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이달의 훈화
연중 제24주간 - 연중 제28주간정홍 사도요한 신부
202309 바라보기
춘천교구 정홍 사도요한 신부는 2010년 8월 20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2010년 9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춘천 퇴계성당, 강릉 솔올성당, 속초 교동성당 보좌 신부를 거쳐 2014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포천 일동성당에서 주임 신부로 사목했다.
이후 2017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북한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20년 4월부터 2022년 8월까지 동해 묵호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다 2022년 9월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사제 양성 소임과 함께 북한학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 중이다.
연중 제24주간(9월 17-23일)
통고의 어머니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피에타의 성모님을 보며 그분의 고통을 생각해 봅니다. 피로 뒤덮인 성자를 안으신 성모님께서는 육신의 순교는 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의 순교, 영혼의 순교를 하셨습니다. 아주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것입니다. 1800년대 후반 이탈리아 로마 남동쪽에 위치한 카스텔페트로소에서는 고통의 성모님이 발현하셨는데, 사람들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의 모습은 피에타의 이미지였다고 합니다. 복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1973년 카스텔페트로소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고통의 성모님’으로 칭하며 그 지역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레지오 교본은 레지오 단원들이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봉사 활동으로써 고통받는 사람들과 잦은 접촉을 하게 되므로 고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알아두어야 한다. 고통의 의미를 잘 깨달아 신비체의 지체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고통은 은총이 되고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면만 빼내어 고를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처럼 환희와 영광뿐 아니라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비통의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와 나란히 걷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명에 아무 구실을 할 수 없다. 고통은 단순히 죄에 대한 벌이 아니며 치유와 힘을 주고 그리스도를 닮게 해준다. 고통의 의미를 터득하면 그 고통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교본 제9장, 3 참조)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고통 속에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도 지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고통에 대해 묵상하고 성모님의 고통에 동참해야 하는 때입니다. 신비체의 고통에 동참하며 봉사직무를 수행하는 레지오 단원이 될 때, 성모님과 더욱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고통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신비체의 고통에 다가가는 레지오 단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통고의 어머니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연중 제25주간(9월 24-30일)
성실하신 동정녀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구약성경의 레위기와 신명기는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이들의 품삯을 그날에 지불하도록 가르칩니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레위 19,13).” “그의 품삯은 그날로 주어야 한다(신명 24,15).” 품삯은 일꾼과 가족이 양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연중 제25주일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말씀은, 하느님께서 먼저 초대하신 유다인들과 나중에 초대하신 이방인들 모두를 당신의 포도밭으로 부르셨고 정당한 품삯을 주셨음을 전합니다. 하루의 시간을 하느님 구원 역사 전체로 표현해 본다면, 아침 일찍부터 포도밭으로 불림을 받은 유다인들과 저녁 늦게 포도밭으로 불림을 받은 이방인들 모두 해가 지기 전, 곧 죽음과 세상 종말 전에 품삯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온전한 품삯을 주시며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정당하고 온전한 품삯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유다인들은 늦게 일한 이방인들이 자신과 같은 품삯을 받았음에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해야만 했습니다.
경제 논리에 더 관심이 있는 우리도 유다인들의 자세를 경계하며, 성모님의 모범을 바라봐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구원자를 주신다는 약속이 당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놀라워하시면서도, 감사하셨으며, 그리고 순명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고백처럼, 약속을 지키실 하느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포도밭에서 한평생을 성실하게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성실하신 동정녀로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으며 성실하게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신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는 성실한 레지오 단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실하신 동정녀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연중 제26주간(10월 1-7일)
언제나 “예” 하신 어머니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사제서품 때 주교님께 순명 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교님의 인사명령에 언제나 “예”하고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도, 언제나 “예”하는 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예”는 고사하고 어쩌다가 “예”도 듣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레지오 단원들에게 있어서 순명은 필수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 레지오의 정신에서도 순명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순명으로써 구원의 문을 열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신 마리아의 대답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리스도께 적용한 시편 구절을 연상시킨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나이다.”(히브 10,7; 시편 40,7)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을 주의 여종으로서 온전히 바치셨다고 했고(교회헌장 56항), 순명 정신으로 신앙의 나그네 길을 걸으셨다고 했다.(교회헌장 58항)
마리아가 나자렛에서 대답한 ‘예’는 갈바리아 산 위에서 완결되었다. 성모님은 하느님 구원 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갈바리아의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는 당신 아들을 지켜보며 주의 탄생 예고 때에 보여 주었던 순명을 다시 보여 주셨다.
연중 제26주일 복음은 두 아들의 비유 말씀이었습니다. 포도밭에 일하러 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간 맏아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언제나 “예”라고 대답하셨던 예수님과 예수님을 품으신 이후, 그분의 여종으로 언제나 “예”하고 대답하신 성모님의 모범을 떠올리게 됩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언제나 “예”라고 순명하는 레지오 단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예’ 하신 어머니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연중 제27주간(10월 8-14일)
신자들의 도움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주일 독서와 복음은 포도밭을 배경으로 합니다. 팔레스티나 지역에서의 포도밭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계시던 시기에는 망을 보기 위해 돌탑을 밭 한가운데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포도밭의 일꾼이 돌탑에서 망을 보고 포도를 지킨 것처럼, 레지오 단원들은 세상과 교회라는 포도밭에서 망을 보고 사랑이라는 포도 열매를 지키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본은 레지오 단원들을 파수꾼이라고 칭합니다.
레지오 단원의 봉사는 지속적이어야 하며, 위기를 맞더라도 바위와 같이 튼튼하고 변함이 없어야 한다. 온갖 어려움과 단조로움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온갖 어려움과 단조로움은 믿음을 실천하고 지속적인 공격을 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소집될 때를 대비하여 항상 준비하고, 소집되지 않더라도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싸움이 없어 적이 눈앞에 띄지 않더라도 늘 하느님을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빈틈없는 파수꾼 노릇을 해야 한다.(교본 제4장 5 참조) 이렇게 교본은 레지오 단원에게 파수꾼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레지오 단원들은 스스로 성화에 힘써 온유와 인내심의 열매를 맺는 포도밭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의 파수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온유와 인내심의 열매가 꼭 필요합니다. 교본은 온유를 애덕의 향기로운 열매라고 가르칩니다. 온유하지 못하면 파괴시키는 폭풍우와 같기 때문에 강력한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는 천사적인 부드러움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온유함은 레지오 사도직의 특성으로 모든 성공의 동기가 되는 덕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고 끈기의 정신을 발휘하며 활동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신망애 삼덕을 거스르는 사람과 접촉하게 될 때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포기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겠지만 꾸준히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온유와 인내의 열매를 맺는 포도밭이 되어 세상과 교회라는 포도밭을 지켜나가는 파수꾼으로 살아가는 레지오 단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중 제28주간(10월 15-21일)
성체의 모후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잔치에 가면 기쁩니다. 잔치는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리입니다. 주일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주일 복음은 혼인 잔치에 인간을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사실 교회는 매일 잔치를 거행하고, 레지오 단원들을 포함한 하느님 백성 전체를 초대합니다. 레지오 교본도 잔치인 미사에 참례하는 것과 영성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레지오 목적이 단원의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라면 그것은 성체를 이루는 미사성제 없이 실현될 수 없습니다. 교본은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잔치인 미사성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미사를 통하여 십자가상 제사는 인류 안에서 계속된다. 미사는 단지 그 과거사를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갈바리아에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바치셨던 지극히 숭고한 희생 행위를 실제로 우리 가운데에 재현시키는 것이다.(교본 제8장 1 참조)
단원 성화의 은총은 갈바리아에서 예수님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로부터 흘러내립니다. 교본은 또 성모님을 성체의 모후로서 십자가상 제사에서 아드님과 함께 ‘봉헌하는 동정녀’로 소개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곁에 서시어 모성애로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 자신도 영원하신 성부께 봉헌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신비체의 어머니로서 그 지체들의 영적 생명을 양육하시길 바라십니다. 교본은 성모님의 이러한 원의를 레지오 단원들이 채워드릴 것을 강조합니다. 성모님께서 영혼들을 돌보시는 일에 협조해 드리려는 이들은, 잔치인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성체에 대한 굶주림을 없애고 성모님과 일치할 수 있도록 헌신하여야 합니다. 혼인 잔치 비유 말씀에 나오는 혼인 예복을 더럽히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갖추어 입고 성실히 잔치에 참여하여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살아가는 레지오 단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체의 모후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