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해 가방을 사 준 남편
전 제 와이프를 2년간 쫒아다니면서
겨우 겨우 만남을 갖게 되었고
그 뒤 2년간 연애하고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저에겐 성공인 결혼이지만
저희 집사람에게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동창생들과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지요.
일 년에 한번쯤은 꼭 만나는 터라
와이프들 끼리도 말도 잘하고
어색하지도 않고 재밌게 놀다 오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날도 모처럼의 만남에 즐거운 식사자리를 함께 했고
각자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집사람 역시 즐거운 듯 내내 웃고 있었기에,
그날의 사건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올 초에 와서 동반 모임 연락이 왔고
집 사람에게 모임 날자를 말해 주었습니다.
날짜가 잡히고 당일이 되었는데...
집사람이 몸이 좀 안좋다고 하면서 “당신만 그냥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많이 아픈 건 아니니 애들과 함께 집에 있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전 혼자 모임에 가게 되었습니다.
집사람 성격상 내가 끝까지 안가겠다고 하면
분명 아픈 몸 이끌고 그냥 가자고 나설 테니까요.
혼자 집을 나섰습니다.
모임에 나가도 집사람이 신경 쓰여서, 대화도 잘 안되고 그렇더군요
생각이 딴 데 가 있으니 재미도 없고 해서 내내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모임 중간쯤에 집사람 걱정스러워서 안 되겠다고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친구 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대뜸 자기 와이프가 실수했으니 미안하다고,
그 때 바로 사과했어야 했는데... 모른 척 넘어가려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그러더군요
전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고
주저하던 친구에게서 참 가슴 아픈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작년모임이 있던 그 날,
화장실에서 아내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제 집사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자세한건 못 들었겠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희 집사람) 가방 봤냐?, 저런 거 요즘 중고등학생들도 잘 안들고 다니지 않느냐?,
그래도 우리 나이 쯤되면 좋은 가방 하나쯤은 외출용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신발도 그렇고 가방도 그렇고
저러고 다니면 신랑이 욕먹는 거 아니냐?는 등등”
저희 집사람 행색에 대해서 이 동창들의 아내가 뒷 담화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모임 자리에 저희 집사람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 쪽을 보니 거기서 저희 집사람이 걸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아마 본인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것 같고... 어쩌면 좋으냐고...
먼저 말 꺼내기도 이상해서 모른척 하고 그냥 그 때를 넘어 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 안 나온 걸 보고...
더구나 저까지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일찍 가버리는 것을 보고...
너무 너무 미안해 하더랍니다.
진작 사과했어야 했는데 괜히 더 들춰 내는 것 같아서 말 못꺼냈었다고,
그래서 더 미안하다고,..하더랍니다.
친구 녀석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아니었으면 더 좋은 남자 만나 호화롭게 떵떵거리며 살았을 사람인데,..
결혼한 뒤 진짜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서
제 뺨을 치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고생 안시키겠다고, 호강시켜 주겠다고, 나만 믿으라고,
큰소리치며 데리고 온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고생만 시키고, 차라리 좋은 남자 만날 수 있게 매달리지나 말 것을,..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습니다.
임신 막달까지 기어이 회사 나가고 아이는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고 ...
좀 적게 쓰더라도 아이만큼은 자기가 키우겠다고 ... 참 억척스럽게도 산 사람이죠
집구하느라 받은 대출금에 이것저것 나갈 돈이 많은데도
돈 때문에 단 한번도 저에게 스트레스 준적도 없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보면 참 똑부러진 여잔데...
제 앞에서 마냥 바보스럽죠.
본인이 알고 있는 말을 해도 처음 듣는 사람마냥
"와 – 진짜? 그래?" 맞장구를 쳐줍니다.
아무리 재미없는 농담을 해도 개콘 볼 때 보다 더 크게 웃어주고
장동건 원빈보다 내가 더 잘생겼다고... 당신은 모르는 것이 없다고...
말도 안되지만 듣기 좋은 립서비스도 아낌없이 해주었지요
그것은 제가 좀 소심한 편이어서 좀 당당해지라고...
제 아내가 기 살려 주었던 것 같습니다.
속도 깊고 성격도 좋고 예쁘기까지 한 제 와이프인데... 전 참무심한 남편입니다.
모임 때 입을 옷 없다고 투정 한번 안 부려서... 전 입을 옷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가방 같은 건 생각조차 못해 봤습니다.
발이 편해야 한다며 내 운동화는 비싼 것으로 사오면서...
정작 본인 신발은 사지도 않고, 덤핑 싸구려 제품을 샀습니다.
왜 미처 몰랐을까요,
왜 그런 거 신경 써주지 못했을까요,
아내도 여잔데 ...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거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
얼마나 챙피했을까,
얼마나 서러웠을까,
전 정말 뭘 잘했다고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깟 가방이 뭐라고,
그렇게 상처 받았으면 하나 사지, 아니 사달라고 라도 하지...,
화라도 내지, 바보같이,... 그 돈 쓴다고 굶어죽는 것도 아닌데,
맘 같아선 당장 백화점으로 가서 카드로 가방하나 사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그 돈은 또 고스란히 제 집사람 몫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싶어
돈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용돈을 받아쓰는 처지라
비자금을 만들기 어려우니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한번은 왜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냐고 웃으며 묻더라구요
사고 친게 좀 있어서 메꿔야 해서 아르바이트 한다고 하니까!
그 뒤로는 한번도 묻지도 않았습니다.
저 같으면 한번쯤 의심할 만도 한데... 말입니다.
드디어 저번 주에 가방 살돈을 다 모았습니다. 참 들뜨더군요
여기거지 인터넷 검색도 하고 해서
대충 사이즈 색상, 브랜드들은 알고 갔습니다.
참 한심한 게 여지껏 살면서 집사람 취향도 전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건 얼마에요 저건 얼마에요 묻기도 챙피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200만 원대에 가방 하나 추천해달라고 해서
조언을 받아 사 왔습니다.
그날 저녁 집사람에게 가방을 줬는데...
전 제와이프 눈이 그렇게 큰 줄은 첨 알았습니다.
진짜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그렇게 아이처럼 좋아하는 집사람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집사람이 묻더군요
어디서 났냐고, 그래서
그 동안 아르바이트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고마운 건 난데, 미안한 것도 난 데,..
그리고 그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집사람에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은 저렇게 이쁜 아들 딸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그러네요.
그리고 옷도 한벌 사자고 했더니 옷은 필요 없답니다.
그래서 제가 “좋은 가방들고 옷이 후지면 저 가방도 짝퉁으로 본다”고 “옷 한 벌 사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가방이 좋아서 뭘 입어도 메이커 같을 거라고 받아쳤습니다.
정말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래도 옷 한 벌은 꼭 해주고 싶어서 “잔소리 좀 하지 말고 한 벌 사자”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정 그러면 나 이거 사주라” 하면서 컴퓨터 앞으로 가대요
그리고 사이트를 열더니 원피스 하나를 보여주더라구요
얼마나 자주 들어 갔는지 망설임도 없이 한 번에 클릭클릭, 가격은 5만 6천원,
저거 하나 사기가 어려워서 얼마나 들락거리며 쳐다 봤을까?
그런 아내를 보니 또 마음이 짠해져 오더라구요 휴,...
“저게 이뻐?” 라고 묻길레...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서 인터넷으로 원피스 하나 사줬습니다.
- 간증 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