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이겨내는 힘은 너무도 소름끼친다. 자신을 비하하고, 자학하며, 죽기만을 갈망하는 사람들도 생명이 타들어가는 순간에 이르면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이를 물고 투쟁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생명에 집착하고 부질없는 욕심을 갖는 것일까? 무섭고도 마음 아픈 일이다.
생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빛이다. 그저 바람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길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생명이다. 그래서 거스를 수 없을 땐 맞이하고 준비하는 게 좋다고 본다.
갖가지 질병으로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편안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호스피스병동. 영화 ‘뜨거운 안녕’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아니,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무거운 시선을 꼬집는다. 죽음, 상실, 방황 등 인간의 삶과 관계된 성찰은 언제나 깊은 사색을 동반하지만 반대로 환한 미소와 열정, 사랑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이 영화는 호스피스병동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일종의 ‘시위’ 같다.
이 영화는 꿈과 삶에 대한 애착이 있는 인생이라면 죽음에 이르는 과정 또한 값지고, 죽음 또한 뜨거운 것이라고 짚어준다. 생명을 더 연장하고 싶은 바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놓지 않은 의지를 통해 죽음을 평화로 인도하는 것이다. 영화는 시한부 환자들의 유쾌한 캐릭터를 묘사한 에피소드나 병원 밴드 ‘불사조’의 오디션 참가기 등 유머러스한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전하려는 메시지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와 죽음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지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불사조 밴드의 멤버들은 전형적인 코믹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전직 조폭 마동석은 드럼, 나이트클럽 알바 임원희는 기타, 야무진 아가씨 백진희는 베이스, 도촬이 취미인 전민서는 건반을 맡는다. 이처럼 하나 같이 톡톡 튀는 캐릭터에서는 시한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은 코피를 쏟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밴드에서 자신의 역할을 더 잘 소화하고 싶어 욕심을 낸다. 서로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싸움도 불사한다.
환자복만 입었지 아픈 기미가 없고,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발랄하고 유쾌한 캐릭터들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캐릭터는 남택수 감독이 포천에 위치한 모현 호스피스 병원에서 수 년 간 봉사활동을 해오며 만난 실제 캐릭터들이다. 남 감독의 눈에는 호스피스병동은 시한부환자들이 무기력하게 죽음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었다.
여기에 호스피스병동에 사회봉사를 하러 온 아이돌스타 이홍기가 합세한다.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트러블 메이커다. 하지만 이홍기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다. 이홍기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치료를 포기해서 어머니가 사망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죽을 날을 받아놨지만 끝까지 생을 즐기려는 시한부 환자들의 모습은 그런 이홍기에게 큰 충격을 준다.
이홍기가 호스피스병동에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지막에 느낀 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죽음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인간의 삶은 한줄기 강처럼 한없이 고독이 뻗어 있다. 또 언젠가는 죽음의 고통을 견뎌내며 스스로 인생의 결말을 맺어야 한다. 이것을 이홍기는 호스피스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