 종교적, 사회 문제를 드러내 보이신다. 가난하거나 병을 치료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과 사회적 종교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제기하며, 정결법 배후에 감추어진 위선을 폭로한다. 한편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 힘이 두려움에 떤 여인의 믿음으로 기쁜 소식이 그 여인에게 전해지고(34절), 네 갈래의 축복을 받는다. 너는 구원을 받았다.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지거라. 이로써 여인은 자매이며 딸이 되었다. 그리고 치유된 것은 옷이 아니라, 믿음이다. 또 하나의 선물은 평안이며, 죽음을 살아 왔던 여인이 다시 살아 공동체 안에 살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얻은 건강을 잘 유지하라고 하신다. 순간 특별한 은총의 체험으로 예수님이 가져다 준 기쁜 소식의 살아있는 증인이 된다.
* 35~43절 : 죽이는 상황과 살리는 상황 - 여인이 병이 나았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있을 때 죽음 소식이 전해진다.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야이로의 딸이 죽었으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35)라고 전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두려워하다’ 란 말은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 사용되는 구약의 전형적 어구다. (창세15.1:21.17:26.24:46.3 등등) 두려움의 반대는 믿음으로 앞 문장의 하혈하는 여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듯이, 여기서도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주어질 것을 시사한다. (마태28인.5 : 루카1.13 참조) 예수님은 중요한 일에 함께 했던(9.2:14.33:) 베드로 등 세 제자만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신다. 집은 치유하고 가르치는 곳으로 나타난 바 있다.(1.29-31:2.1-12) 예수님이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울며 떠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음이 확실해 보인다. 유다교 문헌에 아무리 가난해도 상을 당하면 최소한 피리 부는 사람 2명과 곡하는 여자 한 명을 쓰도록 규정 되어 있다. (미슈라) 사람들은 예수님 현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죽은 아이가 잠을 자고 있다‘ 는 (현재형) 예수님의 말씀(39절 참조, 1테살4.13-18)을 다들 비웃는다. 예수님 안에서 자기들 가운데 현존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지 못함을 말해준다. 그분의 현존 안에서, 권능 안에서 죽음은 한낱 잠에 불과하다. 예수께서는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서슴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시신 접촉은 부결하다) 아람어로 “탈리타 쿰 (Talithakoumi 새끼 양아, 또는 젊은이야) 일어나거라” (2사무 12.3참조) 하시자, 소녀는 ’곧바로‘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호칭이 아이에서 소녀로 바뀌면서 소녀가 12살이었다고 밝힌다. (결혼적령기) 그러자 조금 전까지 비웃었던 사람들이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인간의 판단과 하느님의 권능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예수님은 인간의 질병과 죽음에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주님이심을 드러내고 (12.27), 지금이 메시아의 시대임을 알려준다. 이토록 놀란 사건에 대해 마르코의 특징인 함구령을 명하신다. (43: 참조 1.44:7.36) 이 명령은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가 ’예수부활의 빛 아래서 이해되고 알려져야 한다‘ 는 ’메시아의 비밀‘ 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9.9참조)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태도를 목격할 수 있다.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인간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생활을 염려하신다. 물질적인 생활은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충만한 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생명을 주는 먹을 것은 무엇인가? 마르코는 6장부터 ‘먹을 것’을 극명하게 소개할 것이다.
♠ 복음 요약 : 복음은 여인이 하혈병을 얻은 무렵, 태어난 아기가 자라던 열두 해 내내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되던 날 하혈하던 여인은 치유되고 아기는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전한다. 두 여자는 절망 가운데 부정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해 군중을 헤집고 예수님 뒤로 갔으며, 아기는 죽은채로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주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치유되고 소생되는 이야기는 ‘기적 이야기들’로 짜여 있지만 기적을 뛰어넘는 예수님이 두 여자에게 건강과 존엄성과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 그것은 믿음과 구원이 주제다. 열둘은 완성된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두 여자의 열두 해는 완성을 향해 나가는 시간, 하느님을 깊이 깨달아가는 시간일 수 있지만, 여인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고 소녀에게는 어쩌면 세상에서 홀로 서 보지 못한 안타까운 생애의 종말에서 희망을 가진 그 믿음이 본인이든, 다른 사람을 위한(야이로) 믿음이든 관계없이 겸손 되이 그분께 나아갈가 때 응답을 받는다. 이는 분명 예수님과의 강렬한 만남의 체험, 그분께 손을 대고 그분의 손에 이끌렸던 감각의 기억은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나침판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즉 우리 자신이 은헤를 청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도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만져보는 하느님 현존체험의 본보기인 듯 보여 진다. 마지막으로 ‘일의 중단’이다. 예수님께서는 딸의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 야이로의 조급한 마음을 아시면서도 도중에 당신 옷에 손을 댄 사람을 찾느라고 그리고 여인과 대면하여 시간을 허비하신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의 일을 여러 번 방해 받는다. 기도하신 때는 베드로가 (1.35-39),회당에서 가르치실 때는 중풍병자가(2.1-12) 그밖에 10.48 등에서 끼어 든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을 밝히고 그대로 행하신다.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울부짖음을 귀여겨들으시고 우선적 일에 먼저 응답하신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 시대에 불결한 자로 판정받은 사람은 정결법에 의해 소외당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치유하여 온전한 사회생활을 하게 해 주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빈민촌, 노점상, 불구자 정신병자 에이즈환자 나병환자 등등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려하는가? 그들을 대하는 우리 신앙인들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에콰도르의 최 신부님과 베로니카 수녀님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나누어보세요.
② 정보화시대에 다 쫓기듯 살고 있다. 그래서 나와 무관한 일로 나의 일과 생활에 관여하기를 회피하게 된다. 혹시 소외된 이들의 긴급한 사항에 나의 일을 중단하게 되면 기꺼이 응답할 수 있을가? (예 : 사마리아인의 비유)
♠ 참고 문헌 : ▪ 예수님을 따라 (성서가족을 위한 마르코 복음서 해설)
▪ 예수는 누구인가? (마르코 복음 읽기. E.M.발란친 지음 김수복 옮김 / 성바오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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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 스케치 >
매번 같은 수도원길이지만 다른 느낌은...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기록원 : 권 토마 (순)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One who is being instructed in the word should share all good things with his instructor.) 라는 오래 전 ‘성 바오로 사도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들려주셨던 것들’ 을, 그 중에서도 ‘하찮은 것’이라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의미인 '모두' 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수도원으로 향한다. 먼저~ 사람들 사이는 조그마한 일에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서로를 위해 주는 마음에서 부터 비롯됩니다. 대단히 큰 것을 바라기보다는 조그마한 관심이 이를 말해줍니다. 저희 안산팀은 전주에서 올라 올 때에 별로 해드린 것 없는데, 요번엔 전주팀이 안산으로 오지 않고 수원으로 해서 참석했습니다. 안산에 부담을 준다고 해서입니다
저희 안산팀은 전주팀에게 별로 해준 것도 없구, 전주 내려갈 때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요번에 안산으로 오지 않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마 이런 서로의 이런 마음이 서로를 배려하는 맘인 것 같다. 저희 안산팀은 일찍 안산을 출발해서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조금 늦게 서울팀, 그리고 전주팀이 오셨다. 수도원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이 가시미르(상원)신부님과 함께 토요일 평일미사로 시작합니다. 최 바오로마리아 창설신부님과 만난 계기를 말하면서 강론이 시작된다. 그 때의 시각이 12시 정각....
* 십자가의 삶 - '관계에서 힘들 때 서로 사랑하여라' 입니다. 단순한 소박한 삶 그리고 실천적인 신앙을...
* 습관화 - 바뀜 - 장기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 벅차게 하지 말고 - 예수님의 대상자(?)
이러한 단어를 소재로 여러 가지 얘기를 쏟아내신다. 3.일반 본당 미사에서 흔치 않는 설교들을 이어나가십니다. 감정적이고 마음을 때리는 말씀들이었지만, 정작 이를 기록하는 이의 어둔한 귀로 들려오는 단어를 나열하는 부족한 면이 보이지만, 그 진실은 그 자리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느끼기에.. 이를 차지하려고 참석하시려는 이들의 선물로 남겨두기로 한다.
오늘도 미사 후 수도원밭에서 수확한 야채, 그리고 전주팀이 준비해 오신 고기를 푸짐하게 먹고 힘을 내어서 열띤 회의를 기다린다. 오늘은 다가올 ‘큰모임’ 일정조정을 위해서 코이노니아는 각 팀에 했던 것으로 대체하고, 오늘은 생략한다. ‘큰모임’ 일정에 관한 의견은 지난달에 미처 못 다한 것을 마저 하기로 한다. 조정봉사자가 큰모임 일정안을 준비해 오셨다. 신앙고백, 성경암송, 코이노니아가 중심적인 일정이 된다. 전주팀에서 요구한 남양성지의 일정은 전주팀 등 필요로 하는 팀만의 행사로
하기로 하고, 전체모임은 수도원에서 끝내기로 하였다.
조정은 신앙체험담 준비와 참석자 명단제출과 모든 회원의 신앙고백서를 주문했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듣고 싶고, 남기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토요일 한나절의 시간이 너무 짧기만 느껴진다. 큰모임의 파견미사를 수도원에 와계신 가시미로 신부님께 부탁드린다. 신부님이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저희 조정을 통해 약속해 주신다. 감명스러운 모습... 일정과 준비물을 정리하면서 우리 성서형제회가 성장해야하는 것은 한 마음이지만 이를 위한 방법은 다양하게 쏟아진다,
수도원에서는 지금 우리 평신도봉사자를 위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한다. 이를 실천하는 방편으로 이번 큰모임에서는 시작기도와 헌장낭독 후 수녀님의 영성강화가 성서형제회 큰모임의 큰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하신다. 오늘 논의된 세부적인 일정과 팀별 준비물은 별도로 게시판에 기록될 것이라고 한다. 전주팀이 내려갈 시간이 다가오는 급박함속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요번 큰잔치의 방향이며 평신도봉사자의 역할에 대해서 급박하게 이야기가 된다. 특히 큰누님이신 아나스타시아께서 많은 의견을 개진하셨다.
3시의 자비의 기도는 안산팀과 전주팀이 함께 수원터미날로 가면서 차안에서 함께 했다. 기록하지 않을 개인적인 의견, 특히 공동체를 위한 여러 가지 방편에 대해서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함께 했다.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서 넉넉한 시간에 버스터미날에 내려드리고, 다음 큰모임 때 만남을 기대해 본다. 서울팀과 수원팀은 수도원에서 작별했다. 열정적으로 회의를 잘 정리해주고, 끝까지 저희를 배웅해주신 미카엘라 수녀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주님의 가르침이 새삼 우리에게 특히 우리의 자질이나 마음가짐에 상관없는 말인 '서로'라는 말이 특히 다가옴을 느끼게 하는 하루였다...
사족을 달면 '자기 맘에 드는 사람끼리만 사랑하여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여라' 라는 조건 없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한글은 길지만, 영어는 단순하네요..
Love one another as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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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즐거웠던 봉사자 월례회 날
안산 원곡성당 세르브스 팀 FB
오 스테파노 (광근)
+ 찬미 예수님
지난 토요일 날, 사강 수녀원에서 월례 모임을 가졌습니다. 수녀원에 도착하니, 10시 40분이 조금 넘은 시각에 미카엘라 수녀님께서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점심준비 차 시장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 사고 수녀원뜰 잡초 뽑고 있노라니, 서울과 수원팀에서 택시로 오셨고, 이어 12시가 거의 다 되어 전주팀이 도착하였습니다. 서울에서 3명(이강진 보나벤뚜라, 한남기 베드로, 김향자 효주아녜스), 수원에서 1명(최기동 미카엘), 안산에서 2명(권순토마, 오광근 스테파노), 전주에서 2명(이정혁 보니파시아, 김치영 아나스타시아) 총 8명 참석했습니다. 안나 수녀님께선 보육 관련 교육 가셔서 안계셨구요.
점심은 수녀님들께서 준비하신 구운 삼겹살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밭에서 따온 상추와 쑥갓으로 쌈 싸먹는 그 맛이란...
점심식사에 이어 큰모임 행사에 대해 협의한 후, 오후 4시에 수원시외버스터미널까지 전주팀을 태워다 드리고 귀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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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어제 수녀원에 다녀왔습니다. 밭에 먼저 심었던 상추와 쑥갓 외에 사강시장에서 토마토, 고추, 가지, 수박 등 묘목을 사가지고 와서 정성껏 심었습니다. 나중에 오이 묘목도 심었습니다. 날씨는 조금 덥고, 땀이 많이 났지만 그래도 수녀님들께서 맛있게 드실 수 있는 먹거리를 해 드린다는 보람에 힘든 것도 잊고 무사히 일을 마쳤습니다... 수녀원 앞에 공장이 들어서서 조망권 및 소음이 수녀님들한테는 걱정되는 일이지만, 잘 적응해 나가시는 수녀님들 모습에(...) 개인적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들러서 묘목을 더 심어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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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
+ 찬미 예수님
수녀님들의 정성으로 구워진 삼겹살과 신부님께서 씻어 주신 상추의 조화는 참으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먹는 저희는 즐겁고 행복했는데, 기름 범벅인 팬과 그릇, 설거지 하고 뒷정리 하시느라 고생하신 수녀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영등포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 김 효주아녜스(향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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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큰모임 스케치 >
사강 수녀원에서의 따뜻한 큰모임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기록원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본문을 쓰기 전에 요번 ‘큰모임’은 이글을 쓰는 저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형식과 절차에만 억매이는 것을 싫어했던 제가 보고서를 쓰면서 제가 상당히 그 틀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왜냐하면 저도 소위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답습하고 있었지요... 어느 정도 전체의 프로그램 일정을 숙지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봉사자들 간에 나누었던 바를 정리하고, ‘이에 맞추어서 제가 듣고싶은 내용만을 수록해온것이 아닌가’ 하는 스스로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을 먼저 전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들은 바를 토대로 작성되어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장 큰문제가 코이노니아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모습인 코이노니아의 대화와 사진을 필요로 했는데, 정작 제가 참여한 코이노니아의 동정만을 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파견미사 때의 신부님의 강론 중 '할 수있는 작은 것부터 먼저 행하고 주님께 맡겨라...'입니다. 큰모임을 바라보는 보고자의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강에서의 따뜻한 ‘FB 큰모임’은 시작된다...
급박히 진행되는 행사를 쫓아가기가 어려워서 저의 눈으로 바라본 모습들을 적어 본다. 근래에 보기 드문 많은 인원이 참여하여서 걱정했던 대로 수도원의 경당은 꽉 찼다. 원곡 세실리아 자매님의 주송과 우리 모두의 합송으로 묵주기도를 드림으로 큰모임은 시작된다. 그 전에 일찍 도착한 서울팀에 의해서 접수대와 마당의 앰프와 스피커시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조정봉사자가 시작기도, ‘성서형제회 헌장’ 낭독과 프로그램 소개를 한다. 그리고 이어서 팜필로 형제님의 진행으로 각 지역단위별로 인사소개를 한다. 그리고 전주 ‘차기조정’의 사회로 6명이 신앙체험을 고백한다...
감동적인 내용이지만, 차마 보고자가 그 내용에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쓸수가 없었다.
그리고 삼종기도로 오전행사를 마친다. 각지역에서 준비한 점심만찬이 실내외에서 일어난다.
오후는 안산의 자매님이 준비한 리크레이션으로 시작하고, 각 조별로 코이노니아 모임이 이어진다
제가 속한 4조는 유아원 지하에서 데레시아 수녀님과 함께 하는 코이노니아를 했다. 어느 70세 되신 형제님이 개신교신자인 배우자의 관계를 얘기한다. 수도자와 큰누님의 수고로 이루어진 나눔이다. 이어서 짧은 성서암송이 이어지고, 파견미사가 외방선교 사제인 이 가시미르(상원) 신부님에 의해서 진행된다. ‘내 자신을 사랑 안에 머물러라‘고 정리해주신다... ‘너무 큰 것을 바라지도 주지도 말고, 준 것을 잊어버리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 맡겨라’고 하셨다. ‘이웃에게 희생하라’ ‘작은 것부터...’ 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크게 와 닿는 것 같았다. 전주팀이 남양성모성지를 순례한 후 귀향하시기에 서둘러서 마탕에서 한 캇을 찍고 헤어졌다...
보고자는 보고서를 마무리 짓기 위한 방편으로 끝나고 나서 가시미르 신부님과 팜필로형제님과 레오형제님 등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에는 전주팀은 다음 목적지인 남양성모동산으로 떠나셨고, 수녀님들은 뒷정리를 하시느라고 분주하다. 요번 큰잔치는 수도원의 좁은 장소에서 하다보니까, 다들 특별히 휴식시간 없이 쭉~ 연결되는 듯 해 보였다.
이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우리들을 위해서 푸짐한 음식상을 차려 내오신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헌신적인 기도와 성령의 열매를 주실려고 귀한 네잎 크로바와 친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수녀님들의 이쁜 헌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리 준비되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의 신앙체험담은 공감가는 대목이었으나, 듣고 나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안타까움... 시간에 쫓겨서인지 아니면 전주교구의 어느 봉사자의 긴 말씀암송에 기가 눌렸는지는 모르지만, 보고서를 쓴 이외에는 아무도 하지 않은 말씀암송도 약간 씁슬하기도 한다.
순수한 아기의 첫 걸음과 엄마와의 감동적인 대화는 엄마 외에는 도무지 알수도 없는 아가의 무수히 많은 넘어짐과 옹알거림으로 비롯되었다고들 한다. 그냥 그 아가의 순수한 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이러하리라... 우리가 이 모임을 그냥 작년에도 했듯이 늘 같은 모습으로 그려내는 것보다는 새롭게 다가서는 주님의 사랑을 다시 새겨보면서 나에게도 새로이 다가서는 내 이웃,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말로는 내 형제('남자의 호칭도아니고, 피를 나눈 사람처럼 하느님이 지으신 다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 의 모습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무엇인가를 보여진다면 더 진솔된 나눔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맘이다.
그밖에 제가 듣지 못하는 많은 좋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이를 적을 수가 없었다. 이들 중에는 저의 무능함이 들어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동의를 얻지 못해서 차마 그 감동적인 모습들을 표현하지 못하고 보고자의 맘 속에만 품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이들 모두가 자유스럽게 우리 안에 흘러나가기를 빌 뿐이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 (필리비 3,8ㄴ ~ 9ㄱ) 이런 강렬한 사도 바오로의 고백을 듣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이 고백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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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2 >
우리 집 꽃나무 영성
전주 호성동성당 성모성심팀 FB
박 아폴로니아 (영화)
브겐베리아 식물만도 못한 내 모습...
브겐베리아 꽃은 화려하고 향기는 없지만, 누구와 다투지 않아 넌 예쁘고, 가시가 있어 찔리면 아프지만, 넌 절대 먼저 찌르는 법이 없어 예쁘단다.
내가 널 무조건 사랑으로 예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 수많은 사람이 나의 스승이듯 내가 널 옮겨 주지 않으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없이 활~짝 핀 너~ 브겐베리아를 보며 나 자신 잘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한단다.
넌 누구와 다투는 일이 없다는 걸 나는 안단다.
어느 날 이름도 모르는 여러 개의 풀이 너의 몸을 감싸고 올라가도 넌 단 한 번도 짜증내거나 화내는 일 없이, 또 활짝 핀 꽃으로 나를 바라보고 웃어 주었지.
그런 너의 아름다움에 난 부끄러움을 느낀단다.
일 년에 한두 번 영양제 한 주먹주고 물밖에 준 것이 없는데, 향기 없는 꽃이 라도 추위에 피기 싫다고 앙상한 가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향기는 비록 안 나지만 일 년 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줘 고맙단다.
너를 보며 너의 아름다운 영성을 깨닫게 해주신 우리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너를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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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5년 4월 1일 ~ 30일 / 큰모임 행사 후원금 관련 수입 지출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