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현각스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은비(이순만)
(이글은 지난번에 올렸었는데,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올려봅니다.
약 9개월간의 병석을 털고 일어나보니 참으로 많은것들이 변해있었고 또 변해져 보였습니다.
이렇게 병석에서 일어나게된것은 아내의 희생과 가족들의 응원이 힘이된것은 사실이지만 매일아침 병원의 그 좁은 법당에서 올렸던 절절한 나의 기도를 부처님과 불보살님께서 내려주신 가피 라고 믿습니다.
솜씨없는 글이지만 지금부터 저의 경험담을 여러 불자님들께 올려드립니다.
지금도 병석이나 고통속에서 부처님께 그리고 불보살님께 기도하시는 분들께 포기하지마시고 끝까지 메달려서 축복을 얻어내시라고 응원드립니다.그리고 불보살님은 분명히 계시며 늘 우리 곁을 보호하신답니다.
2009년 11월초쯤 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듯하여 퇴근길에 인근 약국에들러 감기약을 사서 복용했습니다.
도시생활을 접고 반촌으로 내려온탓으로 직장인 김해 진례에서 울산 까지는 꽤 먼거리였지만 즐겁게 다녔지요.
약 일주일후 또 코감기 증세가 나타나고 좀 피곤하기도하여서 이번엔 직장 부근의 약국에서 약을 구입,복용했습니다.
12월이 되면서 회식이다 미팅이다 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던중 한쪽 코가 막혔습니다.
코감기가 질기다...라고 생각하며 직장 인근의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한후 주사를 맞고나니 한결 좋아졌고 그 이후 그런 증세가 있을때마다 그 이비인후과를 찾아습니다.
해가 바뀌고 1월중순 즈음에 얼굴이 조금씩 부어 오르더니 한번씩 욱신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즈음 동네 어르신들이 가까운 사찰에 유명한 대침(큰침)을 잘 놓는 용한 스님이 있다며 권유하시길래 "믿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스님을 찾아뵈었는데,자신있게 대침을 제 코 속으로 넣어 침을 놓고 그외 얼굴에도 몇군데 침 을 놓았습니다.
코 와 얼굴에서는 검붉은 피가 펑펑...
그러기를 일주일에 한번씩하여 한달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밤만되면 통증으로 잠못이루고 새벽녁즈음 잠시 잠들었다가 아침이면 입에서 붉은 핏덩이를 뱉어내곤 했습니다.
2월이 가고 3월이 오면서 동백꽃이 피고있던 어느날 아침 집뒤의 텃밭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다가 검붉은 핏텅이를 몇번 쏟아내고는 걱정이 시작되었고 출근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약 한시간씩 통증으로 인해 쉬어야만 했지요.
3월 중순경 좀 큰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축농증"이라며 수술을 권장하길래 그자리에서 일반검사를 했고 방사선전문병원에서 씨티(C.T)촬영을 해오라길래 방사선병원으로 갔습니다.씨티촬영후 방사선병원원장님이 면담을 요구하길래 자리에 앉으니 "사진속의 증세는 축농증이 아니라 얼굴 내부 전체에 큰 혹이 덮여있으며 이미 위로는 눈과 귀 아래로는 잇몸뼈까지 파괴되었다"라는겁니다.
정말 사진을 보니 한쪽얼굴은 캄캄하게 그리고 다른 한쪽은 희게 나왔습니다.
그 사진을 들고 이비인후과로 돌아와서 의사선생님께 보였더니 깜짝 놀라면서 "어서 큰 병원으로 가보시라"고 합니다.
너무 기가막힌 그 이비인후과 의사의 말을듣곤 그자리에서 어느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교수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것도 보란듯이...사실 그 자리에서 타 병원,그것도 대학병원의 교수에게 전화를 한다는 그자체만으로도 나는 이미 교만해져있었고 내 맘속으로는 "이 조그만 이비인후과의 네까짓 의사가 암 이라고 진단한것이 과연 맞을까?"라는 생각과함께(씨.티 사진을 이미 보았음에도...)
다음날 타종교 대학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촬영한 씨.티 를 본 그교수님은 가만히 내 콧속을 들여다본후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얼굴속에는 생각할수없을 정도의 잔뼈들이 많이있고 이뼈를 거의 다 깍아낸후 수술을 하는방법,또하나는 성형을 포함한 대수술..두방법이 있는데,우리 병원에서는 불가능한 수술입니다."
항생제 주사와 함께 20일분의 약처방을 받아 아무 생각없이 돌아왔습니다.
머리속엔 그 교수님의 말이 쩌렁거리며 울려댔지요...
이틀이 지난후 B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교수중에 아주 유능한분이 계시다 라는 소문을 듣고는 즉시 예약을 한후 예약날짜에 B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드디어 내차례가오고 교수님이 진찰을 시작한지 15초도 안되어 탄식을 합니다.
"어~휴...죽을라고 환장했지...어찌 이리되도록 그래..병을 방치해놨단말이요!!!???"
"지금 당장 조직검사해서 내일중으로 염색체 검사까지 해봅시다"
잔뜩 겁을먹은 나는 그날 밤과 그 다음날 밤까지 잠을 거의 설쳤고 약속한날 오전일찍 병원에 도착한 나는 집사람과 함께 이비인후과로 갔습니다.
교수님이 나보고는 아랫층에가서 피검사를하라고하고 집사람에게 면담을 하자고합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지요."할말은 제게하시지요.."
우리 부부는 교수님앞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암 입니다."
주저하지도 망설임도 없는 간략한 한마디였습니다.
"치료하면 됩니다.혈액종양내과로 가셔서 입원하세요."
인사를 겨우하고 돌아서서 걸음을 걷는데 다리가 풀려 그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눈앞이 노오래져 오고 머리속이 아무것도 없이 하얗게 된듯합니다.
순간 가슴이 복받혀 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왜...무었때문에 ...나에게 이런 병이 왔습니까?"
머릿속에는 가족의 얼굴만 스쳐가고 무기력해진 나는 오가는 사람들틈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수없었습니다.
혈액종양내과 라는 생소한곳에 가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었고 표정들은 하나같이 어두웠습니다.
내 차례가되어 담당교수님앞에 앉았습니다.
"지금바로 입원하시지요..."
설명도 확인도 필요없는 상황이었지요.
왜냐하면 그즈음 제 왼쪽 눈의 흰동공이 푸른색으로 변해있었고 그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면 뇌종양으로 변해 짧은시간내에 사망할수도 있다는 교수님의 말을 들었기때문입니다.
3월26일...입원을하고하루만에 기본검사를한후 이튿날부터 약 5일간 정밀검사를하고 그것도 부족한지 척추에 구멍을 두군데나 뚫어 뭔가를 채집해서 검사를했습니다.(그때 죽는줄알았음)
병명을 알게되고 이 병은 수술보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통하여 병 을 완치하는것이라고 설명을들었고 나는 노트에 적었습니다.
9일째되는날부터 3일간 하루 8시간씩 항암제를 맞았습니다.사실 그것은 주사를 맞는다는 표현보다 그냥 몸속에 들어부어넣는것이었지요.1초에 3~4방울씩 떨어지는 항암제...하루에 3 리터 이상이었지요.
그렇게 3일간을 치료한후 12일간의 입원을마치고 가퇴원을한후 집으로왔습니다.
밥맛도 없고 먹고싶은것도없고 심지어 물 조차도 마시기싫었습니다.소위 말하는 항암치료의 후유증? 같은것이었지요.
몸무게가 평소보다 약 20킬로그램이 빠졌으니 혼자 앉을수도없는 힘든 상황이었지요
집으로 돌아온지 3일쯤 지났을때 머리가 가려워 손으로 머리를 긁었습니다.순간...한웅큼 빠지는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말도못한체 손만 부르르 떨어야했습니다.머리카락이 빠지는수준을 넘어 이미 흘러내리고있었습니다.
정말 모든걸 포기해야한다는 순간적인 절망이 나를 덥쳐왔습니다.
---------------------------------
이 지루한 싸움이 언제 끝날지 그리고 누구의 승리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고 암 이란놈도..그리고 의사와 간호하는 가족조차도...
몇일이 지났는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 필요조차 없는,마치 길 가에 계절따라 피었다가 계절따라 져버리는 무명의 들꽃같은 심정으로 법당을 향했습니다.
육중한 문을열자 (평소에는 가벼운 문 인데 내가 너무 힘이없어서..)대학병원이라는 생각은 말끔히 없어지고 단아한 모습의 관세음보살님이 앉아 계시고 우측에는 협시보살인 예쁜 남순동자가 주불을 향해 미소로 서있었습니다.
링거를 팔에 꽂은체로 발통달린 그 무거운 쇠를 끌며 마루바닥을 드르륵 거리며 수미단으로 향했습니다.
헌향을 하고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좌복에 앉았습니다.
주위에 앉아있는 몇몇 보살님들은 연등을 만들고 있는걸봐서 곧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옴을 알았습니다.
이미 팔,다리의 힘은 빠질데로 빠져있고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질것같은 마음으로 앉아 멍 하니 있다가 입속에서 옹알이하듯 나즈막히 외쳤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그리곤 천천히...아주 천천히 절을 올렸습니다.
일배...이배...삼배...사배...오배...
열배를 채우지 못하고 나는 그 법당 마루바닥에 엎어져서 팔,다리를 벌벌 떨어대며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팔에 꽃혀있는 링거 호스에서는 피 가 역류하여 호스는 벌겋게 변해있었고 내 얼굴엔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있었습니다.
내 몸은 이미 지탱조차 할수없을 정도로 약해져있었습니다.
3천배를 몇번 올려보았던 건강인데....
한참을 그렇게 엎어져있다가 다시 일어나 절을 했습니다.
30배를 마치고 겨우 몸을 움직여서 입원실로 돌아왔습니다.
그 30배를 올리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꼭 낮게 해주십시오.지난날을 참회하고 새 인생을 살겠습니다."
암 이 발병하기전 나는 누구보다 운동도 열심히했고 약초채집을하며 등산도 자주가고 사찰에가든 집에서하든 열심히 절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
.
.
잠 이 쏟아져 왔습니다.
항암치료할때는 그렇게도 안오던 잠이 막 쏟아져왔습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찾고있는데 머리맡에 왠 아줌마가 앉아서 내 머리를 만지며 가만히 웃고계십니다.
그 손결이 하도좋아 가만히 누워서 그 손길을 받고 있었습니다.
.
.
"혈당검사 할께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잠이 깨어버렸고 비몽사몽간에 꿈속일은 까마득히 잊은체로 나는 또 링거를 꽂은체로 법당으로 가고있었습니다.
----------------------------------------------------------
매일아침 5시에 체중계를 들고 간호사 한사람이 병실에 들어옵니다.
물론 환자도 나 홀로 이지만..체중을 확인하고 간호사가 돌아가려고하면 내가 말을 건넵니다.
"간호사님..한시간정도 산책합니다."
그길로 나는 법당으로 갑니다.
헌향을하고 좌복에 앉아 조그만 목소리로 천수경을 한후 108배와 함께 관음정근을 합니다.
이미 온몸은 땀 범벅이고 다리와 허리는 후둘대지만 관세음보살님을 바라보는 내 눈길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예불을 마치고 혼자서 천천히 계단을 걸어서 8층으로 향합니다.
병실에 도착하면 으례히 그랬듯이 샤워를 잠깐하고 옷을 갈아입은후 깊은 잠에 들어 갑니다.
.
.
.
맑은 햇살아래 할머니같은 분이 서서 자기쪽으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서 그 할머니 얼굴을 자세히 봤습니다.
할머니도 아니고 그저 중년의 모습을 지닌 그 아줌마는 머리에 임금님의 사진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저쪽으로 갈껀데요...좀 비켜주이소.."라고 말하자 그 아줌마는 "저쪽길은 끝이다.이쪽길로 가면 길이 나온다,이길로 가거라.."
내가 말했지요."이 길은 꽃도없고 별로 좋은것 같지않은데요...?"그러자 아줌마는 조용히 웃으며 음절이 똑같은 노래를 반복적으로 불러주며 내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
.
"허~음!,치료중에 불편한점은 없습니까?"
회진나온 주치의 목소리에 깜짝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습니다.
.
.
--------------------------------------------------------------
내 별명은 물고기 였습니다.
스스로 내가 나에게 붙인 별명이었지요.
옆모습이 점점 물고기(쥐치)처럼 닮아가고있었고 정면에서 보면 입이 돌아가고 눈이안보이며 얼굴모양이 완전히 변해있었으니 물고기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모습이 1차 항암치료후 거의 사람모습으로 돌아왔고 음식을 먹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단걸 알고난후부터는 고추장을 병실에 숨겨놓고는 밥 때만 되면 비벼서 억지로라도 먹었습니다.
2차 항암치료가 시작될즈음 주치의 선생님이 대학 본래병원인 암센타로 발령이나시고 나는 주치의를 따라 암센타로 입원을했습니다.
꿈속의 아줌마 말씀처럼..
암센타에도 법당은 있었습니다.타종교와 함께..
그런데 그곳은 지난번 있던 법당보다 형편없이 좁고 분위기가 열악했는데 막상 좌복에 앉으면 그렇게 편했습니다.
신고식(?)날 새벽에 헌향을 하고 천수경독경을 하는데 왠 아줌마한분이 병원복차림으로 링거도 없이 오셨습니다.그리곤 삼배후 앉아서 정근 1000주를 집어들더니 "관세음보살"하시며 돌리시더군요.
제가 108배 정근을 하고나니 아줌마는 그새 가셨는지 보이질않았습니다.
다음날도,그다음날도 그 아줌마는 병원복만 입으신체로 와서는 3배후 1000주 정근을 하시다가 가셨습니다.
새벽에는 모든환자들 손에는 링거가 다 꽃혀있거든요..가령 오후에 그 아줌마를 법당에서 뵈었는데 그냥 병원복차림이라면 당일입원환자로 이해가 가지만 벌써 몇일째,그것도 이른아침에...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4일째 되는날 아침에 나는 그 아줌마에게 물어보려고 맘먹고 법당으로 갔습니다.
이른아침의 법당은 이미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혹시..?하며 얼굴을 디밀어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 아줌마보살님이 먼저 와 앉아 1000주 정근중이었습니다.
저도 조용히앉아 천수경을 외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그 아줌마의 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그 순간 정말 놀랐던것은...그 아줌마의 손이 꿈속에서 보았던 그 손과 똑같았던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금강합장을 하며 "관세음보살님!"하고 외쳤습니다.내목소리가컸던,작았던간에...
천수경을 중단하고 일어서서 관음정근만 했습니다.
염주도 걸지않고 시작한 관음정근은 끝날줄모르고 계속되었고,나중에 청소하는 용역아줌마가"보일러를 틀었나...와이리 덥노..?"라는소리를듣곤 정근을 멈추었습니다.법당안은 알지못할 더운 열기로 가득했고 내몸은 마치 물에빠진것처럼 온통 젖어있었습니다.
정말 나에겐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다음날 아침 그 아줌마는 더이상 법당에서 볼수없었습니다.
그날오후 주치의께서 부르시길래 가보았더니...
"3차 끝나면 사진한번 찍어봅시다.지금 상황으로 봐서 상당히 치료가 잘되고있고 환자본인이 잘 견뎌내니까 중간결과가 궁금하군요.."
.
.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
주치의와 의사,간호사등등 무려 15명 정도의 의료진들이 내 방으로 왔습니다.
그 넓던 1인실 방이 꽉 찰정도로...
주치의가 내게 말합니다.
'이 데이터가 사실이라면 기적입니다.'
동위원소검사등..내몸의 모든부분을 정밀촬영한 데이터를 보았는데,암(癌)세포는 그 어느곳에서도 없었습니다.
내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치며 축하해주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생각이 났습니다.
'관세음보살님...'
(항암제를 맞을때에는 늘 그 항암제를 관세음보살님이 주시는 청량수 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주사를 맞았답니다.)
사실 혈액암은 백혈병보다는 좀 독하지만 암(癌)중에서는 좀 순한 암 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장기쪽에 발병하면 사망률이 높고,얼굴에서 발병하면 뇌 쪽으로 가던지 아니면 아래로 내려와 매우 힘들게 한다고하더군요.
주치의와는 퇴원후 방사선치료를 약속하고 그렇게도 기다리던 퇴원을 했습니다.
아직은 온전치 못한 몸이였지만 너무 기쁘고 신 이났습니다.
그 즈음 장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는 매일새벽에 일어나 뒷산에 있는 사찰에 갔습니다.
몸이 불편하여 장모님 상(喪)도 다 못치러드렸고해서 자비도량참법을 백일동안 열번을 했습니다.
어느날 새벽 동이 트기전 입정을 마치고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미리 도시를 떠나 시골생활을 하게된 이유와
발병을 한후 치료하던 과정,그리고 다시 살게된 새 삶의 의미.
그 힘든상황에서도 지켜주셨던 관세음보살님의 가피..
한때 머리카락이며 속눈썹까지 다 빠지는 바람에 나병환자로 오해를 받기도하여
길을 가다 물 한병 사기위해 가게에 들어가면 얼굴을 스윽 보고 손 까지 보며 사람들은 꺼려했습니다.
이제는 머리카락이 정상적으로 자랐고 얼굴피부 또한 병색으로부터 많이 나아졌습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의 패턴을 새롭게 꾸며서 지금부터 새롭게 얻은 내 생명은
정말 아낌없이,욕심없이 살아갈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와 싸우는 환우들에게 용기 잃지마시고
끝까지 이겨내시라고당부드립니다.
제가 매일 열심히 기도해드리겠습니다.
불,보살님 감사합니다.
_()()()_
(마지막편 글을 일년이 지난후 지금 씁니다.그리고 주치의께서 방사선치료를 36번 권장하셨는데 저는 곧 자연치료를 선택,매일 아침,저녁으로 천일염을 온수에넣고 저어서 그물을 들이켰다 내뱉곤하며 6개월간 치료했으며 치료중에 내부에 고여있던 약물,상처일부등 모든것들을 다 확인할수있었습니다.자연치료가 이렇게 좋은줄 몰랐지요^^^^글 솜씨는 없지만 ..끝 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